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영하의 날씨를 뒤로하고 시모노세키(下關)에 갔다. 인구 26만 명 정도의 소도시이다. 역(驛)에 내리자마자 복어(河豚)들이 날라 다녔다. 하나같이 귀여웠다. 실물이 아니라 캐릭터 내지는 인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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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역 |
연말연시(年末年始)인지라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았고, 시장에도 설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력과 음력의 차이일 뿐 모습들은 설을 맞아 고향을 찾아가는 인파들이었다.
시모노세키는 예로부터 서부 일본의 육해교통의 십자로 였다. 그런 연유로 교통·상업 중심지로 번창했다. 1905년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 항로가 개설돼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대륙침략의 문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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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몬항 |
간몬항(關門港)은 기타큐슈(北九州)의 모지항(門司港)과 시모노세키(下關)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건너편 항구다. 아무튼,시모노세키는 일본 제1위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곳이다. 수산가공·냉동·통조림·어망·선구·조선 및 화학·금속·목재 공업이 왕성했다.
1894년 4월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이 슌판로(春帆樓)에서 체결됐다. 1864년에는 시코쿠 함대가 미국 선(船)을 공격했다가 시모노세키 포대가 한 때 미군에 점령되는 사건도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
복어는 약 120종의 물고기다. 그중에서 식용으로는 참복 등이 유명하다. 식용 가능한 부위는 복어의 종류와 어획 장소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아마추어 요리사에 의한 복어 취급이 금지돼있다. 실제로 일본의 식중독의 원인의 대부분이 버섯과 복어이다.
이러한 복어를 식용으로 금지한 사람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6-1598)였고, ‘먹어도 좋다’고 한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였다.
두 사람 모두 조선을 침략한 사람이다. ‘참으로 이상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가라토 시장은 점입가경. 복어가족 인형들이 있었고, 시장 안에는 거대한 복어 인형이 있었다. 건너편 언덕의 신사(神社)에는 세계 최대의 복어 인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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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인형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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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안의 거대한 복어 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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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복어동상 |
일본인들이 일컫는 복어는 ‘후구(ふぐ)’이다. 하지만, 시모노세키사람들은 ‘후쿠(ふく)’라고 한다. 이유인즉 ‘후구’는 ‘불우(不遇)’와 발음이 같고, ‘후쿠’는 ‘복(福)’을 가져다주는 물고기라서 이렇게 부르고 있을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2019년 우리에게 복(福)을 가져다 줄 생선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호텔로 돌아갔다.
기온은 영상이었으나, 바닷바람이 거셌다. 불현듯 주강현(朱剛玄) 선생의 저서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바닷가 변방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 역시 ‘생각의 반란’이 필요한 일이다. 섬을 거느린 바다는 대개 변방이다. 그런데, 종종 그 변방들이 중심을 들이치고 새로운 중심으로 전환됨을 자주 본다."
이렇게 우리네 인생 지난 한 해를 과거로 흘러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