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경제에 국민들 환호…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Oh what fun it is to ride…"
지난 12일(金) 나고야(名古屋) 시내에 들어서자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마다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도심은 의외로 노란 은행이파리가 남아 있었고, 공기도 시원했다. 기온은 영상 9도. 예년에 비해 도시에 활기가 넘쳤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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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는 나고야 거리 |
"경제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중의원 선거는 자민당의 대승으로 끝날 것입니다. 투표율은 좀 낮겠으나, 승리는 예견돼 있습니다. 아베(安倍) 총리가 경제·헌법·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어서요."
'이토 순이치(伊藤 俊一·61)' 씨의 말이다. 그가 언론인(TV)이라서인지 그동안의 여론 조사와 국민정서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렇다. 어차피 국민들이야 경제가 살아나야 희망이 있겠지.'
연말 분위기에 들뜬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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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 중심지 사카에(榮)에 운집한 인파 |
소위 나고야의 명동인 사카에(榮)로 갔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 나고야 시의 인구는 약 250만 명이나 주변 도시까지 합하면 약 400만 명의 도시다. 필자의 눈에는 서울의 명동이나 광화문 보다 더 열기가 넘쳐 보였다.
"오늘이 '화금(花金)'입니다. 망년회가 많아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 일본에서는 '꽃의 금요일'이라고 합니까? 한국의 '불금(火金)'과는 좀 다르군요.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뜻으로 '불금(火金)'이라고 합니다."
"역시 한국이 더 강렬하군요. 과연 다이내믹 코리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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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환영의 안내판 |
이토(伊藤) 씨와 필자가 나눈 말이다. 화금(花金:꽃의 금요일)과 불금(火金:불타는 금요일)에서도 두 나라의 차이점이 있었다. 뜨거운 것은 한국이 더 앞선 듯싶었다.
30여 년 전 만들어진 '나고야 중부전략연구회'의 작은 모임인 '이문화(異文化)연구회'의 망년회는 저녁 6시부터 시작됐다. 공식적인 모임이 아니라 친지들의 모임이라서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했다. 필자도 모임 장소인 어느 카페로 갔다. 입구에서 다시 후퇴해서 어둠 속에 서있는 안내판을 바라봤다. 영어와 한자, 한글로 쓰여 있는 안내문 '안영'의 정체성 때문이다.
'안녕도 아니고, 안영이라?'
안내문의 성격으로 봐서 환영(歡迎)을 잘 못 표기한 것이었다. 담당 직원은 '어느 집의 간판을 사진으로 찍어서 썼다'면서 얼굴을 붉혔다. 필자의 설명을 듣고서 모두가 자지러졌다.
술의 향연(饗宴)은 우리와 같으나 의미를 부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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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치로(一路) |
필자는 망년회 선물로 막걸리 한 박스를 사들고 갔다. 일본인들도 모두 술(酒)을 몇 병씩 들고 왔다. 후쿠오카의 '오쓰보 시게다카(大坪 重隆·74)' 씨가 유명 사케(酒) '이치로(一路)'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간타 헤이오(神田草平·73)‘ 씨가 원로답게 술 '이치로'와 '야마모토 유조(山本有三, 1887-1974)'의 소설 '신지츠 이치로(眞實一路)'와 연결시켰다. 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이름이 유사해서 한 말이다.
'진실일로(眞實一路)'
우리가 어렸을 적에 선생님이나 웃어른들로부터 "사람은 진실일로(眞實一路)로 굳건하게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들었던 말인 것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술자리의 수준이 점점 높아졌다. '사토 쓰네오(佐藤永男·70)' 씨가 만요수(萬葉集)의 '하마치도리(夕波千鳥)' 한 구절 을 읊었다.
"뜨거운 바다/ 저녁 파도 위를 나는 갈매기 울면/ 정든 고향이 떠오르는구나."
이는 만요수(萬葉集) 266번째에 들어있는 노랫말이다. 필자가 수첩을 꺼내자 사토(佐藤) 씨 자신이 글을 썼다. 글씨도 술 탓으로 비틀거렸다. 정확성은 모르겠으나 대체적인 맥락은 그런 듯 싶다.
우리도 요즈음 각종 망년회로 바쁘다. 하지만 다음날 피곤할 정도로 폭탄주 일색 보다는 술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즐기는 패턴이 좋을 듯싶다. 술이 원수가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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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고조된 이문화 연구회의 회원들- 중앙이 이토씨, 바로옆이 간타씨, 와카키씨, 두번째줄 중앙 필자의 바로 뒤가 사토씨-그의 좌측이 오오모리 씨, 우측이 오쓰보 씨, 그 다음이 이이타 씨, 후나하시 씨 등 |
이날의 참석자는 총 22명. 부부 동반도 5쌍이나 있었다. 이문화(異文化)의 망년회에 이토록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조용한 분위기로 시작됐던 분위기는 모두 나이를 망각하고 '화금(花金)'이 아닌 '불금(火金)'으로 변했던 것이다.
가라오케에서의 대히트곡… 천년바위
필자와 오쓰보(大枰) 씨, 이토(伊藤) 씨 등 몇 몇은 2차로 가라오케에 갔다. 가라오케도 빈방이 없었다. 20분 이상 기다려서 겨우 작은 방 하나를 구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오쓰보(大坪)' 씨가 마이크를 잡고 박정식의 <천년바위>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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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바위를 구성지게 부르는 오쓰보씨의 진지한 모습 |
"동녘 저 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맘 줄 곳을/ 집시되어 찾으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야만 하나// 천년바위 되리라/ 천년바위 되리라"
노래 가사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오쓰보(大坪)' 씨의 <천년바위>에 모두가 매료되고 말았다. '노래는 마음입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7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일본인들의 술자리 특색은 절대로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2차도 마찬가지다. 혹시 빠지면 왕따 당할까봐 마지못해서 따라가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술도 의미 있게, 분위기를 즐기면서 마시는 풍토 조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호텔로 돌아갔다. 자정이 가까워졌는데도 거리는 여전히 휘황찬란한 네온과 오고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일본은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언제나 이런 날이 올까. 이 또한 부질없는 욕심이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