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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험생을 속이고 국민을 속였다

지문도 오류, 정답도 오류인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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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2017년 11월 23일 시행된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문항이다. (가)에 해당하는 단어는 ‘산미증식계획’이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에서 제시한 정답은 ④번이다. 하지만, 이 문항은 (1) 교과서의 서술 오류를 근거로 출제하였으며 (2) 지문의 ‘수탈’은 학계의 통설 및 교과서 서술과 다르며 (3) 정답으로 확정한 ‘④ 한국인의 식량 사정 악화로 다량의 만주산 잡곡이 수입되었다.’는 문장은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총체적 오류 문항이다. 이에 필자는 오류인 근거를 정리하여 이의 신청하였으나 평가원에서는 최종 정답을 발표하면서 필자의 이의 신청에 대해 ‘이상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를 밝힌다.  
 
 
1. 교과서 서술 오류
 
가. 국내 연간 쌀 생산량
 
1) 교과서에 수록된 엉터리 통계 자료
 
모든 교과서에는 ‘산미 증식 계획’과 관련하여 자료2와 같은 통계 그래프가 제시되어 있다. 노란색 선그래프는 1920년부터 1930년까지의 쌀 생산량을 나타내며, 녹색 막대그래프는 같은 기간 조선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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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하단에는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에서 발행한 「조선미곡요람」이라는 출처를 밝혀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미곡요람」의 통계 자료는 오류이며 이를 토대로 한 이 그래프도 오류이긴 마찬가지다. 「조선미곡요람」에는 미곡(米穀)의 연간 총수확고를 나타내는 통계 자료가 몇 군데 수록되어 있는데, 10쪽의 총수확고는 다른 자료와 비교할 때 한 칸씩 밀린 잘못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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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그래프에 표시된 수치와 복사한 위의 자료를 표에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검정한국사
(단위:천 섬)
’37 조선미곡요람(10)
(단위:)
’37 조선미곡요람(26)
’36 조선미곡요람
’34 미곡요람
(단위:)
1920(大正9)
12,708
12,708,208
14,882,352
14,882,352
1921(10)
14,882,352
14,325,326
14,325,326
1922(11)
14,324
14,325,326
15,014,291
15,014,291
1923(12)
15,014,291
15,174,645
15,174,645
1924(13)
15,174
15,174,645
13,219,322
13,219,322
1925(14)
13,219,322
14,773,102
14,773,102
1926(昭和1)
14,773
14,773,102
15,300,707
15,300,707
1927(2)
15,300,707
17,298,887
17,298,887
1928(3)
17,298
17,298,887
13,511,725
13,511,725
1929(4)
13,511,725
13,701,746
13,701,746
1930(5)
13,511
13,701,746
19,180,677
19,180,677
 
그런데, 교과서는 여타의 올바른 자료는 두고 유독 한 칸씩 밀린 이 자료를 토대로 그래프를 작성하였다. 더구나 오류 자료를 토대로 그래프를 작성하면서도 1930년도의 수치를 「조선미곡요람의」의 13,701이 아닌 13,511로 썼다. 중복 오류인 셈이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기본적 자료조차 엉터리를 사용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것이다.
 
 
2) 통계자료의 왜곡과 서술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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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이런 엉터리 통계자료를 사용한데다 여기에 또다시 홀수 연도를 제외한 짝수 연도의 수치로만 선그래프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쌀 생산량이 점점 증가하였다.’고 서술하였다.
 
