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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8 수능 한국사 15번 오류를 인정하고 책임져야"

[국민신문고 민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답변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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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에 보도된 1910~1933년까지의 수출량과 금액(1934. 4. 5. 동아일보)

지난 11월 23일 수능 이후 한국사 15번 문항이 오류임을 확인하고 이의(異議) 신청을 하였으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정답 발표 때 ‘이상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이후 국민신문고를 통해 몇 차례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평가원에서는 번번이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명확한 답변을 회피해왔다. 이에 오류 사항을 4개 항목으로 나누어 질문서를 작성,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였다. 아래는 그 질문과 평가원의 답변, 그리고 필자의 반론이다. 
 
학년도
1920
1922
1924
1926
1928
1930
1931
단위
2014
1,488
1,501
1,322
1,530
1,351
1,918
1,587
만 섬
2016
12,708
 
15,174
 
17,298
 
 
천 섬
 
 
【질문1】 2014학년도와 2016학년도 수능 시험에는 산미 증식 계획과 관련하여 국내 쌀 생산량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두 자료의 같은 해 통계 수치가 서로 다릅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맞는가요?
        
【평가원 답변】 <질문 1>은 이번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문항의 문제 및 정답과 관련 없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2014학년도와 2016학년도 문항에 사용된 통계 자료는 각각 『미곡요람』(일본 농림성), 『조선미곡요람』(조선총독부 농림국)임을 알려 드립니다. 두 자료 모두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공식 자료입니다.
 
필자가 이 질문을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앞선 두 차례의 수능 문제는 산미증식계획이라는 동일 주제에 대한 동일 연도의 통계 수치이기 때문에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치가 서로 다르다. 둘 중 하나는 오류로 검토 결과 2016학년도 통계수치가 오류임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 2016학년도 오류 자료가 바로 현행 8종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것이다. 당연히 현행 검정 교과서도 모두 오류라는 뜻이다. 이 질문에 대해 평가원은 ‘『미곡요람』(일본 농림성), 『조선미곡요람』(조선총독부 농림국) 모두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공식 자료’라 하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 하지만, 평가원 답변자는 자료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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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8종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는 모두 이와 동일한 통계 자료를 수록하고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에서 발행한 『조선미곡요람』이라는 출처를 밝혀놓았다. 하지만, 이 그래프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엉터리 자료다.

첫째, 1930년도 생산량 13.511이라는 숫자는 어떤 자료에도 없는 수치다. 더구나, 1930년도는 유례없는 풍작을 이룬 해로 해당 시대 전공자라면 급격한 생산량 감소에 의심을 가졌어야 한다. 이를 보면 교과서 집필자나 수능 출제자 및 답변자 모두 『조선미곡요람』을 한 번도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한 번이라도 봤더라면 이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선그래프를 작성하면서 홀수 연도를 제외한 채 짝수 연도를 선으로 이어 마치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홀수 연도까지 포함하여 작성하면 아래와 같이 전혀 다른 느낌의 그래프가 된다. 명백한 통계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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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미곡요람』(1934)과 『조선미곡요람』(1936, 1937)에는 조선 미곡(米穀)의 연간 총수확고를 정리한 통계 자료가 몇 군데 수록되어 있는데, 1937년 『조선미곡요람』 10쪽의 총수확고는 여타의 자료와 달리 한 칸씩 밀린 오류 자료다. 모든 교과서는 유독 이 오류 자료를 토대로 그래프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본문을 서술하였다. 이 자료가 오류인지 아닌지는 아래 자료뿐만 아니라 1920~30년대 동아일보에 보도된 기사를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연도
검정한국사
(단위:천 섬)
조선미곡요람(단위:)
’34 미곡요람
(단위:)
1937(10)
1937(26)
1936
1920(大正9)
12,708
12,708,208
14,882,352
14,882,352
14,882,352
1921(10)
 
