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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야요이 인(彌生人)의 숨결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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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古代) 마을로 갑니다. 잠시 눈을 감고 기다려 보실래요?"


필자의 운전사를 자청한 '오츠보 시게타카(大坪重隆·72)'씨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눈을 감을 틈을 주지 않고 음악을 틀었다. 우리 가수 현철의 노래였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다 한 그 사랑도/ 태산 같은데/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가느냐"

항상 흥이 넘치면서도 가는 세월이 아쉬운 듯 '오츠보(大坪)'씨는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청춘을 돌릴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는 후쿠오카(福岡)를 출발해서 사가(佐賀)현의 '요시노가리(吉野ヶ里)' 유적(遺跡)을 향했다. 시간은 오전 10시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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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가리 유역지의 입구
하지만, 노래에 취해 유적지의 진입로를 놓친 나머지 차는 이름도 모르는 산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뒤늦게 내비게이션의 신세를 지기로 하고 차를 멈춰서 목적지를 입력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우회전 하세요' '우회전 하세요'만 연발했다. 차는 점점 미궁의 길 인적이 드믄 산 속으로 들어갔다. 내비게이션의 과잉 친절로 고속도로를 재진입하기 위한 최단거리를 찾다가 더욱 헤매고 말았다. 대신 일본의 산골 마을을 속속들이 구경하는 기회를 가졌다. 수풀이 우거진 산속 마을, 계절을 잊고 하염없이 매달린 나무 위의 홍시(紅柹), 불청객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강아지들.... 불과 몇 십분 벗어났는데도 산골은 풍경·공기·사람 모두가 달랐다.


'요시노가리(吉野ヶ里)' 유적(遺跡)은 규슈(九州)의 사가(佐賀)현 간자키군(神埼郡) '요시노가리' 마을과 '간자키시(神埼市)'의 구릉 약 50헥타르에 걸쳐 있는 '야요이시대(彌生時代)'의 환호취락 유적지다. 1986년에 발굴돼 현재는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으로 지정된 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야요이 시대(弥生時代)의 특징은 벼농사


"야요이인(弥生人)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고대(古代)의 숨결을 느껴보세요."


입구의 안내문이 유적지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요약했다. 실제로 '야요이시대(彌生時代)'의 특징 중의 하나는 벼농사의 시작이다. 수렵이나 채취에 의해 불안정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벼(稻) 등 작물 재배에 의해서 안정된 생활로의 변화를 도모했다. 이에 대한 내용이 '도해 일본사(成美堂出版)'에도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조오몽시대(繩文時代, BC 14,000-BC 300)로부터 야요이시대(彌生時代, BC 300-AD 250)로 이행되는데 있어서의 큰 변화는 채취경제로부터 생산경제로의 전환이다. 기원전 5세기 전후에 조선반도에서 전해진 벼농사는 불안정한 생활을 했던 그들에게 안정된 생활로의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야요이시대(彌生時代)'는 약 600년간 지속됐다. 벼농사의 시작과 함께 야요이(彌生) 토기가 구워졌으며, 철기 사용과 함께 소국가(小國家)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야요이(彌生) 문화가 바로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동국대 윤명철 교수는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는 책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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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시대의 집단 취락지


"벼농사는 오늘날의 유전공학처럼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분야이고, 고도의 기술이 집적(集積)되어야 가능한 원예농업이었다. 몇 명의 기술자가 아니라 기술자들이 대거 이주한 다음에 오랜 기간에 걸쳐 끈질기게 시험재배를 한 끝에 비로소 정착할 수 있는 산업이었다."


그렇다면 집단으로 이곳으로 이주해온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여러 가지 학설 중에서 윤명철 교수는 "화북에서 요동 지방을 거쳐 한반도 북부와 남부에 정착한 다음, 다시 바다를 건너 남으로 내려갔다'는 설(說)을 믿었다. '야요이' 문화는 "배를 타고 짠 기운을 흠씬 머금은 채 바다를 건넌 문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농민들이 치르는 장례법이 우리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이다. 가장 보수성이 강한 것이 바로 죽음의 의식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장례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옹관묘, 석관, 토광묘, 고인돌 같은 것을 이용하여 죽은 사람을 묻었다. 사람들은 먼 곳으로 이주해도 죽음과 관련된 의식을 쉽게 바꾸는 법이 없다."