금성출판사
산미 증식 계획을 통해 쌀 생산량은 증대되었다.(246)
동아출판
쌀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지만(217)
리베르스쿨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량은 늘어났지만(279)
미래엔
증산량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246)
비상교육
산미 증식 계획이 추진되어 쌀 생산량은 꾸준히 늘어났지만(278)
지학사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은 늘었으나(286)
천재교육
산미 증식 계획의 결과 계획만큼은 아니지만 쌀의 생산이 늘어났다.(253)

과연 올바른 변동 추이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교과서에 밝힌 ’37 「조선미곡요람」(10쪽)의 통계 수치를 홀수 연도까지 모두 포함한 그래프를 작성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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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그래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1928년 생산량이 두드러진 것 외에 특별히 증가세라 하기에는 너무나 평탄한 흐름이다. 교과서의 그래프는 증가세를 부각시키기 위해 ’37 「조선미곡요람」(10)의 잘못된 자료를 사용하면서 홀수 연도를 제외하고 선을 이어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통계 수치가 정확한 1934년 「미곡요람」과 1936년 「조선미곡요람」 그리고 1937년 「조선미곡요람」(26쪽)의 수치를 근거로 그래프를 작성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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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1927년을 제외하면 특별히 증가세가 지속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교과서에는 기본적 자료부터 엉터리를 사용한데다 그래프를 교묘하게 왜곡한 것이다. 그리고 이 그래프를 토대로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량이 늘어났다.’고 하였다. 당연히 서술 오류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1) 잘못된 통계 자료를 사용하면서 (2) 1930년의 수치를 오기(誤記)하였으며, (3) 홀수 연도를 제외한 채 선그래프를 작성하여 변동 추이를 왜곡하였으며, (4) 그래프를 근거로 ‘쌀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는 서술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 정도의 오류만으로도 이 산미증식계획에 관한 시험을 출제하여 학생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3) 수능에 출제된 엉터리 통계 자료
 
이러한 엉터리 통계 자료는 2016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도 출제된 적이 있다. 이 시험 10번에 제시된 쌀 생산량 통계수치는 오류다. 현행 교과서의 잘못된 통계를 그대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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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제시된 자료 중 생산량만 도표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연도
1920
1922
1924
1926
1928
1930
1931
단위
2014
1,488
1,501
1,322
1,530
1,351
1,918
1,587
만 섬
2016
12,708
15,174
17,298
천 섬

자세히 보면 같은 해의 수치가 서로 다르다. 2014학년도 17번 문항의 수치는 정확한 것이지만, 2016학년도 10번 문항의 수치는 ’37 「조선미곡요람」(10쪽)의 잘못된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잘못된 자료를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고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2018학년도 수능 이후 국민신문고를 통해 동일 연도의 서로 다른 수치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 필자는 본 질의를 포함하여 세 건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으나 평가원에서는 질의와 상관없는 엉뚱한 답변을 제시했다. 질의를 읽기나 한 건지, 아니면 읽고도 이해를 못한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어떤 답변이 나올지 궁금하다. 2014학년도 수치가 옳다고 하는 순간 현행 교과서를 모두 뜯어고쳐야 하고, 2016학년도 수치가 옳다고 하기에는 오류와 왜곡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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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가) 교과서 통계 자료의 오류
 
통계자료가 오류이기는 조선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도 마찬가지다. 앞서 제시한 것과 동일한 그래프에서 녹색 막대그래프가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표로 나타내고 비교를 위해 1937년 「조선미곡요람」과 동아일보 자료를 함께 제시한다.

 
 
검정 한국사
현행 8
조선미곡요람
1937
동아일보
(’32. 1. 24.)
1920(大正9)
0.63
0.6342
0.634
1921(10)
 
0.6706
0.673
1922(11)
0.63
0.6340
0.635
1923(12)
0.6473
0.651
1924(13)
0.60
0.6032
0.605
1925(14)
0.5186
0.528
1926(昭和1)
0.53
0.5325
0.533
1927(2)
0.5245
0.525
1928(3)
0.54
0.5402
0.541
1929(4)
0.4462
0.452
1930(5)
0.45
0.4508
0.677
 
