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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25)

개국(開國)을 연호라고 우기는 미래엔 한국사 교과서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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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기무처 회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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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개국기년’을 검색하면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개국기년은 1894년 갑오경장 때 채택된 연호(年號)이며, 건양(建陽) 연호를 사용한 1896년 1월 1일을 기하여 폐지되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
 
‘개국기년’은 연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개국’도 연호가 아니다. 고종 때 사용한 연호는 건양(建陽:1896~1897)과 광무(光武:1897~1907) 둘 뿐이다. 개국기년은 조선이 개국한 1392년을 기원(紀元)으로 삼아 연도를 표시한 것으로 서기(西紀), 불기(佛紀), 단기(檀紀)로 연도를 적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전에는 시행 시기를 1894년이라고 하였으나, 그보다 훨씬 앞선 1876년 「조일 수호 조규」를 체결할 무렵에 이미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록상으로는 수호 조규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강화도에서 일본국 대표 구로다 키요타카에게 보낸 「서술책자(敍述冊子)」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며칠 후 체결된 「조일 수호 조규」의 마지막 서명란에는 ‘大朝鮮國開國四百八十五年 丙子二月初二日(1876. 2. 2.)’로 명시하여 조선이 근대적 조약의 당사국으로서 주권 국가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후 1892년까지 체결된 스무 건이 넘는 외국과의 조약에는 모두 개국기년을 사용하였다. 이런 조약 중에는 1882년 「조미조약」의 ‘大朝鮮國開國491年 卽中國光緖八年 4月 6日’과 같이 개국기년 다음에 중국의 광서(光緖) 연호가 삽입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청이 조약을 주선한 경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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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버트 특사 임명장(1906)
사전에는 1896년 1월 1일부로 개국연호가 폐지되었다고 하였으나, 건양과 광무 연호를 사용할 때에도 개국기년은 계속 사용되었다. 심지어 1905년 을사조약 직후 미국에 특사로 파견된 헐버트의 임명장에는 ‘大朝鮮國開國’이 아니라 ‘大韓開國 515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건양이나 광무 기간에 사용된 개국기년의 용례는 적지 않다.
 
그런데,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는 ‘지금부터 국내외 공사 문서에는 개국기년을 쓸 것(從今以後, 國內外公私文牒, 書開國紀年事)’이라는 의안(議案)을 발표한다. 이는 종전까지 외교 문서에서만 사용하던 개국기년을 국내외 모든 공사(公私) 문서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1895년 3월 10일 내무아문(內務衙門) 훈시 제86조에서는 ‘이미 개국기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청의 연호를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지시를 하달한다. 이때에 와서 청의 연호를 공식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면 서두에서 언급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서술은 사실 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개국기년 사용과 청의 연호 폐지완 관련된 사안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1876년 대일본 외교 문서에 처음으로 청의 연호 대신 개국기년을 사용했으며, 이후 외교 문서에는 개국기년이 계속 사용되었다.
2.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는 그동안 외교 문서에만 사용하던 개국기년을 국내외 모든 공사 문서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3. 1895년 3월 10일, 청의 연호 사용을 공식적으로 폐지하였다.
 
이와 관련한 교과서의 서술을 살펴보면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아래는 2014년 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이다.
 
교학사
중국 연호는 폐지하고 개국기년을 사용하였으며(189)
금성출판사
중국 연호 사용을 폐지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242)
리베르스쿨
먼저 외교적 측면에서는 청의 종주권을 거부하는 의미로 조선이 개국한 1392년을 기준으로 삼는 개국을 새로운 연호로 채택하였다.(223)
미래엔
정치면에서는 먼저 중국 연호를 폐지하고 개국 연호를 사용하였다.(198)
비상교육
정치면에서는 중국 연호를 폐지하고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217)
지학사
청의 연호를 쓰지 않고 개국기년을 사용하였다.(229)
천재교육
청의 연호를 폐지하고 개국 기원을 사용하여 청과의 사대 관계를 끊었다.(201)
동아출판
서술 없음
 
이는 군국기무처가 주도한 1차 갑오개혁 때의 개혁 내용에 포함된 것으로 ‘독자적 연호’, ‘개국 연호’, ‘새로운 연호’ 등의 서술은 모두 잘못이다. 또 개국기년은 1876년에 이미 사용되었으므로 갑오개혁 때 처음으로 사용한 것처럼 서술한 것도 잘못이다. 그리고 청의 연호를 공식적으로 폐지한 것은 2차 갑오개혁 때인 1895년 3월의 일이므로 이때 ‘청의 연호를 폐지했다’고 서술한 것도 옳지 않다. 이러한 사항에 대해 필자는 각 출판사마다 수차례에 걸쳐 문제 제기를 한 결과 2016년 판에는 아래와 같이 서술이 바뀌었다.
 
교학사
중국 연호는 폐지하고 개국기년을 사용하였으며(변화 없음)
금성출판사
중국 연호를 사용하던 관행을 버리고 개국기년을 사용하였다.
리베르스쿨
먼저 외교적 측면에서는 청의 종주권을 거부하는 의미로 조선이 개국한 1392년을 기준으로 삼는 개국을 기년으로 채택하였다.
미래엔
정치면에서는 먼저 중국 연호를 사용하던 관행을 버리고 개국 연호를 사용하였다.
비상교육
정치면에서는 중국 연호를 폐지하고 개국기년을 사용하였다.
지학사
청의 연호를 쓰지 않고 개국기년을 사용하였다.(변화 없음)
천재교육
모든 문서에 개국 기원을 사용하게 하여 청의 연호 사용을 중지하였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부분 교과서의 서술이 바뀌기는 했으나 청의 연호 폐지와 관련해서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또, 이미 사용되어 오던 개국기년을 이 때 처음 사용한 것처럼 그대로 둔 것도 옳지 않다. 다만, 개국 연호를 개국기년으로 표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유일하게 개국 연호를 끝까지 유지한 미래엔 집필자는 여전히 개국 연호가 옳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2014년 『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검정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에 대한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을 듣고자 위의 내용을 정리하여 질의한 바가 있다. 아래는 필자의 질의에 대한 국편의 답변이다.
 
‘갑오개혁 시기 개국기년은 연호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및 한국사 교과서의 개국기년 관련 서술은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몇 차례 오간 질의와 답변에서 국편 답변자는 개국 연호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최종 결론에서는 개국기년은 연호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국편의 답변은 대체로 이와 같이 우기거나 두루뭉수리다.▩

입력 : 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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