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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한국어가 난무하는 쓰시마(對馬島)

-말은 현실과 일치하는 것일까?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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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땅 쓰시마(對馬島)에 최근 들어 한국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간다. 2박 3일, 1박 2일은 물론, 당일 코스로 다녀오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곳곳에 한국어 안내문이 많다. 도쿄(東京)·나고야(名古屋)·후쿠오카(福岡) 등 대도시처럼 정교한 간판·표지판이 아니라, 매직 팬이나 컴퓨터로 출력한 안내문들이다. 한국어가 많아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다.
 
인구 3만 6천명의 섬. 행정구역상으로 일본국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對馬島) 시(市)- 왠지 외로워 보이는 국경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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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의 경관

쓰시마에는 산이 많아서 좁은 도로와 비탈길이 많다. 여행 안내서에는 자전거 여행도 권장한다. 하지만, 길이 험난해서 자전거 여행은 그리 간단치 않다.
 
북쪽의 가미쓰시마(上對馬)에 있는 한국 전망대는 관광의 필수 코스- 한국식으로 지어진 팔각정이 아름답다.
 
"저 쪽이 부산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부산이 아주 잘 보입니다. 밤이면 부산의 야경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택시 운전사 '바바 고이치(馬場 晃一, 68)' 씨의 말이다.
 
실제로 아스라이 부산의 고층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배에서 만났던 관광객들이 왁자지껄 몰려왔다. 관광객들의 틈바구니에서 나이가 지긋한 일본인 할머니가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부산이 선명하게 보이네요"하면서 기뻐했다. 필자도 잠시 전 떠나온 부산이 보여서 마냥 기뻤다. 기쁨은 잠시. 바로 옆으로 눈을 돌렸더니 슬프고 애석한 사연의 비(碑)가 부산을 향해 서있었다.
 
조선국 역관사 순난(殉難)의 비
 
<조선 숙종 29년 계미(癸未, 1703) 음력 2월 5일 청명한 아침에 부산을 떠난 한천석(韓天錫) 이하 108명의 조선인 역관(譯官) 일행은 저녁 무렵 쓰시마의 와니우라 입항 직전에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으로 애석하게도 전원이 죽음을 당하였다.>
 
이 사절단은 쓰시마의 제3대 번주 '소 요시기미(宗 義眞, 1639-1702)'의 죽음을 애도하고 새로운 번주인 제5대 '소 요시미치(宗義方, 1684-1718)'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대규모 사절단이다. 에도시대의 쇄국체제 속에서도 쓰시마는 조선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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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역관사 순난비(좌)와 비문(우)

'여기에 이 비(碑)를 세운 것은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의 정신으로 순직한 일행의 넋을 위로하며 양국 간의 영원한 우호증진을 돈독히 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했다.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안내문이다.
 
관광지는 그렇다고 치고 시내 거리에 나가면 한국어 일색이다. 쓰시마의 중심 도시인 인구 1만 7천 명 정도의 이즈하라(巖原) 시내를 흐르는 작은 하천의 난간에 친선을 중시하는 안내문이 있다.
 
<일한 친선을 중요하게>
 
 쓰시마 도민은 일한 친선을 소중히 하는 한국인을 환영합니다.
 일본 고유의 영토 쓰시마는, 역사와 관광의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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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광객을 환영하는 현수막.

쓰시마 시청 부근 대형 쇼핑센터에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글자가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환영, 어서 오십시오.
편안히 쓰시마를 즐겨 주십시오.
 
이 쇼핑센터 앞은 한국 관광객들의 집합소라고 할 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각종 생활필수품에서부터 먹고 마시는 것까지 한꺼번에 해결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곳에 갔을 때 대형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한다'는 일본인들의 상혼(商魂)의 발로인지 쇼핑센터의 입구에는 커피에 대한 한국어 안내문이 여러 곳 있다.
 
커피 있어요.
커피 원두로만 판매합니다.
  