교과서 그래프에 표시된 수치는 「조선미곡요람」 자료의 수치에서 소수점 셋 째 자리 이하를 사사오입(四捨五入)하여 둘 째 자리까지만 채용하였다. 그런데 1930년도 통계 수치가 오류다. 1930년도는 조선뿐 아니라 일본도 유례없는 대풍이어서 대일 수출량은 줄어들고 덩달아 쌀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을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간 해였다. 생산량은 올라가고 수출량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국내 소비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0.45라는 수치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1932년 1월 24일자 동아일보에는 ‘조선농촌경제와 미가(米價) 추세의 전망(二)’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조선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자료를 제시하였다. 이 자료는 ’37 「조선미곡요람」과 대부분 비슷하나 1930년도만 0.677로 되어 있다. 단순 계산을 하더라도 1930년대의 생산량은 1,918만 섬, 수출량은 542만 6천 섬으로 국내 소비량이 대략 1,375만 섬이 된다. 이를 당시 인구 2천만 명으로 나누면 0.687섬이 나와 0.45와는 거리가 멀고 0.677에 오히려 가깝다. 결국 「조선미곡요람」과 교과서의 수치가 오류임이 분명하다.
 
 
나) 쌀 소비량 관련 서술과 수능 15번 정답의 오류
 
일단 교과서의 1인당 쌀 소비량 통계는 오류임이 확인됐다. 여기서도 쌀 생산량 그래프와 마찬가지로 홀수 연도를 제외한 짝수 연도만으로 그래프를 작성하였다. 당연히 왜곡이다. 해당 기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을 홀수 연도를 포함하여 작성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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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를 보면 1924년까지 0,6섬 초과를 유지하다가 4년 동안 0,5섬 대를 유지한다. 그리고 극심한 흉년이 들었던 1929년에는 0.5섬 이하로 떨어졌다가 1930년 풍작 때는 최고치를 기록한다. 이를 두 구간으로 나누어 평균을 내면 1924년 이전은 0.622섬, 1925년 이후는 0.537섬으로 그 차이는 0.09섬 즉 한 말[斗]이 안 된다. 이를 다시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0.75되[升] 밖에 안 되는 미미한 양이다. 이 정도면 한 달에 구황식품인 고구마나 감자 몇 개만 먹어도 얼마든지 보충이 가능한 양이다. 이를 두고 과연 ‘조선인들이 먹는 쌀 소비량은 크게 줄었다.(동아)’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인의 80%를 넘는 농민들의 상식(常食)은 보리와 조를 포함한 잡곡이며, 상위 20% 정도가 쌀을 상식으로 했다. 쌀 소비층과 잡곡 소비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당연히 조선인의 전체 식량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쌀과 잡곡[조포함]을 모두 합한 통계 수치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아래 그래프가 1인당 연간 ‘식량’ 소비량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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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를 보고 과연 ‘조선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쌀 소비량 그래프도 일부 오류가 있는 통계 수치를 사용한데다 마찬가지로 짝수 연도만을 적용하여 하향 추세의 그래프를 그린 다음 차츰 줄어드는 것처럼 왜곡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이 계속 하락하였다.’는 분석을 전재로 한 교과서 서술이다. 
 
금성출판사
조선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계속 하락하여 일본인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부족한 식량은 만주에서 수입한 조 등의 잡곡으로 충당하였다.(246)
동아출판
조선인들이 먹는 쌀 소비량은 크게 줄었다.
[생각 넓히기] 당연히 국내 식량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중략- 쌀이 모자라자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오기도 하였다. (217)
리베르스쿨
이로 말미암아 국내 식량이 부족해지자(279)
미래엔
쌀 반출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일본의 식량 사정은 개선되었지만 국내 식량 사정은 크게 나빠졌다.(246)
비상교육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곡식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와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278)
지학사
일제는 증산된 쌀보다 더 많은 쌀을 가져갔다. 한국인은 식량이 부족해져 만주에서 수입한 잡곡을 먹어야 했으며...(286)
천재교육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에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만주에서 잡곡을 대량으로 수입하였다.(253)

모든 교과서에서는 ‘1인당 쌀 소비량이 감소하였다.’는 전제에서 곧바로 ‘식량 부족’ 또는 ‘식량 사정 악화’로 서술을 확장하고, 이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만주산 잡곡을 수입했다고 서술하였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는 1920년대 조선의 쌀은 식량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며, 둘째는 당시 약 83%에 해당하는 농민에게 상식(常食)은 쌀이 아닌 잡곡이었다는 점이다. 농민은 잡곡을 먹는 부류였기 때문에 쌀 소비가 감소한다고 해서 식량 사정이 악화하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 서술대로 쌀이 부족해서 잡곡으로 보충했다면, 이는 쌀밥을 먹던 상위 20% 내외의 지주나 자작농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농민과는 상관이 없다.
 
