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이즈 제도(伊豆諸島)는 일본의 반도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있는 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도쿄 도(都)의 일부로, 두개의 초(町)와 여섯 개의 촌(村)으로 이뤄져 있다. 예로부터 ‘이즈 칠도(伊豆七島)’로 불리나, 실제로는 수십 개의 섬들로 구성돼 있다. 면적은 301.39㎢이고, 인구는 24,960명이다.
모든 섬들은 국립공원의 영역 내에 있고, 낚시와 스포츠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연중 찾는다. 에도 시대에 니지마(神島), 고즈시마(神津島) 등 죄수들의 유배지였다. 무인도인 ‘도리시마’는 철새들의 서식지다.
슬프기 그지없는 역사의 사실
필자는 그러한 제도의 길목 이즈반도의 온천 마을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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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모토 요리이에의 묘지 |
“미나모토노 요리이에(源頼家, 1182-1204)는 가마쿠라 막부의 제2대 쇼군(將軍)으로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의 적장자(嫡長子)였다. 모친은 이즈(伊豆) 호족의 딸 ‘호조 마사코(北条政子, 1157-1225)’. 요리이에는 부친 요리토모(賴朝)가 말에서 떨어져 사망하자 제2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 됐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요리이에(頼家)가 권력 강화를 꾀했지만, 외척 호조씨(北条氏)들이 막부 창업 공신들인 유력 고케닌(御家人)들과 13인의 합의제를 출범시킴과 동시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요리이에는 호시탐탐 권력을 노린 외척 호조씨(北条氏)에 의해 쇼군직을 박탈당했다. 그 후 이즈(伊豆)의 슈젠지(修禪寺) 온천에 유폐됐다가 1204년 외할아버지에 의해 살해됐다.”
‘유배도 모자라서 암살이라?’
필자는 안내문을 읽고서 ‘권력의 끝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다. 불현듯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권력은 급속하게 성장한 식물처럼, 뿌리와 줄기를 충분하게 뻗지 못해서 불어 닥친 폭풍우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고 만다.”
준비 없는 군주는 항상 휘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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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렌 별 두 개의 목조 불상 |
“귀족들은 선견지명이 있고 교활하게 음모를 꾸밀 수 있어서, 승산이 높은 자(者)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의 묘지 옆에는 비운의 왕자 요리이에(頼家)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그의 모친 호조 마사코(北条政子)가 세운 작은 암자가 있었다. 이름 하여 시케쓰텐(指月殿)-시케쓰는 불교의 경전(經典)을 의미한다.
동행한 일본인들은 역사를 외면한 채 “미슐렌 별(星)을 두 개나 받은 이즈(伊豆)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당 내의 불상도 연꽃 받침도 역사의 숨결이 스민 목조물이다"고 설명했다. 이즈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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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 가와 |
마을 중심에는 슈젠지가와(修善寺川)가 흐른다. 사람들은 이 강을 통상 가쓰라가와(桂川)로 부른다. 이 강을 중심으로 양편 길과 언덕에 관광지와 호텔, 여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807년에 세워진 슈젠지(修禪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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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젠지 사찰 |
지명(地名)에서 풍기는 것처럼 이곳에는 유명한 사찰이 하나 있다. 발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른 슈젠지(修禪寺)-사찰 입구에 쓰여 있는 안내문을 들여다봤다.
<슈젠지 온천의 발상지이며, 헤이안(平安, 794-1185) 시대의 초기인 807년에 고보(弘法)대사가 세운 고품격의 절이다. 이곳 경치가 중국의 로산(盧山)과 닮았다고 해서 쇼로잔(肖盧山)이라고 불렀다. 가마쿠라(鎌倉, 1180-1333) 초기 때이다. 하타케야마 쿠니키오(畠山國淸)와 아시카와 모토우치(足利基氏)의 전쟁에 휘말려 1401년 모두 불에 타고 말았다. 1489년에 호조 소운(北条早雲, 1432-1519)이 재건해서 소도슈(曺洞宗)로 개칭됐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온천지대 사찰의 간단한 안내문에서 얽히고설킨 일본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절을 세운 고보(弘法, 774-835)대사는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학구파로서 불교에 대한 저술을 많이 했으며, 서예에도 능한 승려로 유명하다. 그는 신곤슈(眞言宗)의 시조이다. 일본의 명물인 ‘사누키(讚岐) 우동’을 중국에서 최초로 들여온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사찰이나 신사에는 대체로 우물이 있다. 손을 깨끗이 씻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라는 의미이다. 슈젠지(修禪寺)에는 다른 곳과 달리 따뜻한 온천수 우물이 있었다.
‘마셔도 좋다’는 안내문에 따라 필자는 따뜻한 온천수로 목을 축이고 본당 앞으로 갔다. 사찰의 곳곳에서 세월의 두께가 느껴졌다. 진지하게 합장하는 일본 관광객들과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대나무 숲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숲 사이로 드러난 다리들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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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마을의 대나무 숲 |
어느덧 저녁노을이 강물을 물들이고 있었다. 온천 마을도 서서히 시간의 고요함으로 잠들어 가고 있었다.
권력의 욕심보다는 자연의 섭리(攝理)가 훨씬 우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