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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8)

조‧일 수호 조규 무역 규칙에서는 무관세, 무항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을 허용하였는가?

김병헌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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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 무역 규칙에는 양곡의 무제한 유출, 무관세, 무항세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는 1876년 조일 수호 조규(속칭 강화도 조약)의 후속 조치로 같은 해 7월 6일 체결된 무역 규칙(貿易規則)에 대한 리베르스쿨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이다. ‘3무 허용’으로 일컬어지는 이 서술은 아래와 같이 여타 교과서에도 비슷하게 실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이를 항목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금성출판사
일 무역 규칙에는 일본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 인정 양곡 무제한 수출 허용 등의 불평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229)
동아출판
추가로 체결된 조약에서 일본 상품의 무관세 무역, 외국 화폐 유통권 등을 허용하였다.(160)
리베르스쿨
일 무역 규칙에는 양곡의 무제한 유출, 무관세, 무항세 조항이 들어 있었다. (207)
[자료3] 일본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세를 내지 않는다.
[정리해볼까요] 일 무역 규칙 : 무관세, 무항세, 무제한 곡물 유출
미래엔
뒤이어 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규칙이 체결되었다. 이에 양곡의 무제한 유출이 가능해졌으며 일본의 수출 상품에 대해서도 관세가 부여되지 않았다.(179)
[자료2]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세를 내지 않는다.
일본 상품에 항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지학사
이에 따라 양곡의 무제한 유출과 일본의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 원칙을 허용하였다.(216)
[탐구활동] 일본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세를 내지 않는다.
천재교육
일 무역 규칙을 통해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양곡의 무제한 유출 등을 허용하였다.(184)
[자료3] 일본국 소속의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국정
일본 상품에 대한 무관세, 조선 양곡의 무제한 유출 등을 규정한 통상 장정을 맺었다.(108)
 
 
1. 양곡의 무제한 유출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이라고 서술한 근거는 아래의 무역 규칙 제6칙이다.
 
‘제6칙, 이후 조선국 항구에 주류(住留)하는 일본 인민은 양미(糧米)와 잡곡을 수출입(輸出入)할 수 있다.’
(第六則, 嗣後於朝鮮國港口住留日本人民糧米及雜穀, 得輸出入)
 
국가 간의 조약이든 개인 간의 계약이든 조문을 있는 그대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위와 같이 제6칙은 조선 항구에 있는 일본인이 양미(糧米)와 잡곡을 수출입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조문 어디에도 ‘무제한’이나 ‘유출’이란 단어가 없다. 유출은 ‘불법 유출’, ‘무단 유출’처럼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며, 몰래 빼돌리는 것도 유출이고 알게 모르게 술술 빠져나가는 것도 유출이다. 유출이란 말에서 수출입에 전제되는 대금 지불도 없이 그냥 빠져나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또, 수출과 수입을 할 수 있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무역 규칙 제6칙은 양미와 잡곡을 수출입할 수 있도록 정함으로써 조선 정부는 일본의 곡물 수출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으로의 곡물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 심각한 식량 부족 현상과 함께 미곡 가격이 급등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이것이 무역규칙 제6칙의 본래 의미와 그로부터 초래된 결과다.
 
 
2. 무관세 허용
 
관세(關稅)는 수출입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에 대해 위 교과서에는 ‘무관세 조항이 들어있었다.’고 하였으나 무역 규칙에는 무관세 조항이 들어있지 않다. 무역규칙에는 관세를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즉, ‘무관세 허용’이 아니라 ‘관세를 설정하지 않았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1876년 수호 조규를 체결할 당시 조선 정부는 관세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였다. 때문에 관세 설정을 요구하지 못하였고 일본 정부에서는 자신들이 손해가 될 관세를 애써 설정할 이유도 없었다. 협상 과정에서 관세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조선 정부는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관세 설정 없이 일본과의 무역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879년, 영중추부사 이유원은 북양대신 리홍장으로부터 관세 설정에 대한 제안이 포함된 서신을 받게 된다.
 
‘관세를 정하면 나라의 경비에 적으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으며 상업에 익숙하면 무기 구입도 어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고종실록 1879. 7. 9. 기사)
 
이 제안에 따라 조선 정부는 관세 설정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경주한다. 1881년 10월에는 조영하를 리홍장에게 보내 관세와 외교에 능한 인물의 추천을 요청하여 전 독일 영사 묄렌도르프를 외교 및 재정 고문으로 초빙하기도 하였다. 1882년에는 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김홍집이 관세 설정을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다가 1882년 조미 조약에서 처음으로 관세를 설정하게 되자 일본도 더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1883년 조일 통상 장정 제9관에 관세를 설정하고 이어 세칙(稅則)을 체결하여 마침내 관세를 부과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무역 규칙에서 관세를 설정하지 못한 것을 두고 ‘무관세 허용’, ‘무관세 조항 삽입’, ‘무관세 인정’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3. 무항세 허용
 
관세가 수출입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라면, 항세(港稅)는 무역을 위해 입항하는 상선(商船)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일본국 소속의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천재교육)
‘일본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세를 내지 않는다.’(리베르스쿨, 지학사)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세를 내지 않는다.’(미래엔)
‘일본 상품에 항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미래엔)
 
이를 보면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나, ‘일본국 소속 선박’과,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이라는 차이가 있다. ‘일본국 소속 선박’이라 하면 모든 일본 선박이 항세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이라 하면 일본 정부 소속 선박이 항세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물론, 다른 선박의 항세 납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조항은 아래의 제7칙이다.
 