대다수 농민에게 쌀은 먹는 식량이 아닌 돈이었기 때문에 쌀과 식량을 동일시하여 쌀 부족이 곧 ‘식량 부족’이라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래 그래프는 1920년대 조선인이 식량으로 소비한 곡식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는 잡곡, 쌀, 조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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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체 식량 소비량에 미치는 쌀 소비량의 변동 추이는 극히 미미하다. 무엇보다 농민들은 쌀을 그냥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값을 받고 판매한다. 고가의 쌀을 팔아서 값이 싸면서도 양이 훨씬 많은 잡곡이나 조를 사서 쌀 대신 먹는다. 조선인의 식량 문제는 국내 쌀 잔존량의 문제가 아닌 구매력의 문제다. 돈이 있으면 뭐든지 사먹으면 되는 것이지, 국내 쌀 잔존량의 다과(多寡)와는 상관이 없다. 굳이 연관 짓자면 국내 쌀이 많으면 값이 떨어지고 부족하면 값이 올라간다. 쌀값의 등락에 따라 농가 소득도 비례하여 소득이 내려가면 구매력도 내려가고 소득이 오르면 구매력도 올라가는 것이다. 대형 매장에 산더미처럼 많은 물건이 쌓여 있지만 사고 싶은 대로 사지 못하는 것은 바로 구매력의 한계 때문이다. 쌀을 수출해서 1인당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쌀 소비량 감소가 곧 식량 사정 악화라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논리다.
 
그렇다고 식량사정이 넉넉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값싼 잡곡조차 1월을 넘기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내는 농민의 상당수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했다. 쌀밥은커녕 잡곡이라도 끊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힘겨운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잡곡보다 한참이나 고가(高價)인 쌀밥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궁핍한 삶 때문이었다. 그 원인을 소작제(小作制)와 같은 제도적 모순이나 고리대(高利貸)와 같은 사회적 부조리, 농가 소득원의 부재(不在) 등에서 찾아야지 대일 쌀 수출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면 이는 잘못 짚은 것이다.
 
또, 1920년대 국내 연평균 쌀 생산량은 대략 1,500만 섬, 인구는 약 1,800만 명 정도였다.(1931년부터 2천만이 넘어선다.) 1천 8백만 인구가 국내 생산된 쌀을 모두 소비할 경우 1인당 0.83섬이 된다. 당시 국내 거주 일본인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대략 1.2섬으로 이와 동일하게 먹으려면 조선에서는 2,160만 섬을 생산해서 한 톨도 수출하지 않고 소비해야 가능하다. 쌀을 상식으로 하기에는 애초에 부족한 생산량이다.
 
이렇게 부족한 처지에서도 수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쌀이 당시 조선의 유일한 외화획득원이기 때문이다. 쌀을 수출하지 않으면 미곡상인들은 쌀을 사지 않을 것이며, 상인들이 쌀을 사지 않으면 농민들은 판로가 막혀 쌀값은 폭락한다. 자연 농민들은 가처분 소득을 마련하기 어려워 소작료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빚으로 남겨야 했다. 유례없는 풍작으로 일본으로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국내 쌀 소비량이 대폭 늘어났으나 풍작기근, 풍작공포라 일컬을 정도로 농민들을 비참한 지경에 빠트린 1930년이 대표적인 예다.
 
다음으로 만주산 잡곡 수입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곡식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와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비상교육)”는 서술은 복잡한 경제 문제를 깡그리 무시한 서술이다. 이는 마치 일본이 쌀을 빼앗아가고 그 때문에 발생한 조선의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이 만주산 잡곡을 수입하여 먹게 했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대부분이 조인 만주산 잡곡의 수입도 일제가 맘대로 사들이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만주에서는 조가 수출 상품이고 조선에서는 수입 상품이기 때문이다.
 
