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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22)

조미조약에 대한 몇 가지 문제(2) - 범죄자처벌 규정에 대한 한국사 교과서의 너무 다양한 서술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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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체결된 「朝美條約(조미조약)」 제4관은 조미 양국 범죄자 처벌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조약문이나 계약서의 경우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다 읽어야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에 이해의 편의를 위해 단락을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 인민이 조선에 거주하며 편안히 법을 준수할 때에는 그 생명과 재산에 대해 조선 지방관은 대신 그들을 보호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모욕하거나 훼손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불법을 행하는 무리가 미국 인민의 집과 재산을 빼앗거나 불태우려 할 경우 지방관은 영사의 告知(고지)에 따라 즉시 군사를 파견하여 제압하고 아울러 범죄자를 조사·체포하여 법률에 따라 엄중히 처벌한다.(美國民人, 在朝鮮居住, 安分守法, 其性命財産, 朝鮮地方官, 應當代爲保護, 勿許稍有欺凌損毁. 如有不法之徒, 欲將美國房屋業産, 搶劫燒毁者, 地方官一經領事告知, 卽應派兵彈壓, 竝査拿罪犯, 按律重辦.)
 
기본적으로 미국 국민의 조선국 내 합법적 거주에 대해서는 조선 지방관이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만약 조선의 不法(불법)한 무리가 미국 인민의 집과 재산을 빼앗거나 불을 지르려 할 경우 미국 영사의 요청을 받으면 즉시 군사를 보내 제압하고, 범죄자를 잡아들여 법률에 따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미국인에 대한 조선인의 危害(위해) 행위를 막고 그에 해당하는 범죄자는 조선에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조선 인민이 만약 미국 인민을 모욕할 때에는 조선 관원에게 넘겨 조선의 법률에 따라 처벌한다. 미국 인민이 상선이나 해안을 막론하고 모욕하거나 분란을 일으켜 조선 백성의 생명과 재산 등을 손상하면 미국 영사관 혹은 미국에서 파견한 관원에게 넘겨 미국 법률에 따라 잡아들여 처벌한다.(朝鮮民人, 如有欺凌美國民人, 應歸朝鮮官, 按朝鮮律例懲辦. 美國民人, 無論在商船在岸上, 如有欺凌騷擾, 損傷朝鮮民人性命財産等事, 應歸美國領事官或美國所派官員, 按照美國律例, 査挐懲辦.)
 
미국 국민에 대한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 관원에게 넘겨 조선 법률에 따라 처벌하고, 조선 국민에 대한 미국인 범죄자는 미 영사관이나 미국에서 파견한 관원에게 넘겨 미국 법률에 따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인 범죄자는 조선국 관리가, 미국인 범죄자는 미국 관리가 처벌한다는 것으로 양국 범죄자에 대한 재판 관할권을 규정하고 있다. 조일 수호 조규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 관할권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국 내에서 조선과 미국의 인민 사이에 송사가 일어날 경우 피고 소속의 관원을 거쳐 본국 법률에 따라 심의 판단하며, 원고 소속의 나라에서는 관원을 파견하여 聽審(청심)할 수 있으며, 審官(심관)은 이들을 예로 대우해야 한다. 청심관(聽審官)이 만약 전신(傳訊), 사신(査訊), 분신(分訊), 정견(訂見)하고자 할 때에도 그 편의를 들어주어야 한다. 심관의 판단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길 때에도 역시 자세한 반박을 허용하기를 미국과 조선국은 피차 명확히 규정한다.(其在朝鮮國內, 朝鮮・美國民人, 如有涉訟, 應由被告所屬之官員, 以本國律例審斷, 原告所屬之國, 可以派員聽審, 審官當以禮相待. 聽審官如欲傳訊・査訊・分訊・訂見, 亦聽其便. 如以審官所斷爲不公, 亦許其詳細駁辨, 大美國與大朝鮮國, 彼此明定.)
 
이어지는 내용은 조선국 내에서 조미 양국 국민 사이에 송사가 발생했을 경우에 대한 규정이다. 양국 간에 송사가 생겼을 경우 피고 소속 국가의 관원을 거쳐 피고인 국가의 법률에 따라 처리하며, 만약 원고 측 관리가 재판에 참여하고자 할 경우 그것을 허용해야 함을 정한 내용이다.
 