14,882,352
14,325,326
14,325,326
14,325,326
1922(11)
14,324
14,325,326
15,014,291
15,014,291
15,014,291
1923(12)
 
15,014,291
15,174,645
15,174,645
15,174,645
1924(13)
15,174
15,174,645
13,219,322
13,219,322
13,219,322
1925(14)
 
13,219,322
14,773,102
14,773,102
14,773,102
1926(昭和1)
14,773
14,773,102
15,300,707
15,300,707
15,300,707
1927(2)
 
15,300,707
17,298,887
17,298,887
17,298,887
1928(3)
17,298
17,298,887
13,511,725
13,511,725
13,511,725
1929(4)
 
13,511,725
13,701,746
13,701,746
13,701,746
1930(5)
13,511
13,701,746
19,180,677
19,180,677
19,180,677

이를 정리하면,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1) 잘못된 통계 자료를 사용하면서 (2) 1930년의 수치를 오기(誤記)하였고, (3) 홀수 연도를 제외한 채 선그래프를 작성하여 변동 추이를 왜곡하였다. 이 정도의 오류만으로도 이 산미증식계획에 관해서는 시험을 출제하여 학생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교육은 올바른 내용을 교과서에 수록하여 가르치고, 그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잘못된 내용을 수록하여 거짓을 가르치고, 거짓된 내용을 제대로 외우고 있는지 평가하는 것은 교육적인 처사라 할 수 없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질문2】 지문에서 산미 증식 계획을 수탈 정책이라 하였습니다. 현행 8종 한국사 중 어느 교과서에 그렇게 서술 되어있는가요?
 
 【평가원 답변】 <질문 2>와 관련하여, 교육과정 및 교과서의 해당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 2012-14호)
(5) 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
② 국내의 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나타난 일제의 식민 통치 방식과 경제 수탈 정책의 내용을 파악한다.
 
교과서의 서술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교육과학기술부 고시를 제시했다. 아마도 ‘수탈 정책’이라는 글이 있어서 증거가 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수능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에는 반드시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답변을 해야 한다. ‘경제 수탈 정책의 내용을 파악한다.’고 하였으니 구체적으로 파악한 내용을 제시했더라면 판단에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따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답변을 요구할 것이다.
 
 <교과서>
그러나 일제는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 갔다. 쌀 반출로 지주의 경제력은 더욱 커졌으나, 농민들의 처지는 어려워졌다. 1인당 쌀 소비량은 줄어들었으며, 만주에서 조·수수 등 잡곡을 수입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교학사, 244>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수출’이라 옳다는 뜻을 굽힌 적이 없다. 그럼에도 교과서에 수탈로 되어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대표 집필자의 뜻과 상반되는 용어가 교과서에 실렸는지 알 수는 없으나 ‘쌀 반출로 지주의 경제력은 더욱 커졌으나’라는 문장을 볼 때 이는 분명한 서술 오류다. 쌀 수출로 지주의 경제력이 커졌다는 것은 결국 수출을 통해서 그에 대한 이득을 취했다는 뜻이며, ‘수탈’은 수출과 함께 사용할 수 없는 상반된 의미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산미 증식 계획을 통해 쌀 생산량은 증대되었다. 그러나 늘어난 쌀 생산량보다 더 많은 쌀이 군산항과 목포항 등지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계속 하락하여 일본인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부족한 식량은 만주에서 수입한 조 등의 잡곡으로 충당하였다.<금성출판사, 297>

<금성출판사>는 ‘늘어난 쌀 생산량보다 더 많은 쌀이 군산항과 목포항 등지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고 하였다. 혹시 답변자는 ‘반출’을 수탈과 동의어로 생각하는지 모르나 만에 하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잘못 안 것이다. 일본으로의 반출은 곧 시장 기능에 의해 수출되었다는 뜻이다. 대가 지불 없이 그냥 실어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그 결과 쌀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늘어난 쌀 생산량보다 훨씬 많은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이로 인해 조선인들이 먹는 쌀 소비량은 크게 줄었다. ∼(중략)∼ 1920년대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처음 계획한 만큼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당연히 국내 식량 사정은 더욱 어려워 졌다. 산미 증식 계획이 진행될수록 조선인 1인당 쌀 소비량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쌀이 모자라자 만주에 서 잡곡을 들여오기도 하였다.<동아출판, 217>