원래 고량(高粱)이 상식이고 조가 상식이 아닌 만주에서 조를 재배하는 이유는 조밥을 상식으로 하는 조선에 수출하여 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만주속도 무역 상품이며 상품에는 상인이 있고 또 거래가 있기 마련이다. 곡물상은 만주속을 값싸게 들여와서 많은 이익을 남기고 파는 것이 목적이다. 시장 기능을 무시하고 일본이 맘대로 사와서 조선 농민들에게 쌀 대용식으로 나누어주었다는 식의 서술은 실상을 전혀 모르는 주장이다.
 
또, 조는 만주속이 수입되기도 하지만 국내에 생산되어 소비되는 양이 훨씬 많았다. 비록 수출상품은 아니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잡곡을 유통하는 시장이 있고 상인들이 있으며, 농민들도 잡곡을 내다 팔아서 돈을 마련하기도 한다. 한 해 지은 곡물 중에 남는 것을 내다 팔아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을 산다. 당연히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 변동이 생긴다.
 
국내산 조가 풍부한 상황에서 만주속(滿洲粟)을 대량으로 들여오면 국내산 조값이 떨어져 조농사를 지은 농민이 어려워진다. 1925년도에는 만주속 수입이 증가하면서 신문에서 만주속 수입 방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다. 만주속 수입으로 조선의 속작(粟作)‧맥작(麥作) 등 기타 전작물이 압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쌀값 하락의 원인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철저히 시장 원리에 의해 거래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자료는 국내 속(粟) 생산량과 만주속 수입량을 나타낸 그래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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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시한 ‘조선인 1인당 식량 소비량’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의 소비량은 거의 변동이 없다. 그런데 이 그래프에서는 국내산 조의 생산량이 올라가면 만주산 조의 수입량이 줄어들고, 국내 조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만주속 수입량이 올라감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만주속 수입은 국내산 조의 생산량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신문에는 만주속의 관세 인하 또는 철폐를 주장하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일본은 일찌감치 조선미의 가격 하락을 방지하고 국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만주속에 관세를 부과하여 수입을 억제하여 왔다. 하지만, 관세 부과로 미곡의 국내 소비는 늘어나지 않고 만주속 값만 올라 이를 상식(常食)으로 하는 농민들의 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또, 관세 징수가 단순히 곡가(穀價) 정책 외에 총독부의 재원 확보에도 목적이 있었다는 판단에 따라 소득세의 누진적 부과나 사치세 기타 자산 계급에 과하는 세금을 좀 더 합리적으로 부과하고 농민 보호를 위해 만주속에 대한 관세는 철폐할 것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행 교과서에는 시기도 특정하지 않고 ‘곡식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만주에서 잡곡을 들여와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실상과 전혀 맞지 않은 서술이다. 결국 15번 정답인 ‘④ 한국인의 식량 사정 악화로 다량의 만주산 잡곡이 수입되었다.’는 어느 모로 보나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명백한 오답이다.
 
 
2) 학계의 통설과 교과서 내용에는 ‘수출’이다.
 
이번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지문에는 ‘수탈’이라는 용어를 써서 산미증식계획이 곧 ‘수탈 정책’이라 하였다. 산미증식계획으로 증산된 쌀을 일본으로 수출한 사실을 두고 ‘수탈’이라 규정짓고 이를 시험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상적인 무역 거래인 ‘수출’과 강제로 빼앗아갔다는 뜻을 지닌 ‘수탈’은 분명 상반되는 개념으로 함께 사용할 수 없는 용어다. 수출이 옳으면 수탈이 잘못이고, 수탈이면 옳으면 수출이 잘못이다.
 