취락 방어가 최우선


하지만, 벼농사의 번창과 함께 사람들의 인심이 나빠졌다. 서로 많은 땅을 가지려는 것과 벼농사에 필수적인 물(水)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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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호(壕)와 목책들-


그래서 감시를 하는 망루와 이중 환호(環壕) 등 방어적인 성격이 강한 울타리를 설치했다. 이것은 곧. 일본 성곽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시노가리' 유적의 가장 큰 특징도 마을의 방어와 관련된 것이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V자형으로 깊게 파인 호(壕)가 있었고, 목책 · 가시나무울타리(逆茂木) 등 적의 침입을 방지 하는 방어시설이 있었다. 목책에 대한 안내문에도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벼농사가 번창하자 물과 토지를 뺏으려는 싸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락을 지키기 위해 취락의 입구 등 중요한 구역에 뾰족한 나무나 가지로 방어벽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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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와 지도자급의 주택
이곳에서는 기원 전 4세기부터 요시노가리(吉野ヶ里) 구릉지에 집락(集落)이 형성되기 시작해 대규모의 집락촌(集落村)으로 발전했다. 구릉지 이곳저곳으로 분산해서 마을(村)이 생겨났던 것이다. '야요이시대'의 후기에는 환호(環壕)가 확대되고 2중으로 증설됨과 동시에 건물의 거대화와 더불어 집락의 최성기(最盛期)를 구가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남내곽(南內廓)과 북내곽(北內廓)으로 내곽을 분리했다. 남내곽은 왕이나 고위 지도자급이 사는 주거지역이고, 북내곽은 정치·제사 등에 관련한 국정을 돌보는 나라의 행정관청이 소재했다. 주거시설과 행정관청을 분리할 만큼 생활수준의 향상과 문화의 발전이 이뤄졌던 것이다. 또한, 쌀이나 음식을 보관하는 창고, 채취장, 청동기 생산도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됐다.


중국인·한국인·일본인 함께 일해


이곳은 본디 공장단지건설이 계획됐던 곳이었다. 1970-80년대에 농지와 과수원 조성을 하던 중 일부 유물이 발견됐다. 그로부터 '요시노가리(吉野ヶ里)' 구릉지 일대가 광범위한 유적지라고 판단,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서 공장단지 개발과 현립고등학교의 이전계획을 모두 취소했다. 이는, 처음부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고학자들은 물론, 언론과 시민들이 힙을 합해서 성사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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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인의 모습-어머니와 딸
공장 밑에 깔리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문화유산들이 이렇게 햇빛을 보게 되어 선인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 한국인이세요?"


필자는 일본인들에게 '야요이' 문화를 열심히 설명하는 안내 직원을 보고 깜짝 놀라서 말을 건넸다.


"네- 한국인입니다. 이곳에 한국인이 4명이나 근무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도 있고요."


아직도 대학생 티가 가시지 않은 김윤미(金潤美·24)씨의 말이다. 그녀는 '울산에서 대학을 나와 공채 시험에 합격해 7개월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주말이면 한국인 여행객이 단체로 50-70명 정도가 다녀간다'고도 했다. 시간 관계상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북내곽으로 향했다. 거기에서는 중국인 안내원을 만났다. 중국인 역시 일본어로 설명을 했다. 한국인·중국인 공히 유창한 일본어였다.


중국에서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된 대륙의 문화- '요시노가리(吉野ヶ里)' 유적지에서 중국인·한국인·일본인들이 열심히 설명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야요이인(彌生人)'의 목소리이자, 고대인(古代人) 숨결의 잔재인 듯싶다.


유적지를 나서자 하얀 구름들이 사가(佐賀) 지역의 명산인 '덴잔(天山)'의 높은 봉우리를 휘감으며 무리지어 흘러갔다.

입력 :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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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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