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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의 명물 오징어회 |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오징어를 즐기는 민족이 있을까. 남녀노소 불문하고 영화관에서도, 야구장에서도, 이가 닳도록 열심히 오징어를 씹으며 감동과 응원에 열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오징어의 유래는 오적어(烏賊魚)에 어원을 두고 있다. 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까마귀 도적'인 셈이다. 오징어가 물위에 떠 있을 때 '이 때다' 하고 공격하는 까마귀를 10개의 다리로 감아 물속에 끌고 들어가 수장시켰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영리한 물고기다.
하지만, 다른 의미도 있다. 오징어가 까만 먹물을 뿜어내는 어종이라서 까마귀 '오(烏)'에 물고기를 뜻하는 '즉(鯽)'자를 붙여서 '오즉어(烏鯽魚)'라 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오적어(烏賊魚)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통용되고 있다. 한자어로는 일본에서도 오적어(烏賊魚)로 통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카(イカ)'로 불린다.
우리의 귀에 익은 '수루메'는 일본어다. 수루메는 오징어의 내장을 도려내고 건조시킨 가공식품이다. 과거 한반도나 중국의 남부지방,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장기보존을 위해서 채택된 가공법이다. 일본에서는 잔치 등 특별한 날에 사용하던 식품으로써 '수루메(壽留女)'로 불리기도 한다.
오징어 회가 일품인 후쿠오카
우리가 마른 오징어를 술안주나 군것질로 먹는 것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회(さしみ, 刺身)로 즐긴다. 일본에는 값이 비싸고 맛있는 회가 많지만, 값이 저렴하면서도 맛이 일품인 어종을 꼽는다면 오징어 회다. 특히, 후쿠오카의 오징어(イカ)가 그렇다.
필자는 지난 주 후쿠오카의 후미진 골목길에 있는 어느 오징어 회 전문집을 찾았다. 4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전문적인 일본 요릿집이다. 때마침 주말이라서 손님이 많아 서울에서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발길을 돌릴 뻔했다.
"이라샤이마세(어서오십시오)."
기모노를 잘 차려입은 종업원이 필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예약한 방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다다미 내음이 물씬 풍기는 일본의 전통적인 방이었다. 필자는 일행과 함께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생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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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의 명물 오징어회 |
잠시 후 오징어 여러 마리가 산채로 누어서 나왔다. 크기가 작은 아담 사이즈와 제법 길이가 긴 것도 나왔다. 오징어 형태를 그대로 지닌 몸통 위에는 종잇장처럼 얇고 투명한 회가 가지런히 잘린 채로 얹혀 있었다. '아직은 눈을 껌벅거린 상태라서 잔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어차피 식용이라서 쓸데없는 자비심(?)으로 입맛을 해칠 필요는 없었다. 일행들은 수정처럼 맑은 오징어 회를 한 가닥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자연스럽게 두 눈이 부릅떠졌다.
"오징어 회가 이토록 맛이 있다니요?"
이구동성(異口同聲) 한결같은 평판이다. 단순한 맛의 평판을 넘어 감동의 물결이었다. 더불어 사케(酒)를 한 잔 곁들였다. 사케는 그 지역에서 나오는 품종을 골라서 마시는 것이 좋다. 분위기가 무를 익을 즈음에 종업원이 질문을 했다.
"손님! 나머지 오징어를 소금구이로 할까요? 아니면 튀김으로 할까요?"
몸통을 제외한 머리와 다리 부분에 대한 요리의 제안이다. 결정권은 손님에게 있다. 대체로 동석자들과 민주적인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의견이 통일되지 않을 때는 반반씩 하면 된다.