수탈인지 수출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탈은 피탈국(被奪國) 이해 당사자의 저항이, 수출은 수입국(輸入國) 이해 당사자의 저항이 필연적이다. 만약 출제자가 수탈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체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먼저 수탈자는 누구이며 피탈자는 누구인지 실체가 분명해야 하며, 어떠한 방식으로 빼앗아갔는지 그 방법도 제시해야 한다. 가령 일본 경찰이 조선 농민의 쌀을 총칼로 위협해서 빼앗아 갔는지, 일본 상인이 교활한 방법으로 조선 농민의 쌀을 빼앗아갔는지 구체적 정황 증거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조선 농민의 생생한 모습도 제시되어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수탈과 피탈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저 타인의 논문이나 학술서 여기저기에 산재(散在)한 ‘수탈’이란 두 글자를 긁어모아놓고 ‘이것이 수탈의 증거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설득력이 없을 뿐만 상식 이하의 연구자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수출임을 알 수 있는 정황은 대략 셋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대일 쌀 수출이 철저히 시장 기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둘째 일본이 자국 내 쌀값을 안정시키고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수많은 조선미 이입 억제책을 시도 또는 시행하였으며, 셋째 조선은 일본의 조선미 이입 억제책에 반발하여 원활한 수출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계속 높여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1920년대 신문 기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물론 금후라도 다시 일본으로 수출만 하게 되면 다시 오를 줄 아옵니다. 연 전에 한 번에 별안간 삼원씩 사원씩 폭등하던 것도 전혀 일본 수출이 폭증한 까닭이었습니다. -동아일보 1920. 4. 17.(이하 동아일보 생략)-
 
 ∙경기도 여주 이천에서 산출하는 잣채쌀은 자고로 일찍 익는 종자로 유명하야 해마다 유월 유두 때가 되면 의례히 진상하는 쌀이 나는 터인바 금년에도 금월 초생에 이천에 산출한 햅쌀이 인천 시장에서 매매가 되었다 함은 이미 보도한 바이어니와 그동안 미곡검사소에서 검사를 맛치고 지나간 17일에는 일본으로 수출이 되어 오사카‧고베의 시장에서 한 섬에 35원금으로 매매가 되얏는데 일본 시장에서도 이와 같이 일찍 되는 종자는 매우 드물다고 크게 환영을 받았다더라. –1921. 8. 26-
 
∙조선의 백미는 아무리 풍작이 된다 할지라도 이것을 외국으로 수출케 하기에는 극히 어렵고 다만 2~3백만 섬 씩이라도 수출될 여지가 있는 곳은 오직 일본뿐이니 일본도 근래에는 산미증식의 정책을 취하야 점차로 자급자족의 계획을 실현하랴 하니 일본을 유일의 시장으로 하는 조선미의 수출도 그 장래가 대단히 위태하게 보인다. -1924. 10. 6. 사설 ‘농업 전업의 위험’-
 
∙현재 일본의 미곡 조사회에서 문제가 되어 있는 소위 “조선미이입통제안”에 대하여 간단히 그 내용의 개략을 말해보자. 일본을 주체로 보니까 이입통제안이지 조선을 주체로 보면 이출통제안이다. 고로 이입통제안이라 하나 이출통제안이라 하나 결국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일본서 현재 조선미에 대한 문제가 중대시 되는 이유는 (1) 조선미의 이입 수량이 연년이 격증할 뿐만 아니라 (2) 거액의 조선미가 신곡기로부터 3~4개월간에 일시에 일본으로 유입하는 관계로 일본 내 미곡시장에서의 미가를 폭락시키어서 그러지 않아도 10여 년간을 두고 계속 불경기로 크게 곤궁한 처지에 빠져 헤매는 일본 농민에게 이중의 타격을 준다는데 있다. -1930. 1. 21. 기획연재-
 
∙조선 농민도 쌀밥을 먹고 싶어 하나 조밥을 먹게 되며 조밥이나마 구하나 얻지 못하는 빈약한 구매력의 소지자이다. 과거 2~3년간 수재와 한재로 흉작의 비참을 당하다가 금년엔 3백여만 섬이 증가되었으나 도리어 미증유의 미가 폭락으로 구매력의 증대는 고사하고 일반 농민은 생사의 기로에서 방황하며 일본 시장은 조선미의 배척을 결의하지 않았는가.-1930. 10. 25.-
 
