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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행이정’ 검색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간행이정’을 검색하면 위와 같은 자료들이 보인다. 여기서 다시 맨 처음의 한국간행이정협정을 누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해 8월 24일에 조인된 「조일수호조규부록」 제4관에 의하면 일본인들의 활동지역은 방파제로부터 동서남북 각 지름 10리로 한정하고, 이 구역 안에서 일본인의 자유통행과 상업행위를 인정하였다. 그 뒤 일본세력의 한반도 진출이 강화되면서 이 간행이정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글에 의하면 ‘간행이정’이란 일본인이 자유롭게 다니면서 상업 행위를 할 수 있는 지역이며, 그 범위는 방파제로부터 동서남북 각 지름 10리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 서술이 정확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호 조규 부록」 제4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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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 조규 부록」(부분) |
(第四款, 嗣後於釜山港口, 日本國人民可得閒行道路里程, 自埠頭起算, 東西南北各直徑十里[朝鮮里法]爲定. 至於東萊府中一處, 特爲往來於此里程內, 日本國人民隨意閒行, 可得賣買土宜及日本國物産.)
위 사전에서 언급한 ‘간행이정’은 제4관의 ‘閒行道路里程’을 줄인 것으로, 『고종실록』 원문에는 앞의 두 글자가 ‘閒行’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閒자는 ‘간’과 ‘한’의 두 가지 독음이 가능한 글자로 간(間)으로 읽을 경우 간행(間行)이 되어 잠행(潛行) 또는 미행(微行)이란 뜻이 되지만, 한(閑)으로 읽을 경우 한행(閑行)이 되어 ‘한가하게 걷다.’ 또는 ‘자유롭게 다니다.’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거리’라는 뜻이 되기 위해서는 한행이정으로 읽고 써야 한다. 1883년 6월에 이 조관을 수정하게 되는데, 국역 『고종실록』에는 ‘한행이정약조(閒行里程約條)’라 하였으며, 일본 측 자료에는 ‘閑行里程約條’라 하여 독음이 ‘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음으로 위 사전의 ‘방파제’는 ‘부두’의 잘못이며, ‘지름 10리’는 원문의 ‘직경(直徑)’을 ‘지름’으로 잘못 이해하여 생긴 오류다. 여기서 ‘직경(直徑)’은 ‘곧은 길’ 즉 ‘직선거리’라는 뜻으로 ‘부산항 부두로부터 동서남북으로 각각 직선거리 10리[4km]’라고 풀이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의 거리는 20리가 된다.
이상을 토대로 위 사전의 서술을 사실(史實)에 맞게 수정하면 아래와 같다.
‘같은 해 8월 24일에 조인된 「조일수호조규부록」 제4관에 의하면 일본인들의 활동지역은 부산항 부두로부터 동서남북 각 직선거리 10리로 정하고, 이 구역 안에서 일본인의 자유통행과 상업행위를 인정하였다. 그 뒤 일본인의 한반도 진출이 늘어나면서 이 한행이정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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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체결장면. |
다음으로 한행이정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거류지(居留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조(租:임차료)를 지불하는 구역’이라는 뜻에서 달리 조계(租界)라고도 하는데 부산항의 경우 기존의 제도를 일부 변경한 초량 왜관이 이에 해당된다. 초량 왜관은 1609년 기유 약조 이후 두모포에서 초량항(草梁項)으로 이전 개설된 뒤 1876년까지 운영되다가 「수호 조규 부록」 제3관에 따라 왜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던 수문(守門)과 설문(設門)을 철폐하고 새로 정한 지점에 구역의 한계를 표시하는 푯말을 세워 이를 조계로 설정했다. 또, 같은 해 12월 17일에는 「부산구 조계 조약(釜山口租界條約)」을 체결함으로써 일본 상인의 조계(거류지)를 공식화 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한행이정은 개항장에서 일본을 비롯한 외국 상인들이 ‘자유롭게 다니면서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부산항의 경우 부두로부터 동서남북으로 각각 직선거리 10리이다. 이렇게 시작된 한행이정은 일본의 지속적인 확대 요구에 따라 1882년에는 50리로, 1883년부터는 다시 100리로 확대된다. 그런가 하면, 조계(거류지)는 한행이정이 적용되는 항구에서 상업 활동을 하는 외국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도록 마련한 별도의 구역이다. 이러한 한행이정과 조계(거류지)를 현행 몇몇 교과서에서 소개하고 있으나 아래 두 교과서의 서술은 다소 부정확하거나 오류가 있다.
‘4. 앞으로 부산항에서 일본 국민이 통행할 수 있는 범위는 직경 10리로 한다. 그 안에서 일본 국민은 자유로이 통행하고, 기타의 산물과 일본의 산물을 매매할 수 있다.’(동아출판, 160)
이 사료는 부록 제4관을 번역 수록한 것이나 ‘부산항 부두’라는 기산점이 없고 ‘직경 10리’는 ‘지름 10리’로 오해할 수 있는 부정확한 번역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기타의 산물’은 원문 중 어느 부분을 옮긴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문맥상 조선의 토산물로 여겨지는데 이는 분명한 오역이다. 이 인용 사료를 보고 학생들이 과연 부록 제4관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료를 번역하여 인용할 경우에는 그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개항장 사방 10리 안에 일본인이 거주할 수 있는 구역인 거류지를 설정하였다.’(리베르스쿨, 207)
이 교과서의 서술은 우선 ‘사방 10리’라고 하여 ‘가로 세로 10리’로 오해할 수 있는 부정확한 서술이다. 여기서 사방(四方)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가리키며 ‘사방 10리’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직선거리 10리’라는 뜻으로 서술해야 한다. 더구나 ‘개항장 사방 10리 안에 거류지를 설정하였다.’고 한 설명은 일본인 거류지가 부산항의 남서쪽에 있으며 그 중 상당부분이 10리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서술이다.
이러한 잘못된 서술은 ebsi 한국사 강의에 특히 심하다. 한행이정을 간행이정으로 읽는 경우, 한행이정과 조계(거류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 리베르스쿨 교과서와 같이 개항장 내 사방 10리 안에 거류지를 설정하였다는 경우 등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아래의 강의는 그 정도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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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i 한국사 강의 중 일부 |
해당 강사는 분명 「수호 조규 부록」 제4관을 축약하여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이는 부록 제4관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조약에도 없는 내용이다. 학생들이 겪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속히 수정을 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더 이상 수강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