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 준다...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랑의 기초>로 유명세를 떨친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45)'의 저서 <여행의 기술>에 있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여행은 번거로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히고 재충전하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대부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여행을 한다. 필자도 여행을 많이 하지만 보다 느리게, 보다 자세히 보는 여행을 권하고 싶다.
학문의 신,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眞)'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은 후쿠오카의 명소(名所)로 다자이후(太宰府) 천만궁(天滿宮)이 있다. 필자가 월간조선(monthly.chosun.com)에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으나,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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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하라 미치자네의 시비(詩碑) |
우리가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모습들이다. 한국, 일본 공히 권력을 둘러싼 암투에 의해서 본의 아니게 희생당하는 충신들이 많다. 욕심을 조금만 덜어내면 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사일 듯싶다.
"동풍(東風)이 불거든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梅花)여/ 주인이 없더라도 봄을 잊지 말아라."
다자이후(太宰府) 천만궁(天滿宮)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眞)'의 와가비(和歌碑: 일본고유형식의 시를 새긴 비석)다. 이 와가(和歌)에는 그가 평소 좋아하는 정원의 매화들에게 '자신이 멀리 규슈의 다자이후로 좌천을 가더라도 봄이면 꽃을 피우고, 그 향기를 자신이 있는 먼 곳까지 보내달라'고 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일까. 멀리 교토에서 매화 열매가 날라와 이곳에서 자라게 됐다. 이름 하여 도비우메(飛梅)다. 도비우메를 시발로 다자이후(太宰府) 천만궁(天滿宮) 주변에는 6000여 그루의 매화가 봄철이면 장관을 이룬다.
참선의 절, 고묘선사(光明禪寺)
이러한 천만궁(天滿宮)의 반대쪽에 절(寺)이 하나 있다. 천만궁(天滿宮)과 결연 관계인 고묘선사(光明禪寺)다. 이 절의 역사도 꽤나 깊다. 송(宋)나라에 유학했던 일본의 고승 '쇼이치 국사(聖一國師, 1202-1280)'의 문하생 '데쓰규엔신(鐵牛円心, 1254-1326)'에 의해서 1273년에 건립됐다.
필자는 '선사(禪寺)'라는 글자에 주목하면서 사찰의 경내에 들어섰다. 숙연함과 동시에 정적이 감돌았다.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였던 것이다. 큰 길에서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이토록 조용한 절이 있다'는 것도 신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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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묘선사의 앞 정원(佛光石庭) |
절의 마루에 앉자 돌(石) 정원이 눈 안에 가득 들어왔다. 단아함과 정교함에 일단 입이 벌어졌다. 불광석정(佛光石庭)으로 이름 붙여진 정원에는 하얀 모래 밭 위에 15개의 돌이 심어져 있었다.
15개의 돌에는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 '시치고산(七五三)'으로 통용되는 말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일본인들은 7살, 5살, 3살의 나이가 되는 어린 아이를 절이나 신사에 데리고 가서 '무탈하게 성장하게 해 달라'는 기원을 한다. 그래서, 7+5+3=15개의 돌로 '빛 광(光)'자를 만든 것이다.
정원은 마치 수반 위에 수석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 이러한 돌 정원을 교토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으나, 후쿠오카 지역에서는 이 절이 유일하다.
정원은 마치 수반 위에 수석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 이러한 돌 정원을 교토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으나, 후쿠오카 지역에서는 이 절이 유일하다.
마음이 급하거나 갈 길이 바쁜 관광객은 앞 정원에서 발길을 돌리고 만다. 그러나,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하면 아주 귀중한 힐링(Healing)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대해일적(大海一滴)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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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 우거진고묘선사의 뒷 정원 |
광명선사를 일명 태사(苔寺)라고 한다. 이를 풀이하면 이끼(苔)의 절(寺)이다. 그렇다면, 이 절과 이끼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신발을 벗고 다다미 방을 지나서 뒤편 마루에 가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푸른 이끼는 대륙과 섬을, 하얀 모래는 물과 대해(大海)를 나타내고, 해안선이 긴 갯벌(長江曲浦)의 아름다운 선으로 연출된 고산수(枯山水: 물이 없는 일본식 정원의 하나) 정원이로다."
이 절의 안내판에 쓰여 있는 글이다. 이름 하여 대해일적(大海一滴)의 정원!
'넓고 큰 바다에서의 물방울 하나'는 말은 '많은 것 가운데에서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인간 자체가 망망대해의 작은 물방울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도 작은 물방울들은 서로 부딪치며 싸운다.
절의 뒷마루에는 몇몇 일본인들이 가부좌(跏趺坐) 자세로 정원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겨 있었다. 필자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원을 바라보았다. 흰 모래 밭과 푸른 이끼(苔) 사이사이에 정원석들이 즐비했다. 그 위에는 무성한 나무들이 우산이 되어 푸른 이끼와 돌(石)과 하얀 모래들을 감싸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새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면서 노닐었고, 매미들도 분위기를 맞추려는 듯 애써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도심에서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와는 판이하게 다른 광경이었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었다. 바로 광명(光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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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눈부신 고묘선사의 뒷 정원 |
"여기가 바로 낙원이로군요."
"단풍이 들면 이곳의 경치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 때 다시 한 번 오시지요."
필자와 동행한 일본인 '야마우치 야스노리(山內康典·64)' 씨와 나눈 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쉬움이 있어야 또 오게 되겠지요?"
다음 일정이 있었기에 필자는 짧은 명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방은 여전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불현듯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중요성을 거듭 주장하려고 소음을 내지만, 선조들에게는 침묵이 생존의 비결이었다"는 의사이자 음향 전문가이며, 예술가인 '조지 프로호니크(George Prochnik)'의 걸작<침묵의 추구> 한 대목이 연상됐다.
명상을 통한 마음의 정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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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묘선사의 안내문 |
"참선 또한 의념(疑念)에 몰두할수록 강력한 에너지가 형성되고, 그 최종 지점에서 일대 폭발 현상이 일어나면서, 의식의 각층을 무너뜨리고 근본의식이라는 공(空)을 체현(體現)하는 것이다."
종학 스님의 저서 <기도의 빛>에 들어 있는 명상과 참선의 의미다. 필자가 종교와 무관하게 한국에서도 하지 못했던 선(禪)을 일본 여행 중에 기회를 가짐으로써 잠시나마 마음을 비웠던 것이 좋았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스트레스를 떨쳐내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그래야 흐트러진 마음이 제자리로 되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