∙여하간 조선농민의 입장으로 앉아서는 법률의 제정 실시에 의한 이입제한에 차를 절대로 반대함은 물론이오 그 소위 경제적 시설에 의한 이입제한일지라도 창고설치, 저자융통의 주요 목적이 조선농민의 편의를 도모하는데 잇지 아니하고, 조선미의 유출자유를 속박하는데 있는 이상 차에는 절대로 반대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 -1931. 6. 16. 사설 ‘조선미 이입 제한엔 절대 반대’-
 
다음으로 현행 한국사 교과서 서술이다. 교과서 서술을 확인하기 전에 1920년대 대일 무역에서 사용된 용어부터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이출
이입
일본 식민지 국가와의 거래
수출
수입
일본을 제외한 외국과의 거래
반출(搬出)
국내 도()와 도 사이의 거래
 
이 당시 무역에서는 수이출(輸移出)과 반출(搬出)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수이출은 다시 일본의 식민지 국가끼리 거래는 이출(移出)과 이입(移入)이 사용되고 기타 외국과는 수출과 수입이 사용되었다. 또, 반출(搬出)은 도(道)에서 도로 거래되어 이동될 때 사용된 것으로 당시 기록에 타도(他道) 반출이나 도외(道外) 반출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수이출이든 반출이든 모두 시장 기능에 의한 거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냥 가져가거나 강제로 빼앗아가는 일은 없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는 아래와 같이 산미증식계획과 관련한 용어와 서술이 등장한다. 
 
출판사
교과서 서술
비상교육
수출, 유출, 빠져나가다
천재교육
수출, 반출, 가져가다(2)
지학사
반출(2), 가져가다(2)
금성출판사
반출(3)
동아출판
판매, 유출
리베르스쿨
반출(2), 수탈(4), 약탈, 수입, 가져갔다
미래엔
반출(2), 수탈(2)
교학사
반출(2), 수탈(2)
 
2014년 기준.( )안 숫자는 노출 횟수
 
산미증식계획이라는 한 가지 사안을 두고 교과서마다, 또 한 교과서 내에서도 그 사용된 서술 용어가 다양하다 못해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소위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과서가 이토록 중구난방일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리베르스쿨 교과서의 경우가 특히 심하다. 이 교과서에는 ‘일본 쌀값이 하락하자 일본 지주들이 조선미의 수입을 반대하여 급기야 산미증식계획이 중단되었다.’고 서술하면서 또 수탈과 약탈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정상적인 무역활동인 수입이 어떻게 수탈(收奪)도 되고 약탈(掠奪)도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수탈은 강제로 빼앗는 것이지만, 약탈은 무력을 동원하여 빼앗는 것을 이른다. 교학사 교과서의 경우 대표집필자가 방송에서 지속적으로 수출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과서에는 ‘수탈’이라 하였다.
 
유출이라는 용어도 합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귀중한 물품이나 정보 따위가 불법적으로 나라나 조직의 밖으로 나가 버림. 또는 그것을 내보냄.’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용어를 제외하면 모두가 수출 또는 수출 행위에 버금가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어느 것이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가져가거나 강제로 빼앗아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능 이후 이의 신청과 함께 국민신문고를 통해 위 문항의 오류를 지적하는 자료를 제시하고 무효임을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한 평가원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학술 연구 수준에서 산미 증식 계획이 수탈의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거나 국내의 쌀 부족과 만주 잡곡의 수입이 서로 연관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미 증식 계획에 관한 학계의 통설이 있고, 모든 교과서가 이를 토대로 산미 증식 계획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수능 한국사 15번 문항은 학계의 통설과 교과서 내용을 근거로 출제되었습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답변 -
 
아마도 답변을 쓴 출제자는 ‘산미증식계획은 조선에서 쌀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며, 산미증식계획으로 증산된 많은 쌀을 일본이 수탈해 갔다.’는 것을 전제로 출제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렇다면, 이 출제자는 산미증식계획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행 8종 한국사 교과서조차 제대로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산미증식계획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학계의 통설과 교과서 내용을 근거로 출제되었다.’고 답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 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학계의 통설이 도서관 수장고 깊숙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교과서 내용은 5분이면 찾을 수 있다.
 
