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Paraguy)의 수도 아순시온(Asuncion)에서만 1시간을 헤맸다. 점심 식사와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기 위한 입국 서류 준비 때문이기도 했으나, 교통 체증이 많은 것도 이유였다.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가 막힐 때 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잡상인이나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다.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파라과이 도로에서는 신선한 손님을 만났다. 어린 소년이 날쌔게 차에 올라타서 앞 유리를 닦았다. 어찌나 손놀림이 빠른지 차가 멈춘 짧은 순간에 유리창이 하늘처럼 맑아졌다. 당연히 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소년의 행동과 모습이 귀여워서 저절로 지갑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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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차창 유리를 닦는 소년 |
도심에서 약간 벗어나자 남미의 축구협회건물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남미 축구협회가 파라과이에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지루한 시간과의 씨름을 뒤로하고 시내를 벗어나자 더없이 넓은 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씩 길에 나와 큰 눈을 부릅뜬 소들도 귀엽기 짝이 없었다. 차가 소들과 조우(遭遇)하자 자동적으로 서행했다.
자연의 감상은 잠시 뿐. 때마침 겨울철이라서 오후 4시가 넘어서자 어둠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차는 어둠을 헤치며 2차선 길을 하염없이 달렸다. 필자는 시차 적응에 시달리던 터라 스스로 무거운 눈꺼풀을 닫고 말았다.
동쪽의 도시, '사우다드 델 에스테'
파라과이에서 이과수 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필히 '사우다드 델 에스테(Ciudad del Este)'를 거쳐야 한다. 인구 35-40만 정도인 이 도시는 파라과이 2대 도시로, 브라질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도시 이름 '사우다드 델 에스테'는 '동쪽의 도시'라는 의미다. 이 도시는 카지노와 면세점이 많아서 물가가 싸기로 유명하다. 쇼핑객의 대부분은 브라질 사람들로써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붐빈다고 했다. 우리의 용산 전자 상가 같은 느낌이었다.
필자가 5시간의 주행 끝에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경. 인접 카지노만 불이 밝혀 있을 뿐, 도시는 적막에 싸여 있었다. '사우다드 델 에스테'의 밤은 구경할 것도, 시간적 여유도 없이 깊어만 갔다.
새벽에 일어나서 호텔 뒤 편 정원에 나가봤다. 열대 식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파라나(Paraná) 강 건너의 도시에는 제법 높은 아파트들이 보였다. 그 곳은 파라과이가 아니라 브라질 땅이었다.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지역 폭포를 먼저보고 브라질 쪽은 나중에 가기로 했다. 볼거리가 많아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우정의 다리'
차량들이 유난히 많이 오고가는 다리의 이름은 '우정의 다리'라고 했다. 다리 하나를 두고 파라과이와 브라질 양국 사람들이 '간단한 절차로 왕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정이 넘쳐났다. 노란 헬멧을 쓴 오토바이 택시들이 '우정의 다리'를 오가며 사람과 짐을 열심히 실어 날랐다. 다리 아래는 이과수 폭포의 상류인 파라나(Paraná) 강의 힘찬 물줄기들이 입국수속도 없이 거침없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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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다리를 건너면 브라질 땅이다 |
'우정의 다리'를 건너자 브라질 국기가 눈에 들어왔다. 브라질 땅은 역시 광활했다. 도로도 파라과이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넓었고, 초원은 더욱 넓었다. 나라의 한 귀퉁이만 보는 것인데도 전체의 크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브라질 땅은 잠시 스쳐갈 뿐 다시 아르헨티나 국경으로 향했다.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우정이 없는 것일까. 아르헨티나 국경을 통과하는 데는 많이 시간이 걸렸다. 파라과이 사람에 대한 체크가 엄격해서다. 이민국 책임자를 만나서 열심히 설명해도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NO!"