<동아출판> 교과서를 보면 ‘∼(중략)∼’ 부분에 ‘반면 지주들은 쌀을 판매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평가원 답변자는 왜 이 중요한 부분을 생략했을까? 이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처음 계획한 만큼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했다. 조선이 판매한 쌀을 사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니 당연히 수출이다. 답변자는 혹시 ‘가져갔다’도 수탈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걱정되는 수준이다.
 
 일제는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에 이어 1920년대에 산미 증식 계획으로 경제 수탈을 계속해 나갔다. ∼(중략)∼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일제는 증산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로 말미암아 국내 식량이 부족해지자 한국인들은 만주에서 생산되는 조, 수수, 콩 등 값싼 잡곡을 들여와 생계를 유지하였다.<리베르스쿨, 279>

<리베르스쿨> 교과서의 상기 서술 마지막에는 ‘일본 쌀값이 하락하자 일본 지주들이 조선미의 수입을 반대하여 급기야 산미증식계획이 중단되었다.’고 서술하였다. 일본이 조선미의 수입을 반대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과서는 ‘수탈’과 ‘약탈’이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였다. 수입하면서 수탈도 하고 약탈도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수탈‧약탈이 수입과 같은 의미의 단어라고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수탈은 강제로 빼앗는 것이고 약탈은 폭력을 써서 빼앗는 것이니 수입과는 당연히 병립(竝立)할 수 없는 단어다. 소위 고등학교 교과서에 이토록 어법에도 안 맞고 현실과도 동떨어진 단어가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사용되었다. 참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걱정된다.
 
 그럼에도 쌀 반출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일본의 식량사정은 개선되었지만 국내 식량 사정은 크게 나빠졌다. 일제는 한국 내 부족한 식량을 만주에서 조·수수·콩 등의 잡곡을 들여와 보충하였다. 한국 농민들은 높은 소작료와 지세, 공과금뿐만 아니라 비료 대금, 수리 조합비, 토지 개량비 등 쌀 증산 비용마저 부담하는 이중적 수탈 구조 속에 놓이게 되었다.<미래앤, 246~247>

이 교과서의 ‘그럼에도 쌀 반출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일본의 식량사정은 개선되었지만’이라는 서술은 곧 일본이 조선미를 수입하여 식량 사정이 나아졌음을 이르는 것이다. 또, ‘이중적 수탈 구조 속에 놓이게 되었다.’는 문장 다음에는 ‘반면, 토지 회사나 대지주는 농민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여 대농장을 넓혀 갔다.’고 하였다. 토지 회사나 대지주가 농민들로부터 착취하고 이를 일본으로 수출하고 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 다시 중소 자작농의 토지를 사들여 농장을 넓혀갔다는 뜻이다. 즉, 대농장의 확장은 수출의 결과물인 것이다.
 
 1920년대 산미 증식 계획이 실시되자 일제의 쌀 수탈이 강화되었다. 이 시기 일제는 우리 민족을 어떤 방식으로 수탈하였을까?<비상교육, 276>
산미 증식 계획이 추진되어 쌀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곡식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와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비상교육, 278>