이에 출제 근거인 ‘학계의 통설과 교과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줄 것을 요구하는 추가 질의를 올리고, 평가원을 찾아가 수능 관리 담당자를 만나 출제자가 답변 한 출제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내부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고 답변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며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심지어 교과서는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추가 질의를 올린 지 3일 만인 12월 8일 평가원이 올린 답변에는 친절하게도 산미증식계획이 서술된 8종 교과서의 단원 제목과 해당 쪽수를 표로 만들어 교과서 내용이라고 제시했다. 구체적 내용이 아닌 쪽수만을 제시한 것은 담당자가 말한 보안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학계의 통설은 『신편한국사』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의 개요 부분에서 ‘수탈’이란 용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부분을 복사해서 보내왔다. 그것이 역사분야 전문 인력이 3일 동안 검토하고 토의한 결과인지 묻고 싶다. 문제는 답변에 제시한 교과서의 해당 쪽에는 대부분 아래와 같이 강제로 빼앗아 간 증거는 없고 수출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서술이 있다는 것이다. 
 
∙쌀 반출로 지주의 경제력은 더욱 커졌으나...(교학사, 244)
∙반면 지주들은 쌀을 판매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동아출판, 217)
∙산미 증식 계획은 1930년대 들어 일본의 쌀값이 하락하자 일본 지주들이 우리나라 쌀의 수입을 반대하여 1934년에 중단되었다.(리베르스쿨, 279)
∙그리고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늘어나면서 지주의 경제력은 커졌지만, 지주가 쌀 증산에 드는 비용을 소작농에게 전가하여 농민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비상교육, 278)
∙산미 증식 계획의 추진 과정에서 토지 회사나 지주들은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여 더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천재교육, 253)

이어서 통설이라고 제시한 『신편한국사』에도 수출임을 밝히는 서술이 있다.
 
1930년 이후 대공황의 여파로 정부 알선 자금이 급격히 감소하고 쌀값 하락으로 수리조합의 경영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실적이 부진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농민들이 조선미 이입을 반대함에 따라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도 해산하고 산미증식계획은 중단되었다. - 국편 『신편한국사』, 48권 - 
쌀값 하락은 시장 기능에 의해 거래되었다는 증거이며, 일본이 조선미의 이입(移入)을 반대했다는 것은 조선의 쌀 수출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빼앗아가는 수탈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마찬가지다. 
 
제1차 계획은 1921년부터 1925년까지의 5개년 계획이었다. 제2차 계획은 1926년부터 1935년까지의 10개년 계획이었다. 그런데 10개년 계획이 1934년에 중단된 것은 조선미의 대일 수출 증대로 일본 농업이 위기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일본 농업이 위기에 부딪쳤다는 것은 조선미의 이입으로 일본 쌀값이 폭락했다는 뜻이다. 조선 쌀 때문에 일본 쌀값이 폭락하고 일본 농업이 위기에 부딪치는 마당에 조선 쌀을 왜 빼앗아 가야했는지 출제자에게 묻고 싶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15번 문항은 (1) 교과서의 서술 오류를 근거로 출제하였으며 (2) 지문의 ‘수탈’은 학계의 통설 및 교과서 서술과 다르며 (3) 정답으로 확정한 ‘④ 한국인의 식량 사정 악화로 다량의 만주산 잡곡이 수입되었다.’는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감소가 곧 식량 사정 악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만주산 잡곡의 수입은 농민의 궁핍한 경제력 때문이지 쌀 수출과는 직접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명백한 오류이다.
이토록 명백한 오류를 안고 있는 15번 문항에 대한 필자의 이의 신청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면밀한 검토도 없이 ‘이상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이는 명백히 수험생을 속이고 국민을 속인 것이다. 평가원은 15번 문항의 오류를 인정하고 반드시 무효로 처리해야 한다.▩

입력 :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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