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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55)

문재인 대통령, 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제시하다.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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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업무지시 2호로 박근혜 정부 때 편찬한 국정 국사 교과서를 공식적으로 폐기하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미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고 폐기를 주장하였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문제는 역사학자가 아닌 대통령이 합리적 근거도 없이 검정 교과서는 선(善), 국정 교과서는 악(惡)이라는 그릇된 판단 아래 이루어진 업무 지시라는 점이다.
 
국사 교과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 생산된 역사 자료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역사 연구, 그리고 역사 교육을 하기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이를 표로 정리하여 설명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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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료(史料)라 불리는 역사 자료는 다시 문헌(文獻) 사료와 유물(遺物) 그리고 유적(遺蹟)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역사 자료인 문헌을 다시 전근대와 현대로 나누어 살펴보면 전근대에는 자료를 생산하고 수집한 다음 역사서 편찬까지 이어진다.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편찬 사업은 고려 인종 때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조선 문종 때 완성된 『고려사(高麗史)』를 이어 조선왕조의 실록(實錄)이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러한 사료 외에도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라든가 『동국통감(東國通鑑)』 등 관찬(官撰) 사료와 함께 각종 국가 기록물들이 수없이 전해지고 있다.
 
반면 현대는 생산된 자료를 수집하기는 하나 편찬하는 단계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공공 기관에서 생산된 자료들은 주어진 법령에 따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어 일정 기간 열람이 금지된다. 당연히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한 역사서의 편찬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있어 마치 우리 역사를 편찬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이름처럼 국사를 편찬하지는 않는다. 즉 국가 주도로 자국의 역사를 편찬하는 일은 조선왕조의 실록으로 끝이 났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역사 자료를 토대로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역사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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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시한 역사 자료를 대상으로 역사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역사적 관점과 연구 목적에 따라 다양한 역사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 역사 연구 단계로 이는 전문가 영역이다. 이들 전문 연구자들에 의해 축적된 연구 성과는 논문이나 학술서와 같은 결과물로 남게 되며, 그 중에는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쉽게 합의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것은 정설로 정착되고 어떤 것은 계속하여 이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이 억제되거나 전문성이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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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스로 역사인식의 다양성과 자주성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국정 국사 교과서를 폐기한 현 대통령이 이를 정면으로 위배한 기록을 남겼다. 대통령은 2018년 1월 2일 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현충탑에 분향한 뒤 방명록에 적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건국 백 년을 준비하겠습니다.'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중국 충칭[重慶] 임시정부 청사 방문 때도 같은 뜻을 밝힌 바 있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을 건국 100년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은 역사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설령 전문가라 하더라도 학계에서조차 이설이 있는 부분을 대통령이라는 힘을 빌려 단정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고 싶다면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보는 근거와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타 학설과의 논리적 모순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본다면 그 출발점이 상해 임시정부가 창립된 4월 13일인지, 한성 임시정부가 창립된 4월 23일인지, 아니면 각 임시정부가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합된 9월 11일인지 그것부터 밝히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또, 건국을 했으면 왜 우리 대한민국 땅을 두고 수만 리 이국(異國)을 떠돌아다녔으며, 한반도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법을 집행하지 못하였으며,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서 외교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는지도 당연히 설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1919년에 건국을 했으면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은 왜 나왔으며, 1944년 8월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조선건국동맹은 왜 결성되었으며, 1945년 해방과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는 또 왜 조직되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연구자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 된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천명한 1919년 건국 설은 당장 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1919년 설을 채택하려면 앞의 논리적 모순을 해명해야 하며, 1948년 8월 15일 설을 채택하려면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야만 한다. 대통령이 이미 건국에 대한 집필 기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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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른 통설과 정설을 토대로 다음 단계인 역사 교육이 이루어진다. 역사 교육은 다시 정책 관여자의 교육 정책 수립과 역사 전문가의 교과서 편찬을 거쳐 일선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먼저 교육 정책은 정책 관여자의 몫으로 사안에 따라서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들은 각 과목의 국민 여론이 있고 관련 전문가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를 거쳐 교육 정책을 수립한다. 국사 교과서의 경우 필수과목으로 할 것인지 선택과목으로 할 것인지의 여부와 검정으로 할 것인지 국정으로 할 것인지 여부 등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 교육 정책이다.
 
만약 국민의 여론이 있고 필요성이 제기되는데도 이를 수렴하여 검토하거나 정책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현 대통령이 취임 후 곧바로 국정교과서의 폐기를 지시한 것은 교육 정책의 일환으로서 정당한 지시였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이 검정 교과서의 문제점을 쇄신하기 위하여 국정 교과서 체제를 택한 것도 교육정책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이는 모두 교육 정책 결정의 최종 책임자에게 부여된 임무이자 권한이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이 수립되면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교과서를 집필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집필 기준을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마련하는지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행히 최근에 입수된 집필기준 시안 개발 공청회 순서를 보면 그 정체의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 표를 보면 발표자는 고등학교 교사다.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참여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발표자가 고등학교 교사라면 대학교수는 한 명도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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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기준은 건축물로 말하자면 설계도나 마찬가지다. 이 설계도에 따라 건축물이 완전히 달라지듯이 집필 기준에 따라 교과서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문가 한 명 없이 일선학교 교사 몇 명이서 집필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교사가 마련한 집필기준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교과서 집필에는 정작 대학 교수가 참여한다는 점이다.
 
현행 검정 제도에서는 각 출판사가 교수를 비롯한 집필진을 구성하여 교과서 시안을 마련한 다음 교육부의 심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교수들의 전문지식이 반영된 서술이라 하더라도 교사가 마련한 집필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가차 없이 퇴자를 맞게 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교과서 논란에서 어느 누구도 집필 기준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집필 기준을 마련하면 교과서 집필은 이미 그 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역사 해석의 다양성 자체가 불가능함에도 교과서가 여러 종류이기만 하면 마치 역사 인식의 다양성이 실현될 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가 호도하였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이 주인이라 하였다. 국민이 주인이라 생각한다면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민들 중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면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들만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자신과 가족과 국가에 음으로 양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대통령은 전지전능하신 조물주가 아니기에 이들 전문가를 존중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국정에 반영하여야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 것이다. 전문가를 무시하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근거로 중요한 사안을 스스로 결정한다면 전문가의 역할은 없어지고 모든 일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 대통령이 1919년 건국 설을 주장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 공식화하려 한 것은 연구자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침해한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오히려, 학회나 현대사 전공자들에게 이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여 논란을 불식시켜 줄 것을 요구했더라면 큰 박수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논어(論語)』에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라는 말이 있다. ‘임금은 임금노릇하며, 신하는 신하노릇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노릇 하며, 자식은 자식 노릇해야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할 때 나라도 가정도 올바르게 된다는 뜻이리라.▩

입력 :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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