제7칙
항세(港稅)
연외장(連桅檣) 상선 및 증기 상선의 세금은 5원이다.<모선에 부속된 각정(脚艇)은 제외한다.>
단외장(單桅檣) 상선의 세금은 2원이다.<500섬 이상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단외장 상선의 세금은 1원 50전이다.<500섬 이하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모든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고종 실록 1876년 7월 6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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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규칙」 항세
제7칙은 분명히 ‘항세(港稅)’라는 제목 아래 상선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항세를 정하였다. 가장 큰 상선은 5원, 중간 상선은 2원, 맨 아래 작은 상선은 1원 50전으로 정하고 마지막에 상선이 아닌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에 대해서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상선이 아닌 정부 소속 선박이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즉, 제7칙은 무역을 위한 상선은 선박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 항세를 납부해야 하며, 상선이 아닌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두었던 것이다.
 
교과서 서술 중 ‘일본국 소속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선이든 정부 소속 선박이든 모든 일본 배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서술 오류며,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핵심인 상선에 대한 항세 부분은 제시하지 않고 예외 조항만 서술하였기 때문에 사실 왜곡이다. 따라서 항세 조관인 제7칙을 두고 ‘무항세 허용’이라 한 교과서 서술은 명백한 오류다. 미래엔의 ‘일본 상품에 항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서술은 상품과 항세를 잘못 연결하여 기본 설정부터 틀렸다.
 
이러한 서술 오류는 ebsi 한국사 강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ebsi의 모든 한국사 강의는 무역 규칙을 설명하면서 ‘무관세’, ‘무항세’, ‘무제한 곡물 유출’ 등을 허용한 심각한 불평등 조약임을 강조한다. 수능 연계 강의라는 장점을 앞세운 ebsi가 전국의 수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터무니없는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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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i 한국사 강의 중 3무 허용과 관련한 판서(네 강의의 자료임)

위 강의도 문제지만 같은 ebsi의 아래 강의는 있지도 않는 관세를 제7칙으로 소개하고 있어 더욱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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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i 한국사 강의 중 무역규칙 7칙 부분 자료

강의 자료에서 ‘제7칙, 일본 소속의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으며, 수출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이는 해당 사료와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다. 항세를 정한 제7칙의 내용을 ‘일본의 모든 배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고 한 문장도 잘못이지만, ‘수출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제7칙뿐만 아니라 다른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다. 무역 규칙 원문만 확인했어도 일어날 수 없는 중대한 오류다.
 
무역 규칙에 대한 서술 오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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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칙에 대해 앞에서는 ‘미곡류 수출입의 인정’이라 해놓고 뒤에서는 ‘개항장에서 일본인의 미곡류 매입을 허용한 내용’이라 하였다. 수출입의 뜻을 모르는 건지 불과 다섯 줄 사이에서 해석이 달라졌다. 그리고 ‘기만적 해석’, ‘대량 반출의 근거’라는 말을 동원하여 마치 대단한 음모가 있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일본이 기만적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집필자가 황당한 해석을 한 것이다.
 
제7칙에 대해 앞에서는 ‘항세 면제’라 하여 하였으나, 아래에서는 ‘일본 선박에 대해 항세, 즉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무관세무역을 규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항세, 즉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나 ‘무관세 무역 규정’이라 한 것을 보면 무역 규칙 원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항세와 관세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역규칙에 대한 한국사 교과서와 ebsi 한국사 강의, 그리고 백과사전에 이처럼 오류가 심각한 데는 기본적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신편한국사 서술에 기인한다.
 
“무역 규칙으로 이름이 붙은 통상장정은 일본 측이 내놓은 원안에 1개조가 더 추가되어 11칙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일본의 경제적 침투를 합법적으로 승인한 조약이었다. 11칙 중에서 특히 제6칙과 제7칙은 조선의 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주었던 조목이었다. 제6칙은 ‘사후 조선국 항구들에 주류하는 일본인은 粮米 및 잡곡을 수출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제7칙은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港稅를 납부치 않음’으로 되어 있다. 제6칙으로 조선의 미곡이 대량 일본으로 유출하게 되었고, 제7칙으로 일본선박이 항세,관세를 납부하지 않게 되었다.”(신편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여기의 ‘조선의 미곡이 대량 일본으로 유출하게 되었고’라는 서술은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으로 바꾸어 수록되었으며, 항세 부과 부분은 배제한 체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港稅를 납부치 않음’이라 한 서술은 ‘정부’가 있고 없는 차이만 있을 뿐 그대로 반영되었다. 또, ‘일본 선박이 항세,관세를 납부하지 않게 되었다.’는 서술은 미래엔 교과서와 백과사전에 검증 없이 그대로 실렸다.
 
관세를 설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무관세 허용’이라 하며, 상선의 크기에 따라 항세가 부과되었음에도 ‘무항세 허용’이라 하며, 양곡 수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조항을 두고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이라 한 것이 무역 규칙에 대한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이고 ebsi 한국사의 강의다. 무역 규칙의 해당 조관을 한 번만 읽어봐도 있을 수 없는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을 지금까지 가르쳐 왔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올바른 역사 교육에 앞장서야 할 교과서와 ebsi 강의가 잘못된 역사 교육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입력 : 201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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