만약 조선이 이후 법률과 심판하는 법을 개정하여 미국에서 볼 때 본국의 법률 및 심판하는 법과 서로 부합하면 즉시 미국 관원은 조선에서 심안하던 권한을 회수하고, 이후 조선 경내의 미국 인민들을 곧 지방관의 관할에 귀속시킨다.(如朝鮮日後改定律例及審案辦法, 在美國視與本國律例, 辦法相符, 卽將美國官員在朝鮮審案之權收回, 以後朝鮮境內美國人民, 卽歸地方官管轄.)
 
마지막 부분으로 조선의 법률이 현재 미국 국내법보다 엄격하기 때문에 당장은 미국 관리가 재판을 관할하지만, 차츰 조선의 제반 법률이 미국의 법과 대등해지면 조선에서 재판하던 재판권을 회수하여 조선 지방관 관할로 넘긴다는 것이다. 즉 조선의 사법제도가 발전하여 미국 법과 대등하다고 여겨질 때까지는 조선인에 대한 미국인 범죄자의 재판권을 미국이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상이 제4관 전체의 내용이다.
 
현행 8종 교과서에는 위에 제시한 「조미조약」 제4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동아출판
없음
지학사
영사 재판권의 내용을 담은 불평등 조약(216)
리베르스쿨
치외 법권 규정 포함(208)
미래엔
치외 법권이 포함된 불평등 조약(180)
비상교육
치외 법권 조항이 담긴 불평등 조약(205)
천재교육
치외 법권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185)
교학사
4치외 법권은 잠정적으로 한다.(178)
금성출판사
치외 법권은 잠정적(230)
 
서술이 없는 동아출판과 영사 재판권으로 서술한 지학사 교과서를 제외하면 모두 치외 법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에 치외 법권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치외 법권은 외국인이 자신이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법률과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권리이다. 국가 사이의 특별한 협정이 없으면 외국인은 자신이 체류 중인 국가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국제기구 직원이나 외교사절 등에 한하여 일정 범위의 예외가 허용되어 왔는데 치외 법권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외교사절을 받아들이는 접수국은 그들의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하여 국제법상의 특권을 제공한다.’(치외 법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에 따르면 치외 법권은 국제기구 직원이나 외교 사절 등 국가를 대표하여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人員(인원)이 그 적용 대상임을 알 수 있다. 무역을 위해 조선에 와 있는 상인들, 즉 민간인은 치외 법권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지학사의 영사 재판권은 ‘미국 영사관 혹은 미국에서 파견한 관원’이라 한 점으로 미루어 반드시 영사가 재판한다는 보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판 담당자가 누구인가는 4관의 핵심이 아니다. 무엇보다 제4관은 조미 양국 범죄자를 누가 재판할 것인지를 정하고 있어 영사 재판권이나 치외 법권으로 규정할 경우 조선 인민도 그 대상이 되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暫定的(잠정적)’이라는 표현이다. 먼저 교학사 교과서에는 본문 서술 없이 ‘제4조 치외 법권은 잠정적으로 한다.’고 사료 인용 형태를 취하여 소개하였다. 여기서 제4조는 제4관의 잘못이며 제4관에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치외 법권은 잠정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없다. 사료 인용을 했는데 해당 사료에 치외 법권이란 말도 잠정적이란 말도 없다. 잘못된 사료 인용이다.
 
‘잠정적’이란 ‘임시로 정하는. 또는 그런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조선이 이후 법률과 심판하는 법을 개정하여 미국에서 볼 때 본국의 법률 및 심판하는 법과 서로 부합하면’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선의 법률이 미국의 법률과 대등해질 때까지’를 잠정적으로 정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치외 법권이란 전제부터 잘못이기 때문에 잠정적이란 표현도 당연히 올바른 서술이라 할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행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는 「조미조약」 제4관이라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영사 재판권’, ‘치외 법권’, ‘치외 법권은 잠정적’, ‘불평등’이라는 등 서술이 다양하다. 같은 또래 아이들은 공평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누구는 제4관을 배우고 누구는 배우지 않는다. 누구는 영사재판권으로 배우고 누구는 치외 법권으로 배운다. 누구는 치외 법권으로 배우고 누구는 치외 법권은 잠정적이라 배운다. 그런데, 정작 제4관은 치외 법권을 규정한 조항이 아니다. 차라리 서술하지 않은 동아출판 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런 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입력 : 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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