<비상교육> 교과서에는 위 서술 마지막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다음에 ‘그리고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늘어나면서 지주의 경제력은 커졌지만’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수출 정황을 알 수 있는 명백한 서술을 생략한 것이다. 특히, 276쪽의 ‘생각을 여는 이야기’에서 ‘일제는 우리 민족을 어떤 방식으로 수탈하였을까?’라는 질문을 제시하였으나 교과서 어디에도 이에 대한 답변이 없다. 필자가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어떤 방식으로 수탈하였을까’인데 아쉽게도 그 답변은 어느 교과서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번 평가원 답변에도 없다. 평가원은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은 늘었으나 일제가 계획한 양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증산된 쌀보다 더 많은 쌀을 가져갔다. 한국인은 식량이 부족해져 만주에서 수입한 잡곡을 먹어야했으며, 일부 지주들이 소작농에게 수리 조합비와 비료 대금 등을 떠넘겨 가난한 농민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지학사, 286>

<지학사> 교과서에는 ‘하지만 일제는 증산된 쌀보다 더 많은 쌀을 가져갔다.’고 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가져갔다.’는 것도 수출의 다른 말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가져갔다고 한다면 수탈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런 증거는 없다. 시장 기능에 의한 거래를 통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니 당연히 수출이다. 수출이 아닌 수탈이라면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산미 증식 계획의 결과 계획만큼은 아니지만 쌀의 생산이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으로 반출되는 쌀의 양이 계속 늘어났으며 조선의 인구도 날로 증가하여,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에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만주에서 잡곡을 대량으로 수입하였다.<천재교육, 253>
6‧10 만세 운동의 바탕에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식민지 교육에 대한 반발이 깔려 있었다.<천재교육, 262>

<천재교육> 교과서에는 ‘만주에서 잡곡을 대량으로 수입하였다.’는 문장 다음에 ‘산미증식계획의 추진 과정에서 토지 회사나 지주들은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여 더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는 서술이 이어진다. 그런데, 262쪽에는 ‘6‧10 만세 운동의 바탕에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대한 반발이 깔려있었다.’고 하였다. 답변자는 조선이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였는데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쌀을 수탈했다고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성립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상 평가원에서 ‘수탈 정책’의 근거로 제시한 교과서 내용에는 ‘산미증식계획=수탈 정책’이라는 증거가 없다. 답변자는 ‘수탈’이라는 단어만 있으면 곧 ‘수탈’과 ‘수탈 정책’의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나 이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수탈’이나 ‘수탈 정책’이라는 용어가 올바르게 사용되었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문제는 위 교과서 서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사안에 의미상 대립적인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산미 증식 계획과 관련한 교과서 서술에는 아래와 같은 용어가 등장한다. 
 
지학사
반출, 가져가다
비상교육
수출, 유출, 수탈
금성출판사
반출
리베르스쿨
반출, 수탈, 약탈, 수입
천재교육
수출, 반출, 가져가다
미래엔
반출, 수탈
동아출판
판매, 유출
교학사
반출, 수탈
 
 
산미증식계획이라는 한 가지 사안을 두고 교과서마다, 또 한 교과서 내에서도 그 사용된 서술 용어가 실로 다양하다. 집필자의 뜻인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임의로 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동일 사안에 이렇게 용어가 다양한 것은 실체가 없거나 뭔가 실상을 호도(糊塗)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리베르스쿨을 제외한 나머지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는 모두가 근현대사 전공 교수로 이런 용어 하나 제대로 구사(驅使)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썼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수탈(收奪)은 아무런 대가 없이 강제로 뺏어갔다는 의미이며, 약탈(掠奪)은 폭력을 써서 강제로 뺏어갔다는 의미다. 수탈과 약탈을 제외한 반출, 유출, 가져가다 등은 어느 경우든 값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진행되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수출과 동의어로 수출이라는 용어 하나면 충분하다. 조선 입장에서 수출이면 일본 입장에서는 수입이고, 일본 입장에서 수탈이면 조선 입장에서 피탈(被奪)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사안에서 수탈과 수출(입)은 병립(竝立)할 수 없다. 대가를 받고 수출했는데 뺏어갔다고 할 수 없으며, 대가를 지불하고 수입했는데 수탈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출과 수탈을 병용한 비상교육, 리베르스쿨, 미래엔, 교학사 교과서의 서술은 모두가 오류다. 기본적인 용어의 뜻조차 모르고 쓴 것이다.
 