"소금구이와 튀김으로 반반 씩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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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오징어 소금구이, (오)오징어 튀김 |
담백한 안주로는 소금구이가 좋지만, 좀 더 배불리 먹으려면 튀김도 좋다. 튀김에는 고구마, 양파 등 부수적인 야채가 덩달아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오징어 슈마이(일종의 만두)의 특별한 맛
그리고, 오징어 요리의 진수는 오징어 슈마이다. 슈마이는 오징어를 잘게 썰어서 만두 형태로 만든 것을 말하는데, 만두소도 온통 오징어다.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겁게 나오는 오징어 슈마이에는 적당한 양(量)의 와사비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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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슈마이 |
오징어 슈마이의 재료와 성분에 대해서 설명하는 종업원의 말이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여성들의 미용에도 좋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는 종업원의 한마디에 맛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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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덮밥 |
오징어, 문어 등의 두족류는 피부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피부 밑에 들어 있는 적색, 황색, 갈색의 3층 색소세포가 근섬유에 연결돼 있다. 오징어는 이러한 근섬유를 움직이면서 주변 환경에 맞게 몸의 색을 변화시킨다. 시간은 3~5초면 충분하다.
우리가 오징어 회나 만두를 먹는 순간에는 이미 생명이 정지된 터라 하얀 색 그대로여서 다행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오징어 덮밥이 나온다. 간단한 된장국과 함께 나오는 적은 양의 밥이다. 덤으로 나오는 따끈한 전통 일본차도 입맛을 개운하게 했다.
오징어 회에도 장인 정신이 묻어나
일본 요리 전문 가게마다 커다란 수족관이 있다. 어항식의 수족관이 아니라 돌이나 벽돌로 만들어진 대형 양어장과 흡사하다. 그 안에는 바다에서 붙들려온 물고기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 오징어는 선도(鮮度)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만에 운명을 달리한다. 그래도 자신의 운명을 가늠하지 못하는 오징어는 수족관 내에서 유유자적 유영을 한다.
필자가 수십 차례 오징어 회를 맛보았지만, 실제로 오징어 회를 만드는 과정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에, 지배인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젊은 요리사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오징어 사시미를 만드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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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회를 만들고 있는 요리사 미야자키 신타로씨 |
젊은 조리사가 필자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수족관에서 몸통의 색깔을 변화시킬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재빠른 행동으로 오징어 한 마리를 포획했다. 그리고서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정성스럽게 붉은 색 껍질을 벗겨 냈다.
"몸통을 이렇게 도려내어 평평하게 폅니다. 그리고, 사시미 칼로 잘게 자릅니다. 다시 몸통이 있던 곳에 가지런히 올립니다. 머리, 다리도 그대로 붙어있지요?"
너무나 능숙한 솜씨에 놀란 필자가 요리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얼마나 되셨고, 요리사 경력은 얼마나 되셨나요?"
"요리사 경력이 4년 밖에 되지 않은 아직은 풋내기(素人)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요리사 길에 들어섰습니다. 고생스럽기는 해도 이 일이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미야자키 신타로(宮崎新太郞, 24)'라고 이름을 밝힌 청년 요리사의 얼굴에서 자신감과 함께 행복감이 넘쳐났다. 치열한 입시 전쟁 속에서 헤매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천직(天職)일 듯싶다.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전문가는 이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전통과 혁신의 시니세(老鋪) 요리점
이는 창업자 '데라오카 나오히코(寺岡直彦,70)' 씨의 기업가 정신이기도 하다. 가게 이름 '테라오카'는 창업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내년이면 창업 40주년을 맞습니다. 하카타(博多)의 사람들이나 후쿠오카를 방문하는 많은 분들에게, 현해탄의 활어를 비롯해서 하카타의 다양한 맛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 지역 시니세(老鋪) 요리점으로서 일본 요리의 전통을 지키면서, 다음의 세대로 계승해 갈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데라오카(寺岡) 사장의 말이다. 시니세(老鋪)는 일본에서 대를 이어가는 가게를 말한다. 3-4대는 기본이고, 8대 째 요리점을 하고 있는 시니세(老鋪)도 있다.
'화가의 길을 걸으려다가 실패하고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다'는 테라오카(寺岡) 사장은 또, "손님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그 자체가 음식점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면서 "시대의 변화와 고객의 기호에 적합한 요리를 계속적으로 제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전통과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손님들의 입맛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요리사들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를 잇는 시니세(老鋪) 요리점으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