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월간조선에 <내가 본 일본, 일본인>의 타이틀로 일본을 중심으로 한 215회의 칼럼을 마치고, 이제 새로운 세계에 도전장을 던지려 한다. 주제는 <내가 본 세계, 세계인>이다. 다소 한정된 일본이라는 고정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세계와 소통을 하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지도편달(指導鞭撻)을 기대하면서 첫 장을 연다.
<내가 본 세계, 세계인> 첫 칼럼은 남미를 중심으로 문화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엮으려 한다. 최근에 남미의 심장부로 일컫는 파라과이를 중심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다녀온 이유에서다. 물론, 짧은 기간인지라 광활한 대륙의 전부를 담을 수 없었으나, 단지 필자가 보고 느낀 부분을 중심으로 했다. 남미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미흡한 내용이 많을 것이다.
문화는 경작, 재배의 라틴어에서 유래
우리는 평소에 '여행은 고생이다'는 말을 자주한다. 여행 'travel'의 어원도 'travail(고통, 고난)'에 두고 있다. 그래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에 부풀어 여행 중의 고생쯤은 개의치 않는다. 여행은 이제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했다. 여행에서 얻어지는 것이 많이 있지만, 새로운 문화(文化)의 체험을 큰 수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문화의 근원적 의미는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양이나 예술' 등의 뜻을 지니게 됐다.
문화 인류학자 미국 듀크 대학의 '월터 D. 미뇰로(Walter D. Mignole)' 교수는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이라는 책에서 문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작하다' 혹은 '거주하다'라는 뜻의 라틴어(Colete)에서 유래한 문화가 세속화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개념으로 떠오른 것은 문화가 인간의 생산과 창조라는 의미에서 '양육하다'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 |
(왼) 이복형 중남미 문화원장, (오) 신간 지금도 꿈을 꾼다를 들어보이는 홍갑표 이사장 |
이러한 문화의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40년 동안 문화를 '경작하고 재배한 두 사람'이 있다. 이복형(81) 중남미문화원 원장과 홍갑표(79) 이사장이다. 이 부부(夫婦)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유일한 총체적 개념의 중남미문화원을 스스로 가꿨다. 필자와는 설립 초기부터 잘 알고 지내는 관계였으나, 인터뷰를 위한 만남은 처음이기에 다소 설레기도 했다.
20살 성년의 중남미문화원
![]() |
중남미문화원-박물관 전경 |
차창 밖 자유로는 어느새 바람결이 달랐다. 전력 비상사태까지 몰고 오던 무더위가 소리 없이 뒷걸음 친 것을 보면 '자연의 섭리(攝理)는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302-1 중남미문화원을 찾았다. 예전에 비해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으나, 고불고불하던 골목길은 칼로 자른 듯 직선으로 펴졌다. 문화원에 들어서자 잘 정돈된 정원과 남미의 조각품들이 여전히 세련미를 뽐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필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두 여인이 있었다. '멕시코의 여인품(Aire De Mexico)'이라는 조각품이다. 이 조각은 멕시코 작가 '빅또르 구띠에레스'가 1994년에 만든 작품이다.
![]() |
멕시코의 여인품 |
"아! 오랜만입니다."
이복형 원장은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발걸음도 무척 가벼워 보였다. 아직도 문화원 내부의 정원수들을 손수 관리하고, 외부 강연과 주한 중남미 대사들과의 교류 등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열정파이다.
"올해로 이 문화원이 설립 20주년을 맞습니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중남미문화원은 한국 사람들에게 생소한 중남미의 문화를 소개 했다. '연간 10만 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했다. 20년 동안 200만 명이 다녀간 셈이다. 문화원의 설립 취지에 분명한 목적이 담겨 있다.
"어른들에게는 아직은 낯선 중남미 지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청소년들에게는 세계화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꿈과 이상과 건전한 세계관을 심어주기 위한 취지로 건립했습니다."
중남미문화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1994년 세워진 박물관에는 마야 · 아즈텍 · 잉카의 유물들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1997년에 건립된 미술관에는 중남미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품 40여 점이 남미의 문화를 내보이고 있고, 2001년에 조성된 야외 조각공원은 40여 점의 조각품들이 공원은 물론 산책로와 언덕길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2011년에 세워진 종교관과 마야 벽화가 있다.
이복형 원장은 30여년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아르헨티나 등 남미에서만 외교관 생활을 했다. 1992년 멕시코 대사를 끝으로 외교관 생활을 마감했다. 귀국과 동시에 중남미문화원장으로서의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 때 이원장의 나이가 62세였다. 80이 훌쩍 넘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보람되고 알찬 20년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중남미 표를 끌어온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80세에도 꿈을 꾸는 사람들-
"남들이 보면 오지(奧地)에서만 외교관 생활을 한 사람으로 측은하게 볼 수 있었으나, 저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보람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오늘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잘 알다시피 저의 집사람 때문입니다."
그렇다. 홍갑표 이사장의 내조가 없었다면 중남미문화원의 경작(?)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었다. 이 때 홍갑표 이사장이 인터뷰 장소에 합류했다.
홍 이사장은 "아! 장 선생! 오랜만이네요." 하면서 필자에게 책을 한 권 내밀었다.
"오늘 막 나온 책입니다. 중남미문화원과 관련한 나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꼭 읽어봐야 해요?"
그토록 바쁜 생활 속에서 책을 썼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책의 제목은 더욱 놀라웠다.
"지금도 꿈을 꾼다. 태양의 열정으로-"
홍갑표 이사장이 1934년생이니 우리나이로 올해 80세인 셈이다. 그 나이에 '아직도 꿈을
꾼다'는 사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리라. 홍 이사장은 증정본에 사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꾼다'는 사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리라. 홍 이사장은 증정본에 사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장상인 사장님! 중남미문화원과 함께 꿈꾸며 함께 행복합시다."
김난도 교수는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홍 이사장이 바로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살고 있다. 지금도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 속에서 묵상하기를 40년. 그 묵상 속에서 오늘의 꿈이 영글었다. 그리고, 그 꿈은 소유가 아닌 나눔으로 새로운 씨앗을 뿌린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