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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조선 호랑이 사냥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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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 생(生)의 明暗(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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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555-1600)에 이어 제2군 선봉장으로 조선을 침략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1562-1611)를 모르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아명(兒名)은 호랑이(虎)가 들어있는 '도라노쓰케(虎之助)'였다. 그러한 기요마사(淸正)는 규슈의 구마모토(熊本) 성주까지 올랐다.
 
1607년에 세워진 구마모토 성(城)은 일본 3대 명성(名城)이기도 하다. 규슈 여행의 필수 코스이기도 한 구마모토 성. 기요마사(淸正)는 당시 축성(築城)의 대가였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秀吉)와 같은 출생지인 나고야의 나카무라(구: 尾張國 愛知郡 中村)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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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가 태어난 곳...후일 사찰이 세워졌다.

그가 태어난 곳은 후일 묘고지(妙行寺)라는 절이 됐다. 나고야 성을 축성하고 남는 자재를 이용해서 자신의 출생지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히데요시의 성(城)에서 길러진 아이
 
필자가 다녀온 나카무라 공원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기념관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기념관 입구에는 다이묘(大名)들의 영역이 표시된 그 당시의 일본 지도가 있다. 기념관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잘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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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 시절 다이묘(大名)들의 분포

이 대목에서 기념관의 안내문과 '시바 료타로(司馬 遙太郞, 1923-1966)'의 역사 소설 <세키가하라 전투> 속으로 들어가 본다.
 
"성주님! 저는 어머님의 사촌이 되옵니다."
 
남루한 옷차림의 한 시골 여인이 어린아이(加藤淸正)의 손목을 잡고 히데요시(秀吉)에게 한 말이다.
 
"그렇습니까? 아이가 착하게 생겼군요....이리 오너라. 오늘부터 우리 집 주방에서 밥을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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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의 전기본

일찍이 아버지를 잃은 기요마사는 히데요시의 성(城)에서 자랐다. 히데요시의 정실부인 '기타노만 도코로(北政所, 1549-1624)'가 그의 양모(養母)가 됐다.
 
기요마사의 어머니가 히데요시의 모친과 4촌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6촌 관계다. 아무튼, 히데요시의 부인은 그를 친 자식처럼 길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3천 석짜리 신분에서, 일약 25만석의 구마모토의 다이묘로 발탁된 것도 그녀의 입김이 컷을 것이다.
 
호랑이 같은 장수...조선 호랑이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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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의 이력
호랑이 같은 성격의 장수인 기요마사는 공명심이 강했다. 그는 조선 천하를 질주하며 호랑이 사냥에 열중했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몸보신을 위해서다.
 
일본의 야생동물 생태연구가인 '엔도 키미오(遠藤公男·83)'씨가 쓴 <조선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책이 있다. 책 속의 여덟 번째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호랑이 이야기'다. 그는 '오다 쇼고(小田省吾)'가 쓴 <조선출병과 가토 기요마사>라는 책을 인용,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분로쿠(文祿) 원년(임진왜란 원년-1592년) 일본군의 무장인 '가메이 코래노리(龜井玆矩)'는 부산 근처의 기장성(機張城)을 점령해 히데요시에게 호랑이 한 마리를 보냈다. 드물게 보는 거대한 호랑이였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교토의 '고요제이(後陽成)' 천황에게 자랑했다. 그리고 호랑이를 수레에 싣고 장안을 돌아다녔다."
 
엔도(遠藤) 씨는 히데요시의 부하가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8-1618)'에게 보낸 공문서에 있는 또 다른 증거를 찾아냈다. 히데요시의 비서가 보낸 공문서다.
 
"호랑이의 가죽, 머리, 뼈와 고기, 간과 담을 목록 그대로 받았습니다. 히데요시님은 기뻐하시며 드셨습니다."
 
예로부터 호랑이가 귀한 약용으로 쓰여 왔음을 익히 알고있던 히데요시는 무장들에게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오도록 명령했다. 그가 '그토록 몸에 좋다'는 호랑이의 고기는 물론, 간과 쓸개까지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엔도(遠藤)씨는 그러한 사실을 이렇게 썼다.
 
"작은 몸집에 원숭이라고 불린 히데요시의 풍모를 떠 올렸다. 무엇인가 홀린 듯 한 눈을 하고, 호랑이의 간(肝)과 장(腸)까지 탐을 내며 먹었던 것이 아닐까?...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려고 했는데, 그는 61세에 죽었고 임진란은 끝이 났다."

 
보고서에도 장수들의 경쟁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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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 조선 침략루트
임진왜란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느 쪽이 한양에 먼저 갈 것인가?' 하는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 상황에 대한보고도 경쟁의 연속이었다. 기요마사가 유키나가보다 앞서서 히데요시에게 보고서를 올렸으나, 길목을 버티고 있는 히데요시의 최 측근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1560-1600)'에 의해서 묵살됐다. 시쳇말로 '문고리 권력'의 농간이 있었던 것이다.
 
"작전의 실패와 착오는 유키나가에 대한 기요마사의 비협조 때문입니다...적들이 일본군의 내분을 비웃으며 기뻐하고 있사옵니다."
 
"도라노스케(虎之助) 놈! 자기 무공을 세우는 데만 급급해서 전체의 대의명분을 깨는 놈이다. 그 놈을 당장 불러오라."
 
기요마사는 기가 막혔다. 진주성 공사를 시작하다가 나베시마에게 맡기고, 오사카에 있는 후시미 성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싹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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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고지에 있는 기요마사의 동상
1598년 가을 어느 날. 미쓰나리(三成)는 하카다(현: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고, 선단을 보내는 운송 관계를 체크했다. 하카타 만(灣)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조선에 나갔던 장수들이 속속 돌아왔다.
 
"다이코(太閤) 전하가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울음바다....특히, 기요마사는 땅을 치며 통곡했다. 잠시 후 미쓰나리(三成)가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고생들 많이 하셨으니 휴가들을 보내시죠. 한 일 년 정도...상경 하실 때는 성내에서 다도(茶道)의 자리를 마련해 여러분의 노고를 위로할 생각입니다."
 
"말 잘했소. 재미있는 말이군요. 우리는 7년 동안이나 조선에 진을 치고 몸이 가루가 되도록 싸우다보니 이제는 군량미도 한 톨 없고 술 한 방울 없소이다.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호사스런 차(茶) 같은 것은 더더욱 없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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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가토 기요마사가 목청을 높였다. 이 소식을 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
 
"당분간은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두시죠. 헤엄치는 대로 놔두다보면 조만간 미쓰나리와 큰 싸움을 벌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기요마사에게 유리하게 처리하고, 은혜를 베풀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책사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본명이 사키치인 사나이. 절에서 심부름을 하던 소년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에 들어 최측근 비서실장이 됐으나, 영리한 두뇌에 비해 주변 장수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
 
"어르신!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자신감이 강한 법이오. 자신이 있을수록 독단이 많아지지요. 독단이란 일을 그르치게 만듭니다."
 
미쓰나리가 자신의 책사 시마 사콘(島左近, 15??-1600)의 충언을 들었어야 했다.
 
결국, 이시다 미쓰나리의 독단은 후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그에게 쓰라린 패배를 가져오고 말았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참고가 되는 교훈적인 지난날의 역사다. 그래서 역사는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다'는 것이다(계속).
 
<참고 및 인용, 시바료타로의 세키가하라전투/ 나카무라 기념관 자료>

입력 :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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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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