결국 안내를 하던 파라과이 한국인 2세(엘리사, 28세)의 입국이 제한됐다. 필자 일행에게 갑자기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 왔다. 현지 운전사(니콜라스, 26세)의 안내를 받으며, 아르헨티나에 입국할 수밖에 없는 고약한 신세가 됐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엘리사 양을 아르헨티나 국경 면세점에 인질(?)로 남기고, 이과수 폭포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약간 찜찜한 아르헨티나의 국경을 통과하자, 또 다른 느낌의 광활한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들이 브라질 보다 단아해 보였으나,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전쟁 패배로 빼앗긴 땅-
사실은 필자 일행이 통과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본디 파라과이의 땅이었다. 무슨 이유로 땅의 국적이 달라졌을까.
파라과이는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 동맹국과 5년간의 전쟁(1865-1870)을 했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처참했던 전쟁으로 일컫는 5년간의 싸움은 1870년 파라과이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의 전사로 끝이 났다. 이 전쟁 결과, 파라과이는 학교가 폐쇄되고 신문도 발행되지 않아 경제 ․ 사회 ․ 문화가 정지해 버렸다. 특히, 인명 피해가 많아 90%의 남자를 잃고 국토가 황폐했다. 또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영토를 내준 까닭에 국토는 약 반으로 줄었다. 필자 일행이 결사적으로 가려고 한 세계적인 관광지 이과수 폭포도 이때 잃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파라과이는 작은 나라로 전락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몸을 더욱 낮춰야 했다. 그래도 끝까지 용감하게 싸운 지도자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은 지금도 파라과이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아순시온을 비롯한 파라과이 도시들의 중심지에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파라과이가 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필자 일행도 국경 통과에 따른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때의 앙금이 남아있어 오늘날도 서로 삐꺽거린다. 아르헨티나가 더 그렇다. 그래서 역사의 아픈 상처는 오래도록 남는다.
드디어 꿈에서 그리던 이과수 폭포의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는 너무나 평범해서 여느 동물원이나 공원의 입구와 다를 바 없었다. 입구에서 표를 사서 다시 기차를 타야 했다. 폭포까지 20-30분 정도는 걸리는 듯했다. 길잡이를 놓쳤으니 눈치로 때려잡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꼬리 긴 코아티(Coati)들도 관광자원
협궤 열차는 관광객들을 운반하는 느림보였다. 산길을 따라 도보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차는 숲 속을 따라 원을 그리며 나아갔다. 이름 모를 열대 식물들이 우거져 있었고,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나비 한 마리가 관광객의 모자 위에 사뿐히 내려앉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나비라고 했다. 각기 다른 피부색과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난무했다. 그래도 들뜬 감정들은 색깔 없이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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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이과수 폭포로 가는 협궤 열차, (오)긴꼬리 동물 코아티 |
기차를 바꿔 타기 위해서 숲 속 작은 간이역에서 내렸다. 이때 꼬리가 긴 동물들이 몰려들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안내판이 쓰여 있었으나, 사람들은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다. 이미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에 길들여진 동물들은 기차소리를 듣고 결사적인 뜀박질을 했던 것이다. 이 동물들의 이름은 코아티(Coati)라는 너구리 종류다. 일부 여성들은 달려드는 코아티에 놀라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유난히 꼬리가 길어서 '긴 꼬리 너구리'라고도 한다. 몸길이가 43∼66cm인데, 꼬리길이는 42∼68cm나 된다. 숲 속에서 나무의 빈 구멍에 집을 짓고 사는 코아티는 나무타기 선수들이다. 이 들은 남아메리카에 많이 분포돼 있다.
코아티(Coati)들과 작별을 고(告)하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종착역에 이르렀다. 아주 평범한 보잘 것 없는 강위로 인공다리가 놓여 있었다. 강에는 물고기들이 꼬리를 치며 유영하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다리를 열심히 1km쯤 걸었다. 폭포가 가까워지자 멀리서 물보라가 구름처럼 피워 올랐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려왔다. 악마의 목구멍에 다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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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목구멍 |
"Do not try to describe it in your voice."
이과수 폭포에 대해 '어떠한 말로도 묘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이 세상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과수(Iguazu) 라는 어원은 원주민의 말인 '과라니'어로 '거대한 물'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거대한 물'은 이 곳 '악마의 목구멍'에서 시작된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