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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세 번 건넌 해협(海峽)-2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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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근(河時根)이 다시 해협을 건넌다. 세 번째 건너는 해협이다. 이번에 건너는 해협은 타의(他意)에서가 아니라 자의(自意)다. 그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일부러 배를 타고 건넌다. 소설은 그 부분을 이렇게 묘사했다.

<반세기 전 처음으로 대한 해협을 건넌 것은 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17세였지만 그 때까지 바다를 본적이 없었고, 부산항이 우리나라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혀온다. 나의 참담한 처지뿐 아니라 동포 전체의 통곡과 타국에 유린 당한 조국의 슬픔이 밀려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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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눈물로 점철된 현해탄


소설 속 하시근 회장은 6-7시간 정도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내려 기차를 탔다. 무려 40년 만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하시근 회장의 눈에는 언젠가 본적이 있는 지명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시모노세키(下關), 모지(門司), 고쿠라(小倉), 도바타(戶畑), 야하타(八幡), 구로자키(黑崎), 오리오(折尾), 와카마쓰(若松).....>

필자 역시 그 지역을 업무적으로, 개인적인 여행으로 자주 들락거렸던 곳이다. '이곳에 이토록 아픈 사연들이 서려있었다니...' 필자도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회한(悔恨)의 눈물

하시근 회장의 세 번째 건너는 해협은 도시개발 정책에 의해 '다카쓰지(高辻)' 탄광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건넌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아들 '사토 도키로'를 만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드디어, 하시근은 여관으로 찾아온 아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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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몬해협과 간몬교: 시모노세키에서 바라본 모지(門司)
"너에게는 언젠가 용서를 구하러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연락하려 해도 한국과 일본이 너무 멀었습니다. 어쩌면, 두 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일지도 모르지요."

"어머니는 어떻게 살다가 돌아가셨느냐?

'도키로'의 어머니 '사토 치즈(佐藤千鶴)'는 홀로 행상을 하면서 아들을 훌륭한 교사로 만들었다. 북으로는 돗토리(鳥取)현, 남으로는 구마모토(熊本)현까지 행상을 다녔다.

하시근은 이 세상에 없는 '사토 치즈(佐藤千鶴)'와 눈앞에 앉아 있는 일본의 아들 '도키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 다오."

"아닙니다. 아버지!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저의 아버지니까요."

'사토 치즈가 재혼도 하지 않고 여자의 몸으로 홀로 전쟁 후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아들을 교사로 키워낸 것에 비하면, 나의 성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시근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역사의 잔재를 남기기 위해

야마모토(山本) 시장은 '폐석더미를 구획정리해서 택지로 만들어 공장을 지을 수도 있고, 유통센터도 지을 수 있다'는 선거 공약을 내세운다. 하시근의 역할은 거기에 있었다. 탄광의 폐석더미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개발을 반대하는 하시근 회장- 공개 토론장에서 하시근은 '야마모토' 시장에게 일갈(一喝)한다.

"저 폐석산은 '다카쓰지' 탄광, 아니 '가와우치' 집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카쓰지' 탄광에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가 하면,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추악한 과거도 있습니다."

"당신은 1942년인지 1943년경부터 조선에서 인간사냥을 지휘해서 수 백 명의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어와 '다카쓰지' 탄광에 집어넣습니다. 그 후 조선인 기숙사 '교와료'의 노무주임을 지냈지요. 말하자면 무시무시한 독재자로 군림했던 것입니다."

(.........)

N시장 선거에서 '야마모토' 시장이 재선에 실패한다. 결국, 폐탄광은 역사관으로 남게 된다. 소설은 하시근 회장이 일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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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규슈에 있는 고쿠라 성(城):
소설은 기타규슈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도키로,

불에 그슬린 은(銀)과 같이, 역사를 조용하게 조명하는 그런 탄광의 역사를 만들고 싶다.

산자가 죽은 자의 유지를 잊지 않는 한 역사는 왜곡되지 않는다.

너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두 민족의 아름다운 가교(架橋)가 되어주기 바란다. 네 자식이자 내 손자인 '다이이치'와 '게이지', 그리고 네 아내 '게이코'에게도 잘 전해다오. 잘 있어라. 아버지 하시근.>

작가와의 통화

'하하키기 호세이(帚木 蓬生)' 선생은 의사이면서 소설가다. 1947년 후쿠오카(福岡) 태생으로 본명이 '모리야마 나리아키라(森山 成杉木)'이다. 필명 '하하키기 호세이(帚木 蓬生)'는 유명한 '겐지이야기(源氏物語)'에서 따왔다. <겐지이야기>는 1000여 년 전 일본의 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애정소설로써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라는 여성이 집필한 총 54첩(帖)의 대작이다. 여기에 나오는 '하하키기(帚木)의 끝은 비(帚) 자루 같고, 멀리서보면 보이나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호세이(蓬生)는 '황폐한 저택의 쑥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도쿄대학 불문학과에 진학했으나, 졸업 후 방송국에서 근무하다가 규슈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해 정신과 의사가 됐다. 그는 1979년 <하얀 여름날의 묘비명>으로 문단에 데뷔, 유명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그는 현재도 후쿠오카 현의 나카마(中間)시에서 '멘탈 클리닉'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이자 의사인 호세이(帚木) 씨는 필자가 전화를 걸자 반갑게 응답했다. 여느 일본인과 달리 명쾌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대답한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은 필자와 '하하키기(帚木)' 선생과의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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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까지 검은 현해탄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저 자신도 이처럼 쓰라린 역사를 몰랐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일본인들도 모르고 있고
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소설을 썼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한 역사는 잠깐 그럴듯해 보일 뿐 진정한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 설사 그것이 아무리 당장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도 영영 지속될 수는 없다....등 소설 속의 문장에 한국의 독자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일본의 독자들로 부터는 거부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의 독자들도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쓰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몇 년이나 걸렸습니까?"


"5-6년 걸렸습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부산을 5-6차례 다녀왔습니다."


"주인공 하시근(河時根)과 일본 여인 '사토 치즈(佐藤千鶴)'는 실명입니까?"


"
아닙니다. 가공의 인물입니다. 다키쓰지(高辻) 탄광도 두 개의 탄광이름에서 한 자씩 따왔습니다."


"한일관계가 요즈음도 급격하게 냉각되고 있는데, 선생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정치권이나 일부 권력층의 문제일 뿐 민간 레벨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양국이 더 가까워지려면 민간 교류를 확대해서 서로 이해하는 폭(幅)을 넓혀가야 합니다."


필자는 추후 후쿠오카(福岡)에서 작가와 직접 만나기로 약속했다. 작가는 '병원이 매주 수요일 쉬기 때문에 수요일 오후는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했다. '하하키기 호세이(帚木 蓬生)' 선생은 필자와 전화 통화를 마치면서 우리말로 "감사합니다"고 했다.


대한해협은 참으로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는 언제나 아물 것인가(끝).

입력 : 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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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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