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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43)

부여에 "형사취수제"가 있었다고?··· 오역 가득한 교과서 부여(夫餘)편 번역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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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의 건국과 발전,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

정확한 사료 번역은 올바른 역사 서술의 기본(2) - 부여(夫餘)
 
현행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 소개된 초기 국가와 관련한 서술은 모두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토대로 서술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번역 자료를 사료(史料)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들 인용 사료(史料)의 번역이 잘못되거나 미흡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초기국가 서술과 관련하여 사료 제시나 이를 바탕으로 한 서술에서 어떠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부여의 엄격한 형벌에 관한 원전 사료와 교과서 서술이다.
 
형벌을 가함이 엄격하여 살인자는 죽이고 가족은 몰수하여 노비로 삼는다. 물건을 훔치면 열 두 배로 갚게 한다. 남녀가 간음(姦淫)하거나 부인이 투기하면 모두 죽이는데, 투기를 더욱 증오하여 죽인 시체는 나라의 남쪽 산 위에 두었다가 썩어 문드러질 때가 되어 여자 집에서 가져가고자 할 경우 우마(牛馬)를 바쳐야 준다.(用刑嚴急, 殺人者死, 沒其家人爲奴婢. 竊盜一責十二. 男女淫, 婦人妬, 皆殺之, 尤憎妬, 已殺尸之國南山上, 至腐爛, 女家欲得, 輸牛馬乃與之. -『삼국지』 위서 동이전, 이하 같음 )
 
교학사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다. 또한,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물건 값의 12배를 배상하게 하고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항목이 전해지고 있다.(22)
금성출판사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다. 도둑질한 자는 12배로 배상하게 하였으며, 간음한 자와 투기한 부인은 사형에 처하였다.(33)
리베르스쿨
부여에는 112법이라는 엄격한 법이 있어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는 훔친 것의 12배를 갚게 하였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였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다. 심지어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까지도 사형에 처하였다.(26)
비상교육
살인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면 12배를 배상하게 하였으며,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을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24)
미래엔
형벌은 엄하고 각박하여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집안사람은 노비로 삼는다. 도둑질을 하면 물건의 12배를 변상하게 하였다.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모두 죽였다. 투기는 더욱 증오해서 죽인 후 시체를 나라의 남산 위에 버려서 썩게 한다. 친정집에서 시체를 가져가려면 소나 말을 바쳐야 한다.(18, 사료)

원전(原典)의 ‘남녀가 간음(姦淫)하거나 부인이 투기하면 모두 죽인다.’는 부분을 교과서에서는 대부분 ‘간음한 자와 투기한 부인’이라 하여 병렬로 서술하였다. 남녀 간의 간음 행위와 여자의 투기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원전과는 달리 교과서는 ‘간음한 자와 투기한 부인’이라 하여 마치 남자는 간음 행위, 여자는 투기 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도록 하였다.
 
더구나, 금성출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4개 교과서는 ‘투기가 심한 부인’이라 하여 투기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달리 하는 것으로 서술하였다. 투기가 심하지 않은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에 원전의 의미를 왜곡한 것이다. 이는 원전에 없는 자의적 번역으로 대부분 원전을 확인하지 않고 옮겼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출전까지 밝힌 미래엔 교과서의 경우 ‘집안사람’이라 한 번역은 원전의 ‘其家人’에 맞게 ‘그 집 사람’이라 해야 살인자의 가족임이 분명해진다. 또, ‘투기는 더욱 증오해서’는 ‘투기를 더욱 증오해서’로, ‘친정집’은 원전의 ‘女家’를 그대로 옮겨 ‘여자의 집’이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특히, ‘남녀가 간음하거나 부인이 투기하면 모두 죽이는데, 투기를 더욱 증오하여 죽인 시체는 나라의 남쪽 산 위에 두었다가 썩어 문드러질 때가 되어 여자 집에서 가져가고자 할 경우 소나 말을 바쳐야 준다.’고 하여 하나의 문장으로 옮겨야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어서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는 혼인 풍습에 관한 내용이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데 흉노와 같은 풍속이다.(兄死妻嫂, 與匈奴同俗.)

