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명물인 전통 시장으로 갑시다. 유명한 '칸 엘-칼릴리' 바자르(Bazaar)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자는 현지인 요셉(Youssef) 씨를 따라서 트래픽 대열에 합류했다. 바자르(Bazaar)는 중동 지역의 전통 시장을 일컫는다. 바자르(Bazaar)에서 딱히 살 물건이 없더라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문화의 체험이다.
터키의 경우도 그러했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는 과히 세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이로의 바자르는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보다는 규모가 못하겠지만,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가 듬뿍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어 마음이 먼저 달렸다. 하지만, 자동차의 흐름은 필자의 마음과 반대로 더딘 흐름을 이어갔다.
무질서한 곳·흐트러진 물건들·잡동사니
바자르(Bazaar)는 사전적 의미로 '시장(市場)'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바자르(Bazaar)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의 의미로 정리돼 있다. ①중근동(中近東) 지방의 시장 ②시장·가게·잡화점·할인점 ③무질서한 곳·흐트러진 물건들·잡동사니·소지품 등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필자는 세 번째의 의미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바자르'는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처럼 물품들이 상품화돼 맵시 있게 정돈된 곳이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들이 제멋대로 뒹굴기 때문이다.
예정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칸 엘 칼릴리(Khan al-Khalili)' 바자르는 모스크에 둘러싸여 있었다. 요셉(Youssef) 씨가 경비원에게 사정을 해서 가까스로 주차장에 들어갔다. 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귀여운 여자 아이가 주차 안내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집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의 아이였기에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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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소녀의 해맑은 미소 |
'아니, 이런 애가 주차 안내를 하다니...'
순간 아랍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집트 작가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 1911-2006)'의 대표작 '게벨라위의 아이들(한국어판: 우리 동네 아이들)'이 떠올랐다. 필자는 요셉 씨에게 물었다.
"요셉 씨! 이 바자르에 '나지브 마흐푸즈 카페'가 있지요? 거기 한번 들러봅시다."
"아! 그렇지 않아도 거기에 안내할 생각이었습니다. 물 담배도 피워보시고...."
차(車)에서 내리자 '바자르'는 형형색색의 물건들과 피부 색깔, 옷차림이 각양각색인 사람들로 붐볐다. 필자는 이색적인 광경에 매료돼 어디에 눈을 맞출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칸 엘 칼릴리 바자르'는 여느 중동 국가처럼 '모스크'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생각대로 무질서했고 가게도, 사람도, 물건도 천방지축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살아있는 생명체(生命體)들의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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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상품들 |
칸(khan)은 숙박시설을 의미하는 아랍어
자료에 의하면 '칸 엘 칼릴리(Khan al-Khalili)' 바자르의 역사는 맘루크 왕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르쿠크(Barquq, 1382-1399)'의 왕자 '알-칼릴리(al-Khalili)'가 1382년 아라비아 대상(隊商)들의 숙소를 마련해 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칸(khan)은 숙박시설을 의미하는 아랍어입니다. 그 후 술탄 '칸수 알-구리(Qansuh al-Ghuri, 1501-1516)'가 이 시설을 더욱 크게 확장했습니다."
요셉(Youssef) 씨가 '바자르'의 유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예로부터 아래 층 '바자르'는 보석·향료·실크 등을 판매 했고, 위층은 대상(隊商)들의 숙소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낙타나 말을 매어두는 정원도 있었다고 했다. '칸 엘 칼릴리' 바자르는 우리의 인사동과 같은 곳이다. 골동품 거리와 골드시티(gold city), 향수 전문점도 있었다.
"그 옛날 전성기에는 12,000여 개의 상점들이 불야성을 이뤘는데, 지금은 1,500여 개 정도의 가게들이 남아있습니다. 이들의 호객행위가 거셉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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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 뒷골목 |
요셉(Youssef) 씨의 말이 떨어지자말자 그를 반기면서 다가오는 현지인이 있었다. 둘이서 서로 껴안고 진한 인사를 나누기에 필자는 그들이 오랜 친구사이로 착각했다.
현지인은 요셉 씨와 필자를 상가 2층 으슥한 곳으로 안내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파피루스 그림들이 가게에 가득했다. 하지만, 값을 물을 수 없었다. 가격은 말하지 않고 무조건 포장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현지인은 요셉 씨와 필자를 상가 2층 으슥한 곳으로 안내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파피루스 그림들이 가게에 가득했다. 하지만, 값을 물을 수 없었다. 가격은 말하지 않고 무조건 포장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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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 그림을 파는 화랑 |
중동 지방의 '바자르'는 정가(定價)가 없다. 그것이 '바자르'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가지를 쓴다. 파피루스 그림들은 대체로 훌륭했다. 하지만, 정당한 가격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필자가 포장을 거부하자 가격은 겨울날의 수은주처럼 뚝뚝 떨어졌다. 요셉(Youssef) 씨가 '그만 나가자'고 눈치를 했다. 현지인은 길을 막으면서 다소 억압적인 강매(强賣) 자세로 돌변했다. 거절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와 카페(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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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 |
이집트 카이로 칸 엘-칼릴리(Khan el Kahlili) 바자르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의 이름을 딴 카페가 있다. 그가 생전에 즐겨 다니던 단골집이었다.
본래는 '오베로이(Oberoi)' 호텔에서 운영하던 전통 식당이었으나, 1988년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후 그의 이름을 딴 카페로 상호를 바꿨다고 한다. 유명세를 탄 이 카페는 이집트 문인들의 집합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까. 소설 '가벨라위 아이들(우리동네 아이들, 중원문화)'에 카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 자신도 '이 소설의 소재를 카페에서 전해 들었다'고 서문에 썼다.
그래서 일까. 소설 '가벨라위 아이들(우리동네 아이들, 중원문화)'에 카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 자신도 '이 소설의 소재를 카페에서 전해 들었다'고 서문에 썼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 고을의 이야기들을 엮어 놓은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은 내가 직접 겪었으나 그 밖의 것들은 많은 야담가들이 그들의 아버지나 카페 등에서 전해들은 것이다."
소설의 본문에는 농밀한 카페의 분위기가 더욱 자세하게 묘사된다.
"카페의 분위기는 점점 지루해져갔다. 담배 연기가 구름처럼 모였고 여전히 공기는 담배, 민트, 정향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계속적으로 기침 소리·농담하는 소리·거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을로부터 몇몇 소년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발라위의 어린이들, 무슨 소식이 있나?
당신들 중 누가 기독교인가요? 아니면 유대교인?
당신들이 드시는 게 무엇인가요? 대추야자 주세요.
마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커피요.>
당신들 중 누가 기독교인가요? 아니면 유대교인?
당신들이 드시는 게 무엇인가요? 대추야자 주세요.
마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커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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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이야기꾼들 |
"밤이 낮에 굴복하듯이 억압은 반드시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압제의 종말과 기적의 새벽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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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들의 비상 |
필자는 저녁 약속이 있었기에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 카페(cafe)를 잠깐 기웃거리다가 차 한 잔도 못하고 뒤돌아섰다. '바자르'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몰려들었다. 비둘기들도 평화를 부르짖는 듯 소리를 지르며 무리지어 카이로의 하늘을 맴돌았다.
"가벨라위여! 이 땅의 후손들에게 평화를 안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