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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전설이 아닌 실존 인물, ‘오타 줄리아’ 이야기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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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어
 
우리나라는 지금 성추행, 성폭행 등의 문제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토록 잘난 사람들이 이토록 추락할 수가 있을까?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비춰지고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420여 년 전 일본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시금 들여다 본다(필자 칼럼 2018. 3. 27자 참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맞선 조선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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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푸성에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상
“이럴 수가 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얼굴을 똑바로 들고서 대답하다니...놀라운 일이로다.”
 
슨푸성(駿府城)의 문무백관을 비롯해서 궁녀들까지 혀를 내둘렀다. ‘오타 줄리아’가 나르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일본 최고 권력자와 맞대응을 하고 있어 서다. 이에야스(家康)가 목청을 높였다.
 
“저 아이를 멀리 바다 한 가운데의 섬으로 보내버려라.”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화를 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측실이 되라’는 것과 ‘종교(기독교)를 버리라’는 두 가지 제안을 ‘줄리아’가 한 마디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오시마로 유배 길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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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줄리아의 초상화
결국 ‘오타 줄리아’는 이에야스(家康)의 명(命)에 의해 슨푸성(駿府城)을 떠나 이즈(伊豆)제도의 섬 오시마(大島)에 유배를 가게 됐다. 1612년 3월 20일의 일이다.
 
그녀는 임진왜란 때 평양성 근처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포로로 일본에 끌려가서 그의 양녀로 자랐다. 6-7세 때 모레홍 신부에 의해 ‘줄리아’라는 세례명이 붙여졌다. 또 하나의 우연한 일이 있다.
 
<돌아가라 나의 푸른 새 메마른 느릅나무의 가지 곁으로
네가 없는 오오 세상 속은 아침 해 조차 떠오르지 않아
 
(...)
 
불타라 여름의 십자가 남쪽하늘 높이
밤의 어둠을 비추는 별자리는 눈물의 상들리에
마치 무지개처럼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
 
(...)
 
사랑의 끝을 알리듯이 찢겨진 나의 로자리오>
 
일본의 유명 밴드 ‘서던 올 스타스(Southern All Stars)’가 예로부터 내려온 전설을 토대로 작사·작곡한 노래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이다. 무심코 노래를 하던 그들도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전설이 아닌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석등과 만나다
 
필자는 ‘줄리아가 슨푸성(駿府城) 한 구석에 있는 석등에 남몰래 기도하면서 살았다’는 기록을 접하던 중, 일본 여행 중에 시즈오카(靜岡)의 호다이인(寶台院)이라는 절(寺)을 찾았다. 한적한 경내에서 할머니 한 사람이 석등에 물을 뿌리면서 청소하고 있었다. 필자는 청소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할머니! 이 석등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나요?”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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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줄리아가 실제로 기도했던 크리스천 석등

이때 호다이인(寶台院)의 주지스님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오타 줄리아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네. 10년 전부터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어디서 오셨나요?‘
“한국의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에서요?”
“네. 그렇습니다.”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놀라던 주지 스님은 ‘오타 줄리아’가 기도했던 석등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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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보세요.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아무도 모르게 사각형 돌(石)에 약간의 돌출을 했습니다. 그 아래 ‘성모 마리아 상(像)’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상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땅속에 묻었던 것입니다.”

 “그렇군요. 놀라운 일이군요. 그런데, 이 석등을 누가 만들었나요?”

“안내문에 쓰여 있는 바와 같이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다인(茶人)인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 1544-1615)’ 선생이 만들었습니다.”
 
줄리아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 시간을 이용해서 성경책을 읽고, 또 기도했다. 그런 가운데 줄리아는 천주교와 적대적인 도쿠가와(德川)나 이교도들의 눈을 피해야 할 기도단(외형은 봉양탑)이 필요했다. 그녀는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 씨에게 기도단 제작을 부탁했던 것이다

줄리아의 마지막 삶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가 처형을 당한 후 슨푸성에서 기거하게 된 ‘줄리아’는 외부의 신부들과 자주 접촉하지 못해서 석등에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그리고서 유배지(神津島)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오랜 세월 보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줄리아’가 눈을 감은 날 어디선가 천사들의 노래<찬미의 기도>가 들려왔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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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마지막 유배지 고즈시마

저 동편하늘 환히 밝아오고,
새들은 깨어 노래 부른다.
저 풀잎에 찬이슬.
고요한 아침 다함께 모여 경배 드린다.
 
어두운 밤 지나 찬란한 이 아침.
나 삶의 그늘 벗어나리라.
저 하늘 드맑고 참 아름다워,
잠깨면 기뻐 주와 만나리.
 
시달린 이 몸 고달파서 쉴 때
나 눈을 감고 주를 뵙는다.
저 땅위의 참 기쁨 새롭게 솟아,
나 주와 함께 길이 살리라.
                                                                
*<줄리아가 해배(解配)되어 오사카와 나가사키에서 살았다는 설(說)이 있음을 첨언한다.>
 

입력 :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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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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