금성출판사
혼인 풍습으로 죽은 형의 부인을 아내로 맞는 형사취수혼이 행해지기도 하였다.(33)
리베르스쿨
형사취수제는 형이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제도로 남자 집안의 재산이 여자 쪽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방편이었다.(26, 고구려의 풍습으로 소개)
지학사
부여에는 취수혼, 고구려에서는 서옥제, 옥저에서는 민며느리제, 동예에서는 족외혼 등이 시행되었다.(27)
부여에서는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 이 풍속은 흉노와 같다.(27, 사료)
천재교육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 풍습도 있었다.(19, 형사취수제)
 
부여의 혼인 풍습을 거론할 때 으레 ‘형사취수혼’, ‘취수혼’, ‘형사취수제’ 등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형사취수’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다. 하지만, 원전에 분명히 ‘형사처수(兄死妻嫂)’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타 자료에서 ‘형사취수’의 용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잘못이다. 형사처수에서 ‘처(妻)’는 ‘아내로 삼다[爲之妻]’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글자다. 교과서대로 ‘취수’라고 했을 경우 ‘형수를 취하다’라는 뜻이 되는 취수(取嫂)와 ‘형수에게 장가들다’는 뜻이 되는 취수(娶嫂)로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어느 쪽도 ‘처로 삼다.’, ‘아내로 삼다’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서술된 용어나 글자는 편찬 당시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엄선하여 집필하였기 때문에 합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함부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 본래의 의미를 정확하게 담아내지 못하거나 심지어 왜곡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사취수’는 본래의 뜻을 훼손한 자의적 변경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형사취수제’라 하여 마치 일반화된 제도인 것처럼 쓰는 것도 문제다. 부여의 민간에서 나타나는 풍습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제도로 정착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형이 죽을 경우 형수를 아내로 삼는 ‘형사처수’의 풍습이 있었다.”는 정도로 서술하면 된다.
 
다음은 부여의 왕권과 관련된 사료다. 
 
옛 부여 풍속에 홍수나 가뭄이 고르지 못하여 오곡이 익지 않으면 바로 왕에게 허물을 돌려 혹은 ‘바꿔야 한다.’, 혹은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舊夫餘俗, 水旱不調, 五穀不熟, 輒歸咎於王, 或言當易, 或言當殺.)

교학사
옛 부여 풍속에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22, 사료)
동아출판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라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다.(23, 사료)
천재교육
옛 부여의 풍속에 장마와 가뭄이 연이어 오곡이 익지 않을 때, 그때마다 왕에게 허물을 돌려서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라거나 혹은 왕은 마땅히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다.(19, 사료)

이와 관련한 교과서 본문 서술에는 대부분 문제가 없으나 사료 인용에서 번역이 잘못 되었다.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에 해당하는 원문은 ‘水旱不調(수한부조)’로 수(水)는 ‘비’를, 한(旱)은 ‘가뭄’을 나타낸다. 따라서, ‘水旱不調’는 ‘비와 가뭄이 고르지 못함’이란 뜻으로 폭우나 장마 또는 가뭄 등으로 날씨가 고르지 못하여 흉년이 드는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부조(不調)’는 ‘고르지 못하다’는 뜻이지 ‘계속’이나 ‘연이어’의 뜻이 아니다. 이 부분의 번역은 국편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잘못된 번역 자료를 그대로 갖다 쓴 데서 온 오류다. 국편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탑재된 ‘중국정사조선전’에는 오역이 적지 않아 이용에 주의를 요한다.
 
이번에는 제천(祭天) 행사인 영고(迎鼓)에 관한 서술이다.

은(殷) 정월[12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고 온 국민이 모여 연일 마시고 먹으며 춤을 추니 영고(迎鼓)라 한다. 이때 형옥을 중단하고 죄수들을 풀어준다.(以殷正月祭天, 國中大㑹, 連日飲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 斷刑獄, 解囚徒.)
 
