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시골밥상 식당으로 갑시다."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74)' 씨의 발걸음이 나이답지 않게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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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통의 쌀겨 식당 외관 |
필자는 그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서 후쿠오카(福岡) 도심의 어느 골목에 이르렀다. 그는 허름한 식당 앞에 섰다. 열심히 따라갔지만, 시시하기 그지없는 작은 목조 건물이었다. 도심 한 복판에 헐리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도 의외였다.
'이런 집이 400년의 시골 밥상?'
일단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에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뭔가를 썩히는, 아니 발효(醱酵)하는 냄새였다. 식당의 이름은 <누카 도코(床), 千束(치즈카)>라고 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식당이었으나 인상 좋은 여성들이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누카(糠)에는 풍부한 영양소가 듬뿍
"누카(糠)에는 몸에 좋은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재워서 나온 음식이기에 더욱 맛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건강식입니다."
오츠보(大坪)' 씨의 설명이다.
'누카(糠)-'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들어본 말이다. 일본어의 '누카'는 우리말로 쌀겨다. 쌀겨의 사전적 의미는 현미(玄米)를 도정(搗精)해서 정백미(精白米)를 만들 때 생기는 과피(果皮) ·종피(種皮)·호분층(糊粉層) 등의 가루다.
이런 쌀겨를 한자어로는 미강(米糠)이라고 한다. 이 한자는 읽기도 어렵다. 보통 현미에서 6-8%의 쌀겨가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현미의 도정도(搗精度)를 높이면 그 양이 증가된다. 그리고, 도정(搗精)의 정도에 따라서 그 성분도 달라진다고 한다. 쌀을 많이 찧으면 지방·비타민 B1·인(燐)이 증가하고 대신 섬유가 감소된다. 이것은 현미의 성분이 외층으로부터 내층으로 들어감으로써 성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쌀겨에 풍부한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분 13.5%, 단백질 13.2%, 지방 18.3%, 당질 38.3%, 섬유 7.8%, 회분(灰分) 8.9%, 비타민B1·E도 많다(백과사전).
이런 쌀겨에도 약점이 있다. 저장 중 변질되기 쉬우며 기온과 습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쌀겨 속에 들어 있는 리파아제(lipase)의 움직임이 강해서 지방의 산값(酸價)이 높아져서다. 그래서 쌀겨를 오래도록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고집스럽게 보존하는 그 자체가 신비스럽기도 해서 '호기심 천국'으로 식당의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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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일본 여인들. |
아주 소박한 '시골 밥상'
식당의 좌석은 10여개 정도였다. 11시 40분이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츠보(大坪)' 씨는 "이 식당의 특징은 그날 준비된 재료로만 만든 음식을 파는 집이라서 빨리 와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서둘러선 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 발 빠른 사람과 용기 있는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법이다, 유명한 미슐렌 7스타 교토(京都)의 유명 쉐프 '무라다 요시히로(村田吉弘)' 씨가 이집에서 음식을 먹고 극찬을 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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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음식은 말 그대로 '시골 밥상'이었다. 주춤주춤 한 입에 넣자 참 맛 그대로, 순수한 자연식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깊은 맛-. 주변의 손님들도 '행복 만점'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한자어로 상(床)은 '밥상 상'이다. 같은 한자이나, 일본에서는 '상(床)'을 마루(유카)라고 한다. 소위 바닥재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의 발효 음식과 일맥상통한다. 일본은 온돌이 없기 때문에 다다미 아래 쌀겨를 깔고 거기에 오이, 가지, 무, 고기 등을 묻어서 발효를 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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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올 때 가져 왔다는 쌀겨를 보여 주는 가게 사장. |
"이 쌀겨는 400년 전 저희 할아버지로부터 전수됐고, 그 전통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일단 쌀겨의 시작은 400년의 그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자라는 쌀겨를 새로이 채워 넣은 것입니다. 이 쌀겨는 제가 시집올 때 항아리에 넣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에도(江戶)시대에는 쌀겨를 구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고 합니다.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계층이 한정돼 있었으니까요. "
식당 주인 '시모다 도시코(下田敏子)' 씨의 말이다. 참으로 고집스럽게 전통을 잇고 있다.
그 식당에서 제시한 주요 음식별 절임 시간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오이, 가지, 양배추: 8-24시간
‣ 무, 순무(뿌리·줄기): 12-28시간
‣ 당근: 16시간-36시간
지극정성으로 장시간의 절임을 통해서 음식을 만든 이유는 조미료 등 화학제품이 난무하는 오늘날 손님들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했다.
‣ 오이, 가지, 양배추: 8-24시간
‣ 무, 순무(뿌리·줄기): 12-28시간
‣ 당근: 16시간-36시간
지극정성으로 장시간의 절임을 통해서 음식을 만든 이유는 조미료 등 화학제품이 난무하는 오늘날 손님들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했다.
일본의 절임(漬け物)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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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겨에서 절인 일본 반찬 |
'구사야'는 전갱이를 썩혀서 발효한 액체에 갈고등어를 절였다가 굴비처럼 건조시킨 어류를 말한다. 갈고등어를 일본에서는 '무로아지(室鯵)'라고 하는데, '아지(鯵)'의 어원이 '비린내 소(鯵)'라는 것만 봐도 냄새와 관련이 많은 어류다.
'구사야'는 신선한 생선을 '생선 창자 액(液)'에 넣어 장시간(8-20시간) 절인 후에 햇볕에 말린다. 흔히 '구사야'를 발효식품이라고 하지만, 발효시킨 것은 생선이 아니고, '액(液)'이다. 독특한 냄새라기보다는 차라리 악취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다. '구사야'는 강렬한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확연하게 갈라진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짜면서도 순함이 있어서 맛으로 느끼는 염분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딸이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이 원액을 가지고 간다.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일본요리에서도 우리의 김치처럼 절임(漬け物)이 근본이었다. 일본의 절임에 대해 박병학 신흥대 호텔조리과 교수는 <일본요리 역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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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야가 명물인 고우즈시마. |
"지금처럼 풍성한 식탁에서는 절임이 주역이 될 수 없지만 밥과 된장국 절임류의 1즙 1채의 식사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무게감을 지닌 것이었다."
먹을거리가 지천인 오늘날이다. 하지만, 때로는 소박한 음식이 그립다. 특히, 발효(醱酵)식품이 건강에 좋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쏠렸다.
'사람도 발효되면 보다 성숙해질 것인가.'
식당을 나서자 상큼한 봄내음이 느껴졌으나, 미세먼지로 인해 하늘이 잿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