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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라(1)'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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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발발한지 올해로 420년이 됐다. 어언 7주갑이다. 60년 주기가 7번이나 반복됐던 것이다. 8주갑은 2072년. 60년 후 한일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그 때도 양국 관계는 빛바랜 오선지에 되돌이표를 그리고 있을까?

아무튼, 임진왜란 발발 7주갑을 맞아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통제사 행렬, 군점(軍點) 재현과 한산해전 재현, 거북보트 노 젓기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7주갑의 의미를 더했다.

1592년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대장으로 한 18,000 병력이 부산 성(城)을 공격한 이후 단 숨(60일)에 개성과 평양을 함락 시켰다. 그러나,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수군에 의해 보급로가 차단되자 왜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李舜臣)!

그가 없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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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네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이순신 암살의 시작-

<일본의 천하통일을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명(明)나라 정복의 야망을 품고 20만 명이라는 대군을 출동시켜 조선으로 출발했다. 바로 1592년(壬辰) 4월의 일이다. 파죽지세로 진격한 왜군(倭軍)은 순식간에 서울을 거쳐 바로 평양까지 점령했다. 그러나 해전에서만은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에게 연전연패를 당해 제해권(制海權)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후 3년여에 걸친 강화(講和)의 교섭은 끝내 결렬되고, '히데요시(秀吉)'는 재침공을 명한다.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의 시작이다....정유재란 때 왜군을 맞이해야 할 조선의 수군 중에는 명장 이순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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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라'
일본에서 활기 넘치는 전기작가(傳奇作家)로 주목받고 있는 '아라야마 토루(荒山徹, 51)'의 소설 <이순신을 암살하라/ 세창미디어>는 이렇게 전개된다. 작가는 신문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재일교포 지문날인 거부 사건' 취재를 계기로 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내친김에 한국 유학까지 했다.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라>를 쓰기 위해서다.

일본인으로써 이순신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아라야마 토루(荒山徹)'- 그의 소설은 이순신 암살을 극적으로 엮었다.

과연 이순신을 암살하려고 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백의종군 중에 처치해야'

"원균이 전사한 지금, 이순신을 백의종군에서 풀어 삼도 수군통제사로 복귀시키는 일이야말로 급선무라고 사료되옵니다."

"소신도 영의정의 생각과 같사옵니다. 성상께옵서는 무엇보다도 순신의 복귀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엎드려 청하나이다."

류성룡과 정탁이 선조대왕께 이순신의 복귀를 제청하는 말이다. 그러나, 윤두수는 유성룡의 간절한 어조와는 정반대로 답한다.

"이순신의 복귀보다는 명나라 수군의 도움을 요청함이 적절하다고 사료되옵니다."

선조대왕은 류성룡과 정탁의 간절한 주청을 외면하고, 윤두수의 의견에 동조한다. 요즈음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과 흡사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 국익보다는 세력 다툼에 목을 매는 대신들-. 나라의 안위는 뒷전이고,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반대파'라는 명분으로 그들의 기용을 막는 한심한 사람들이다. 거기에 지도자의 편견까지 가세하니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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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이순신 장군의 일기에 쓰여 있는 대로 "이 나라 조정 대신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에 수긍이 간다.

그 순간 일본의 암살단은 이순신 제거를 위한 계획을 짠다. 얼마나 조급한 순간 이런가.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일 때 처치하는 것이 이상적이니까요."

"고작해야 10일입니다. 짧은 기간에 이순신에게 접근해 처리해야 합니다."

'고케쓰 요리후사', '다테즈 주이치로' 등 이순신 암살자들이 나눈 대화다.

"수하가 필요한 모양이군. 몇 명이나?"

"30명이면 족합니다."

"아니야. 50명으로 해. '미쿠라 효코(御藏兵庫)'를 붙이지-"

'미쿠라 효코(御藏兵庫)'는 '고케쓰'가 키운 부장으로 50명으로 구성된 암살부대를 지휘하고 있다. 이순신이 통제사 복귀 어명을 받기 전에 거기서 처리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순신은 전라도 남안의 어딘가에 정박해 있는 13척 전선이 있는 곳을 향해 출발 할 것이고, 자신들은 그 뒤를 따르기로 한다. 그들은 이순신의 목을 담을 상자까지 준비한다.

고려주사이순신지수(高麗舟師李舜臣之首)

길목마다 암살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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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하나는 지금 우리들이 가고 있는 북쪽 초계로부터의 길, 또 하나는 남쪽인 노량으로부터의 길."

"황여일의 말에 의하면 '노량에 13척의 배(船)가 이순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 마지막 하나는 서쪽 순천(順天)으로부터의 길이고......"

이순신의 암살은 전쟁광인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의 획책이고, 이순신의 암살을 막으려는 세력은 천주교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역할로 양분된다. 이 순간에도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복귀에 대한 논쟁을 거듭한다. 그런 가운데 민초들은 왜군의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한다.

'이 나라의 운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어두운 먹구름만 하늘을 뒤덮을 뿐이다. 암살자 일행은 숲 속에서 이순신이 다가올 길목을 지킨다. 다시 소설 속을 들여다본다.

"단성의 산속에서는 암살자 일행이 최후의 휴식을 취한다. 떠오르기 시작한 은빛 달은 온 하늘의 별을 잘게 부수어 섞어놓아 거리는 별빛으로 밝게 빛난다. 길옆의 숲에서 '미쿠라 효고(御藏兵庫)'의 부하들이 팔짱을 끼고 나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시시각각 위험 속으로 빠져드는 이순신-. 참으로 긴박한 순간이 거듭되고 있다(계속).

입력 : 201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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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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