리베르스쿨
부여는 해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치렀다. 영고는 둥둥둥 북을 울리면서 신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국지위서 동이전에는 추수를 마친 12월에 온 나라 백성이 동네마다 한 곳에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며칠 동안 계속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놀았으며, 죄가 가벼운 죄수는 풀어주었다.’라는 기록이 있다.(26)
지학사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5월제10월제 같이 목축 및 농경과 관련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는 행사가 있었다. 이때에는 죄수를 풀어 주고 모든 사람이 잘 차려입고 나와 밤낮으로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다.(28)
천재교육
정월에 지내는 제천 행사는 국중 대회로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은 영고라 한다.(23, 사료)
금성출판사
은력 정월에 하늘에 제사하고 나라 사람들이 도성에 크게 모여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름 하여 영고라 한다. 이때에는 형옥을 판결하고 죄수들을 풀어 준다.(36, 사료)

리베르스쿨 교과서에는 “영고는 ‘둥둥둥 북을 울리면서 신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여 영고의 의미를 특정하였으나 이는 집필자의 자의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영고(迎鼓)가 부여의 고유어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다 위와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온 나라 백성이 동네마다 한 곳에 모여'라는 서술에서도 ‘동네마다 한 곳에 모여’는 원전에 없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죄가 가벼운 죄수는 풀어주었다.’라는 부분도 그냥 죄수를 풀어준다고 하였을 뿐 죄의 경중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서술이다. 지학사 교과서의 ‘모든 사람이 잘 차려입고’라는 서술도 원전에 없는 내용이다.
 
천재교육의 인용사료는 완전히 잘못된 번역이다. ‘정월에 지내는 제천 행사는 국중 대회로’라는 문장은 다른 달에도 제천 행사가 있는데 특별히 정월에 지내는 제천 행사는 ‘국중 대회’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국편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잘못된 번역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다. ‘정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고 온 국민이 모여 연일 마시고 먹으며 춤을 추니 영고라 한다.’고 해야 자연스럽다.
 
금성출판사의 ‘형옥을 판단하고’는 ‘형옥을 중단하고’의 오역이다. 형옥(刑獄)은 ‘형벌(刑罰)과 옥사(獄事)’를 일컫는 말이니 죄인에게 형벌을 내려 옥에 가두는 일이다. 따라서, 죄의 판단이 이미 끝나고 감옥에 가두어 처벌을 실행하는 것이다. 판단의 단계는 이미 지났다는 뜻이다.
 
이와 동일한 오역이 국편에서 주관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도 출제된 바 있다. 2017년 1월에 실시된 34회 고급 3번 지문에서는 ‘은력(殷曆)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국중대회(國中大會)에서 연일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를 영고(迎鼓)라고 한다. 이때 형옥(刑獄)을 판단하여 죄수를 풀어주었다.’고 한 지문 중에서 ‘형옥(刑獄)을 판단하여 죄수를 풀어주었다.’고 한 부분이다. 이는 ‘형옥을 중단하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로 하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다. 앞부분의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국중대회(國中大會)에서’라는 번역도 어색한 문장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고 도성 안 사람들이 크게 모여서’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때 ‘國’은 ‘왕성의 안[王城之內]’ 즉 ‘도성(都城)’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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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한국고전번역원, 규장각, 장서각 등에는 한문으로 된 원전 자료를 번역하여 제공하고 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정확하고 꼭 필요한 자료를 찾는데 투자해야 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덜어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원전 자료가 경사자집(經史子集)에 걸쳐 워낙 다양한 데다 그 분량 또한 엄청나기에 간혹 오역이나 미흡한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한다. 현재 널리 사용되지 않은 문자와 문체로 기록된 한문 원전 자료를 제한된 인력과 제한된 시간으로 오류 하나 없이 완벽하게 번역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독자의 오류 제보로 더욱 완성도 높은 번역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제는, 오역이나 미흡한 번역 자료를 연구 논문이나 교과서 집필에 이용하는 연구자가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데 있다. 교과서에 인용된 사료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오역이나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대부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교과서 집필자는 사료 인용에 앞서 원문과 대조하여 오역이나 미진한 부분은 반드시 바로잡아 본래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가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라면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현행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 인용된 번역 사료에는 그런 오역과 왜곡이 적지 않다.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입력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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