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長崎) 평화의 공원을 크게 분류하면 '부탁(願)의 존(zone)', '기도의 존(zone)', '배움의 존(zone)', '광장 존(zone)', '스포츠 존(zone)' 등이 있다.
'부탁의 존(zone)'에 들어서면 일단 우람한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 출신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우(北村西望, 1884-1987)'씨가 1955년에 만든 작품이다. 높이 9.7m, 무게 약 30톤의 거대한 청동상(靑銅像)이다. '장보고 CEO 포럼' 회장인 황상석(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연구교수) 박사와 연구원·학생·가족들은 '평화기념상(平和祈念像)'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전남대 역사 탐방팀 |
"하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고, 수직 높이 쳐들고 있는 오른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옆으로 올린 발은 원폭 투하 직후 나가사키의 정적을, 세운 다리는 구(救)한 생명을,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동상 뒷면에 새겨져 있는 '작가의 말'이다.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면서 원망스러운 원자폭탄에 대한 꾸짖음과 평화를 갈망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평화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부탁(願)의 존(zone)'에는 이 외에도 평화의 샘(泉), 우라가미(浦上)형무소 흔적지와 '나가사키의 종(鐘)'이 있다. '나가사키의 종(鐘)'은 1977년 이곳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한 뜻으로 세워졌다.
원폭낙하의 중심지
원폭순난자명 봉안탑 |
도미니카 나오키의 어머니상(像) |
또한, 잘 정돈된 작은 냇물가로 내려가면 원폭에 의해 파괴된 집과 기와, 벽돌, 용해된 유리조각 등이 매몰된 지층을 확인 할 수 있다. 벽돌 조각, 유리 파편 하나하나가 피폭당시의 비참했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평화의 공원을 돌아본 후의 소감을 '생명의 교회' 윤승현(53)목사는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공원입니다. 하지만, 조각품들이 지나치게 예술성만 강조해 '평화의 기원(祈願)'이라는 테마가 묻혀 버린 듯합니다."
서러운 조선인 추도비
![]() |
조선인 원폭희생자 추도비 |
폭심지에서 계단을 따라 원폭 자료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작은 추모비가 하나 있다. 그 당시 징용으로 끌려와서 나가사키 조선소 등에서 일하다가 피폭된 한국인들을 추모하는 비석이다. 예전에 비해 다녀가는 사람들은 늘었는지 제법 많은 꽃다발과 소주병들이 원혼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있었다. 이 비(碑)는 '이름 없는 일본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모아, 이곳 나가사키(長崎)에서 비참한 생애를 보낸 1만 여명의 조선 사람을 위하여 이 추도비를 건설했다'고 쓰여 있다(필자의 칼럼 2006/8/14 참고).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전쟁은 계속되는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중단했던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하고 우라늄 농축시설도 증설한다"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전용이 가능하다'는 성급한 보도도 있다.
![]() |
우라카미 성당의 잔해 |
'나가이 다카시(永井隆, 1908-1951)' 박사는 당시 자신의 아들 '나가이 마코도(永井誠一)'를 데리고 피폭현장에서 주검을 수습하기도 했다. 겨우 10살짜리의 아이였지만, 그에게 참상의 현장을 목격시킨 이유는 전쟁의 아픔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
"나뒹구는 백골과 더불어 지내는 이 끔찍한 생활을 굳이 '마코도(誠一)'에게 체험시킨 이유는 그 아이에게 전쟁의 본질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그 아이는 세계가 변해가더라도 평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아갈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 |
나가사키의 종 |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는 1951년 5월1일 오전. 들것에 실려 예전에 근무하던 나가사키 의대 병원에 입원했다. 오후 9시 50분. 갑자기 '예수, 마리아, 요셉, 기도해 주세요.'라는 아버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병실로 뛰어가 머리맡에 놓여있던 십자가를 손에 쥐어드리며 '아버지!' 하고 불렀으나 대답이 없으셨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눈물을 그 누가 닦아줄 것인가. 나가사키(長崎)의 눈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을 듯싶어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