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칼럼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45)

하나의 사안을 두고 교과서마다 다른 서술··· 이것이 역사 인식의 다양성인가?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본문이미지
▲ 동예의 집터
 
정확한 사료 번역은 올바른 역사 서술의 기본(4)- 옥저와 동예, 그리고 삼한

이번에는 초기국가의 마지막인 동예(東濊)와 옥저(沃沮), 그리고 삼한의 풍습에 대한 사료 인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동예의 금기(禁忌) 사항이다.
 
꺼리는 것이 많아서 질병으로 사망하면, 바로 옛집을 버리고 다시 새집을 짓는다.
<多忌諱, 疾病死亡, 輒捐棄舊宅, 更作新居.>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병을 앓던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살던 집을 버리고 다시 새집을 지어서 이사 가는 것은 아마도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해 금성출판사는 ‘질병으로 사람이 죽으면 살던 집을 폐기하는 등 꺼려서 피하는 것이 많았다.’고 서술하여 본의가 제대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리베르스쿨, 미래엔, 비상교육은 모두 ‘꺼리는 것이 많아서 병을 앓거나 사람이 죽으면 옛집을 버리고 곧 다시 새집을 지어 산다.’고 하여 질병사망(疾病死亡) 부분을 잘못 번역하였다. 물론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잘못된 번역을 그대로 옮긴 경우다.
 
여기서 ‘병을 앓거나 사람이 죽으면’으로 번역할 경우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병에 걸리면 옛집을 버리고 새 집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병에도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는데, 조그만 병에 걸리기만 해도 집을 버리고 갈 것인가? 또, 새집으로 이사 갈 때 병에 걸린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데려 간다면 집을 버리고 가는 의미가 없어지고, 두고 간다면 산사람을 팽개치는 것과 같다. 죽는 것도 그 경우가 다양한데 병사(病死)가 아닌 경우에도 이사를 간다면 이래저래 이사 다니다 세월 다 보낼 것 같다.
 
기휘(忌諱)가 금기(禁忌)와 같은 의미의 단어라는 점에서 ‘병을 앓거나 사람이 죽으면’이라는 조건은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사람들은 평생 병에 안 걸리고 죽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을 앓다가 죽으면’ 또는 ‘질병으로 죽으면’으로 번역해야 문맥이 자연스럽다.
 
다음으로 옥저의 혼인 풍습에 대한 서술이다.
 
그 나라의 시집가고 장가드는 법은 여자 아이 열 살에 혼인을 허락하면 사위집에서 데려다가 길러 며느리로 삼는다. 성인이 되어 다시 여자 집으로 돌려보내면 여자 집에서 돈을 요구하고 이를 다 갚으면 바로 다시 사위집으로 돌아간다.<其嫁娶之法, 女年十歲, 已相設許. 壻家迎之, 長養以爲婦. 至成人, 更還女家. 女家責錢, 錢畢, 乃復還壻.> -삼국지 위서 동이전-

여기서 오역이 잦은 부분은 ‘女年十歲, 已相設許(여년십세, 이상설허)’이다. ‘已(이)’는 ‘이미’라는 해석보다 과거 시제로 처리하고 相(상)은 상대가 있을 때 쓰이는 글자이므로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已相設許’는 ‘약속을 정하고 나면’으로 번역하면 자연스럽다. 이를 토대로 교과서별 서술과 인용사료를 살펴보기로 한다.
 
리베르스쿨
신부 집에서는 여자가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고, 신랑 집에서는 여자를 맞이하여 성장할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아내로 삼는다.(28)
미래엔
그 나라(옥저)의 혼인 풍속은 여자 나이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하는 것이다. 신랑 집에서는 여자를 맞이하여 성장하면 길러 아내로 삼는다.(20)
천재교육
여자 나이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한다. 신랑 집에서는 여자를 맞이하여 다 클 때까지 길러 아내로 삼는다. 여자가 어른이 되면 친정으로 보낸다.(23)
 
세 출판사 모두 ‘女年十歲(여년십세)’를 무슨 근거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 나이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한다’고 했다. 10살이 되기 전이라는 말은 태어나고부터 10살 까지 모두 포함되니 올바른 번역이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女年十歲’에는 ‘열 살 이전’이라는 뜻이 없다. 또 대부분 사위를 신랑이라 하였으나 사위와 신랑은 분명 다르다. 원전에 서가(壻家)라고 되어 있으므로 원전 그대로 ‘사위집’이라 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특히 리베르스쿨의 같은 쪽에는 ‘민며느리는 장래에 며느리로 삼으려고 민머리인 채로 데려와 키운 여자아이를 의미한다.’고 하여 민며느리의 뜻을 ‘민머리인 채’라고 하였으나 이것도 근거가 없다. ‘민’은 ‘없다’는 뜻이 있으므로, ‘아직 대가(代價) 없이 데려온 며느리’라는 풀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삼한의 풍습이다.
 
늘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무리 지어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며 밤낮을 쉬지 않는다. 그 춤은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몸을 낮추었다가 솟구쳤다가 하면서 손발이 척척 맞아 절주(節奏:가락)가 탁무(鐸舞)와 비슷한 점이 있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렇게 한다.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其舞, 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삼국지 위서 동이전-
 
5월에는 씨뿌리기를, 10월에는 농사일을 마친 다음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로 수십 명이 일어나서 뒤를 따르면서 춤추는 모습이 그려진다. 10월에도 5월과 같다고 하였으니, 시기가 다를 뿐 행사의 내용이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과서의 서술은 참으로 다양하다.
 
금성출판사
씨를 뿌리고 난 5월과 농사를 마친 10월에 계절제를 지내고 흥겨운 축제를 열었다.(36)
동아출판
여러 나라는 영고(부여), 동맹(고구려), 무천(동예), 계절제(삼한) 등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22)
리베르스쿨
천군은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월과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10월에 계절제를 주관하였다.(28)
미래엔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수릿날과 가을걷이를 마치는 10월에는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21)
비상교육
씨를 뿌린 5월에는 수릿날, 추수를 마친 10월에는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 지냈다.(26)
지학사
한편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5월제10월제와 같이 목축 및 농경과 관련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는 행사가 있었다.(28)
천재교육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5월과 추수를 끝낸 10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22)
 
이를 보면 금성출판사, 동아출판, 리베르스쿨은 5월 제사와 10월 제사를 아울러 계절제라 하였으며, 반면 미래엔과 비상교육은 5월은 수릿날, 10월은 계절제로 분리하였다. 5월제를 음력 5월 5일의 ‘수릿날’(단오제)과 동일시한 것은 1970년대 이래 국정 교과서의 서술을 따른 것으로 과연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근거가 없다. 지학사와 천재교육은 원전에 충실하여 특별히 수릿날이나 계절제와 같은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다. 또, 리베르스쿨에는 근거 없이 천군이 계절제를 주관한다고 하였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하나의 사안을 두고 교과서마다 이토록 다르게 서술하는 데다 원전 오역까지 추가될 때는 정말 머리가 어지럽다. 그나마 학생들은 학교에 정해주는 1권만을 공부하니 다행스럽긴 하다. 역사 인식의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고 있는 현행 8종 검정 교과서 체제가 얼마나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입력 : 2017.12.08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

국사교과서연구소장 전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학사/석사/박사수료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