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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세 번 건넌 해협(海峽)-1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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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海峽)의 사전적 의미는 '육지 사이에 끼어있는 좁고 긴 바다'를 일컫는다. 이러한 해협은 예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지로써의 역할을 수행했고, 군사적 요충지이자 문화적 · 상업적 관문이기도 했다. 특히 지브롤터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 말라카 해협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해협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대한해협처럼 많은 상처와 눈물을 지니고 있는 곳도 흔치 않을 듯싶다.

이와 같은 상처투성이의 대한해협을 '세 번이나 건넌 사나이'의 억울하고 서러운 스토리(story)인 소설 <해협>의 번역본(나남/ 정혜자 역)이 가을의 문턱에서 홀연히 서점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제(原題)는 <세 번 건넌 해협>으로 일본에서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하하키기 호세이(帚木 蓬生, 65)' 씨가 1993년에 쓴 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팩션(fact +fiction)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허구)을 보탠 작품인 것이다.

해협을 세 번 건넌 소설 속 주인공은 '하시근(河時根)'이다. '하시근'은 17세 때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본의 탄광으로 끌려갔다. 필자는 소설을 접하면서 임화의 시(詩) <현해탄>의 한 대목을 다시금 떠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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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오늘도 또한 나젊은 청년들은

 부지런한 아이들처럼
 끊임없이 이 바다를 건너가고, 돌아오고,
 내일도 또한
 현해탄은 청년들의 해협이리라.(중략)

 그러나 관문해협 저쪽
 이른 봄바람은
 과연 반도의 북풍보다 따사로웠는가?
 정다운 부산 부두 위
 대륙의 물결은
 정녕 현해탄보다 얕았는가."

젊은 청년 하시근이 무슨 사연으로 세 번이나 해협을 건넜을까? 소설을 따라 해협을 건너본다.

첫 번째 건너는 해협

1943년 가을 하시근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끌려갔다'고 해서 괭이를 내던지고 급히 면사무소로 달려간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징용 가는 사람들 속에 끼어 있었다. 하시근은 면사무소 직원에게 애원한다. '아버지는 나이도 많고 병약해서 안 된다'면서 '자신이 대신  일본에 가겠노라'고 매달린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울부짖는다.

"큰 아들이 만주에 징용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둘째 아들입니까? 왜 우리 집만 두 번씩이나 징용에 끌려가야 합니까?"

면장과 아버지, 하시근의 눈물겨운 실랑이는 구경꾼들의 눈물까지 자아내게 했다. 하시근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하던 면장은 그의 나이를 한 살 올리기로하고 승락한다. 결국 어린 하시근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면사무소에서는 일본에 끌려가는 사람들에게 '징용 가는 것이 아니라 큰 조선소에서 기술을 배운다'고 했다.

갖가지 아픈 사연들을 뒤로하고 하시근 일행은 부산에 도착했다. 하시근은 바다를 본 것도, 기선을 본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해협 하나를 건너는 것에 대해 누가 겁을 내겠는가. 이 바다를 자신의 의지로 건널 수 있기만 한다면....>

그 옛날의 해협은, 강제로 건너는 해협은, 귀국을 보장할 수 없는 해협은, 참으로 무섭고 먼 바다였다. 배안에서 딩굴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선소가 아니라 규슈(九州)에 있는 탄광의 노동자로 끌려가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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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모습(사진: 야후재팬)
"탄광(炭鑛)이라는 것 같아. 땅 속에 굴을 파고 석탄을 캐는 두더지 같은 일이야. 굴이 무너지면 생매장 당하는 일도 있고, 구조된다고 해도 허리가 납작하게 찌부러진대."

소문대로 그들은 규슈(九州)의 다카쓰지(高辻) 탄광으로 배속됐다. 다카쓰지(高辻) 탄광은 실제로 존재할까? 필자가 일본의 지인에게 알아본 결과 "규슈의 오무타(大牟田)에 탄광이 많이 있었으나, 다카쓰지(高辻) 탄광으로는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아무튼, 하시근 일행의 탄광 생활은 인간 이하였다.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삶-

하시근은 참다못해 자신들을 괴롭히는 일본 감독관을 죽이고 탄광을 탈출한다. 은거지는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아리랑 마을이었다. 그는 아리랑 마을에서 노동벌이를 하며 어렵사리 생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일본의 연상의 여인 '사토치즈(佐藤千鶴)'와 사랑에 빠진다. 둘이서 만나는 장소는 한적한 동굴, 아니면 소나무 숲-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는 동안 세월이 흘렀고, 날이갈수록 그들의 사랑은 깊이를 더해갔다.

두 번째 건너는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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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해협의 검은 물결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한국이 해방의 날을 맞는다. 하시근은 이미 배가 부른 일본 여인을 대동하고 시모노세키(下關)에서 가까스로 고국에 돌아가는 배를 탄다. 검푸른 대한해협의  물결은 여전히 출렁거렸다.

'그립고, 그립던 고향-'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아이고, 내 아들 살아왔구나!"면서 눈물을 쏟는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아들을 따라온 한 여인을 보고 주춤한다. 직감적으로 일본 여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형은 두 눈을 부릅뜨고 호령한다.

"너, 이놈아! 우리 집안이 일본에 의해 그토록 핍박을 받았는데도, 일본 년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다니..."

하시근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이웃집 할아버지 댁에서 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아이가 태어난다.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던 어느 날. 하시근은 경찰에 잡혀간다. 한국인이면서 일본 사람보다 더 악랄하게 굴었던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는데, 살인자가 바로 하시근이라고 지목됐던 것이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자신의 잘못도 없이 이리저리 붙들려 다니는 기구한 운명-

하시근이 경찰서에 잡혀있는 동안, 일본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이 와서 아이와 함께 일본으로 데려간다. 경찰서에서 풀려나와 집에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는 정적만이 감돈다. 하시근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한다(계속).

입력 :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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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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