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 에 기술된 ‘세속오계(世俗五戒)’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는 ‘불교의 수용과 도교의 영향’이라는 제목 아래 ‘승려 원광은 세속 5계를 지어 호국 사상과 새로운 사회 윤리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쳤다.’고 서술하였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세속오계에 대해 ‘신라 화랑(花郞)의 다섯 가지 계율’이라 정의하고 ‘진평왕 때에 원광(圓光)이 정한 것으로, 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살생유택을 이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원광이 ‘지었다’고 한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했다’고 되어있다. ‘정했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이르는 것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무튼, 출전인 『삼국유사』를 보면 이 두 서술은 모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삼국유사』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화랑 귀산(貴山)과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사기』 열전(列傳)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정리된 글이니 『삼국사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사(賢士) 귀산(貴山)이라는 자는 사량부(沙梁部) 사람이다. 같은 마을 추항(箒項)과 벗이 되었는데 두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가 사군자(士君子)와 더불어 교유하고자 기약하였으니, 먼저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지키지 않으면 곧 모욕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자(賢者)의 곁에서 도(道)를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라 하였다.이때 원광법사가 수(隋)나라에 갔다 돌아와 가슬갑(嘉瑟岬)에 머문다는 것을 듣고 두 사람은 문하(門下)에 나아가 고하기를,“속사(俗士)는 몽매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원컨대 한 말씀 내리주시어 평생 동안의 교훈으로 삼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원광이 말하기를,“불교에는 보살계(菩薩戒)가 있으니 그것은 10가지로 나누어진다. 너희들은 세속의 신하이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지금 세속의 오계(五戒)가 있어, 첫째는 사군이충(事君以忠)이요, 둘째는 사친이효(事親以孝)요, 세째는 교우이신(交友以信)이요, 네째는 임전무퇴(臨戰無退)요, 다섯째는 살생유택(殺生有擇)이니 그대들은 이를 실행함에 소홀치 말라!”고 하였다. 귀산 등이“다른 것은 곧 명을 받아들였으나, 이른바 살생유택(殺生有擇)하라는 것은 특히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원광은“육재일(六齋日)과 봄과 여름에는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때를 가리는 것이며, 죽이지 말고 길러야 하는 것은 말‧소‧닭‧개를 이르며, 죽이지 말아야 할 하찮은 동물은 고기가 한 점도 안 되어서이니 이것이 사물을 가리는 것이다. 이 또한 오직 그 쓸 만큼만 먹고 많이 죽이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세속의 좋은 계율이다.”고 하였다. 귀산 등은“지금 이후로 법사의 뜻을 받들어 실천하여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라 하였다. 후에 두 사람이 군사(軍事)를 따랐는데 모두 국가에 큰 공이 있었다.
이 글 중 “지금 세속의 다섯 가지 계율이 있으니(今有世俗五戒)”라는 글과 “이는 세속의 좋은 계율이다(此是世俗之善戒也)”라는 글에서 원광법사는 세속에 이미 있었던 다섯 가지계율을 제시했을 뿐 직접 지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광법사가 제시한 세속오계’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천재교육 집필자는 아마도 원전을 한 번도 안 읽어본 것으로 보인다. 읽어봤다면 이렇게 서술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학사 교과서에는 ‘원광은 국가 윤리에 충실한 세속 5계를 가르쳤다.’라고만 하였으며, 금성출판사는 본문 서술 없이 『삼국사기』의 세속오계를 자료로 소개하면서 5계를 모두 제시하였다. 그 외 교과서는 아예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 인식의 다양성이라는 명분으로 편찬된 현행 8종 한국사 교과서는 이렇듯 서술이 제각각이다. 8종이나 되어 마치 다양하고 풍성한 것처럼 보이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해주는 하나의 교과서로만 공부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세속오계만 보더라도 어떤 아이들은 잘못된 내용을 배우고, 어떤 아이들은 5계를 자세하게 배울 수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세속 5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세속오계를 반드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