그런데, 평가원은 이런 논리적 모순조차 살피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수탈’이란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모아놓고 ‘수탈 정책’의 증거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정작 ‘수출’임을 명백히 알 수 있는 문장은 슬쩍 빼버렸다. 참으로 속 보이는 처사다.

【질문3】 산미 증식 계획을 수탈이라 한다면, 일본이 강제로 조선 쌀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아래 서술은 잘못 된 것인가요?
‧ 1930년 이후 대공황의 여파로 정부 알선자 금이 급격히 감소하고 쌀값하락으로 수리조합의 경영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실적이 부진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농민들이 조선미 이입을 반대함에 따라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도 해산하고 산미증식계획은 중단되었다.<신편한국사, 48권> 
‧ 제1차 계획은 1921년부터 1925년까지의 5개년 계획이었다. 제2차 계획은 1926년부터 1935년까지의 10개년 계획이었다. 그런데 10개년 계획이 1934년에 중단된 것은 조선미의 대일 수출 증대로 일본 농업이 위기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산미증식계획>
‧ 반면 지주들은 쌀을 판매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동아출판, 217> 
‧ 산미 증식 계획은 1930년대 들어 일본의 쌀값이 하락하자 일본 지주들이 우리나라 쌀의 수입을 반대하여 1934에 중단되었다.<리베르스쿨, 279>
‧ 그리고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늘어나면서 지주의 경제력은 커졌지만, 지주가 쌀 증산에 드는 비용을 소작농에게 전가하여 농민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비상교육, 278>
‧ 산미 증식 계획의 추진 과정에서 토지 회사나 지주들은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여 더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천재교육, 253>
 
 
 【평가원 답변】<질문 3>과 관련하여, 이번 한국사 15번 문항은 학계의 통설과 교육과정 및 교과서를 근거로 출제되었습니다. 신편한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교과서에 서술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우리원이 판정하거나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평가원은 본 질문의 의도를 진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좀 어이가 없다. 필자는 평가원더러 시비(是非)를 판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평가원 답변에서 분명히 ‘학계의 통설과 교육과정 및 교과서를 근거로 출제되었다.’고 했는데, 위에 든 것이 학계의 통설이고 현행 교과서 내용으로 15번 지문과 명백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만약 15번 지문의 ‘수탈’이 옳다면 이 서술이 잘못이고, 잘못된 서술을 교과서에 실어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당연히, 모든 교과서의 서술을 무효화하고 다시 써야 한다. 반대로 이 서술이 옳다면 15번 지문은 잘못으로 평가원은 잘못된 지문을 제시하여 학생들을 평가한 것이다. 평가원은 이에 대한 시비를 판정하여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얼버무리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질문4】 정답을  ‘④ 한국인의 식량 사정 악화로 다량의 만주산 잡곡이 수입되었다.’이라 했습니다. ‘식량 사정 악화’라는 것은 교과서 서술을 보더라도 쌀이 일본으로 수출되어 부족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당시 식량의 소비층은 상위 2~30%의 쌀 소비층과, 그 외의 잡곡 소비층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만주산 잡곡 수입이 쌀 부족 때문이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평가원 답변】<질문4>와 관련해서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해당 부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교학사, 244; 금성출판사, 297; 두산동아, 217; 리베르스쿨, 294; 미래엔, 246∼247; 비상교육, 278; 지학사, 286; 천재교육, 253).