쇼핑센터에도 품목마다 한국어가 쓰여 있다. 종업원들도 대체로 한국어로 손님을 맞이한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비빔밥 그대로다. 각기 다른 말이지만 표정을 보면 서로 소통이 잘되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가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면서 발전적으로 나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머무르는 호텔이라서인지 빵집의 안내문도 재치 만점이다. 또한,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생맥주에 대한 안내의 글도 토속적이다.
 
빵빵, 아사히 생맥주
 
이러한 한국어 안내말 중에서 압권은 어느 약국에 있는 문구였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肝)이 피로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평범한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술을 거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술을 마시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간장약을 사게 하는 간접적인 압력(?)일까.
아무튼, 약국의 안내문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왕 마실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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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肝臟)약을 파는 어느 약국의 안내문

한국어 문구 아래에는 일본어로 '간장 피로하지 않습니까?'라고 쓰여 있으며, 간(肝)과 관련한 약이 즐비했다. 술을 마시더라도 '지친 간의 피로를 풀어주는 약을 마시라'는 것이다.
 
반쇼인(萬松院)이라는 곳도 관광 필수 코스다. 이곳은 임진왜란과 관련이 많은 초대 번주 '소 요시토시(宗 義智, 1568-1615)'를 기리는 사찰이다.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 1558-1600)'의 사위이기도 하다. 햐쿠간기(百雁木)로 이름 붙여진 뒤편 산에는 역대 영주들의 묘지가 있으며, 언덕길 계단 양편에 석등들이 길게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200년의 스기나무가 역사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석등 역시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한국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안내문이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주의
양옆에 세워진 '석등' 만지지 마십시오. 만지면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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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이 즐비한 번주들의 묘지에 오르는  계단(좌), 석등을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우)

조선말기 일본과 맞서 싸운 의병 최익현 선생의 비(碑)가 세워져 있는 슈젠사(修善寺) 앞에 있는 경고문이 제법 강도가 높다. 사찰 바로 앞에 있는 가정집의 호소이기도 하다.
 
계단이나 화단에 앉아 있지 마십시오.
도로의 주변에 모여 있지 마십시오(통행 방해 금지).
 
이 섬의 특징은 도시라고 해도 작은 골목길들이 많다. 여기저기 골목길에서 갑자기 차량들이 고개를 내미는 경우가 많았다. 관광객들이 길을 메우면 차량들도 난감한 것이다.
입구의 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사찰이 나오고, 최익현 선생의 비가 있다. 비의 뒷편에 현지인들의 묘지가 있다. '묘지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도 경고 수준이다.
 
묘지에 들어가지 말아 주십시오.
도로가 아닙니다.
지나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도 이런 정도는 '주의를 환기 시킨다'는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아예 한국인 출입을 사절하는 식당들이 제법 있다. 물론, 한국인을 환영하는 식당과 '한국어 메뉴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식당이 부지기수이지만....
 
한국인 출입 금지에 대해 '쓰시마 인(人)들의 한국 역사 지우기와 혐한의 기류'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 진상을 필자가 알아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그렇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이었다. 영어와 한글로 쓰여 있는 어느 식당의 경고문이다.
 
SORRY, NO KOREAN TOURISTS ALLOWED
죄송합니다만, 한국관광객분은 여기에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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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광객을 받지 않는다'는 식당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성실과 신의로 교류하자'
 
조선을 사랑한 쓰시마의 지성(知性)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洲, 1668-1755)' 선생이 평생 주창한 말이다. 그는 조선말기 우호적으로 한일관계를 선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한 선생의 뜻을 현대인들이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 4만도 채 안 되는 쓰시마에 연간 15-20만 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다녀간다. 여행은 사람들을 다소 일탈하게 하는 일종의 마약성분(?)이 있을 수 있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쓰시마 사람들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객들도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곳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 '물을 아껴쓰라'는 작은 경고문도 시사(示唆) 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말은 현실과 일치하는 것일까?...말에 대한 오해를 종식시키거나, 최소한 줄이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프랑스의 철학교수 '로제 폴 드로와(Roger-pol Droit)'의 저서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에 들어 있는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길을 걸었다. 시내를 흐르는 작은 개천에 조선통신사 행렬의 벽화가 형형색색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입력 : 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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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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