근거를 제시하라 했더니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산미 증식 계획이 서술된 각 교과서의 해당 페이지를 제시하고 이를 참고하란다. 이것이 과연 답변이라고 하는 것인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아무튼 해당 면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교학사
1인당 쌀 소비량은 줄어들었으며, 만주에서 조수수 등 잡곡을 수입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244)
금성출판사
조선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계속 하락하여 일본인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부족한 식량은 만주에서 수입한 조 등의 잡곡으로 충당하였다.(246)
동아출판
조선인들이 먹는 쌀 소비량은 크게 줄었다.
[생각 넓히기] 당연히 국내 식량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중략- 쌀이 모자라자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오기도 하였다. (217)
리베르스쿨
일제는 증산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로 말미암아 국내 식량이 부족해지자 한국인들은 만주에서 생산되는 조수수콩 등 값싼 잡곡을 들여와 생계를 유지하였다.(279)
미래엔
쌀 반출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일본의 식량 사정은 개선되었지만 국내 식량 사정은 크게 나빠졌다.(246)
비상교육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곡식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와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278)
지학사
일제는 증산된 쌀보다 더 많은 쌀을 가져갔다. 한국인은 식량이 부족해져 만주에서 수입한 잡곡을 먹어야 했으며...(286)
천재교육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에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만주에서 잡곡을 대량으로 수입하였다.(253)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일본 쌀 수출로 인한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감소와 식량 사정 악화와는 관련이 없다. 그 이유는 (1) 1920년대 쌀은 식량의 일부일 뿐이며 보리와 조를 포함하는 잡곡이 식량의 다수를 차지하였으며, (2) 당시 약 83%에 해당하는 농민에게 상식(常食)은 쌀이 아닌 잡곡이었으며, (3) 당시 농민에게 쌀은 식량이 아니라 돈이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잡곡을 먹는 부류로 4~5개월 피땀 흘려 농사지은 쌀을 내다 팔아 세금을 내고 생필품을 사고 부족한 식량을 구입한다. 높은 값을 받고 더 많은 양의 쌀이 수출되면 그것이 농민 쌀값에도 영향을 미쳐 그 돈으로 더 많은 양의 잡곡을 살 수 있다. 수출이 늘면 농가소득이 늘어나고 수출이 줄어 국내 쌀 소비량이 늘면 농민 생활은 그만큼 힘들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다음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와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는 서술이다. 이는 일본이 쌀을 빼앗아가고 그로 인해 발생한 조선의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주산 잡곡을 수입하여 조선인에게 먹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대부분이 조인 만주산 잡곡의 수입도 일제가 맘대로 사들이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만주에서는 조가 수출 상품이고 조선에서는 수입 상품으로 모두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수출입 되었다.
 
지금도 농산물 값이 폭등하거나 폭락할 경우 수급 조절을 위해 외국산 농산물을 다량 수입하거나 수입을 통제하기도 한다. 당시 만주산 조의 경우도 수요에 따라 수입이 늘어날 때가 있는가 하면, 국내 조 생산량의 증가에 따라 수입이 줄어들 때도 있었다.(표 참조) 그런데 현행 교과서에는 시기도 특정하지 않고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하여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대량으로 수입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상식에 벗어난 서술이 버젓이 교과서에 실려서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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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5번 문항의 정답인 ‘④ 한국인의 식량 사정 악화로 다량의 만주산 잡곡이 수입되었다.’는 문장도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명백한 오답이다.
 
일반인들이 ‘식민지 상황에서 어떻게 정당한 가격을 받고 수출할 수 있었는가? 당연히 수탈이 옳다.’고 한다면 비전공자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 전공자이고 수능 출제자라면 산미증식계획에 대해 ‘수탈’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산미증식계획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조차 없는데다 당시 상황을 모르고 교과서 내용도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평가원은 ‘수탈’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수탈’이란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모아놓고 ‘이것이 수탈의 증거다.’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15번 문항 지문에 ‘수탈’, ‘수탈 정책’이라 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 지문이 학술적으로 오류가 없음을 증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과서 서술 내용과 배치되는 부분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감소가 어떻게 식량 사정 악화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을 수 없다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문항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입력 : 20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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