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름도 더위와 폭우가 교차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래도 후쿠오카(福岡)의 밤은 야마가사(山笠)의 축제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골목길 마다 잔치가 벌어졌다.
필자 역시 일본 친구들과 어울려 나카스(中州)의 허름한 이자카야(居酒屋)에서 싸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 담소를 나눴다. 나카스(中州)의 나카가와(那珂川) 위에는 하카다(博多)와 후쿠오카(福岡)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가 많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통해 하카다와 후쿠오카를 넘나든다. 한 때 일본 경기가 좋을 때는 나카스(中州)의 밤은 불야성이었다. 그 때 보다는 못하지만, 나카스는 아직도 일본 전역을 통틀어서 비교적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지켜내고 있었다.
어둠이 물들기 시작한 나카가와 |
필자가 나카스 다리를 건너 번화가인 텐진(天津)으로 진출하려는 순간 교량 입구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감미로운 선율은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휘황찬란한 네온을 배경으로 밤의 정취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一生顯命 修行中
음악이 없는 세상- 참으로 무미건조한 삶이리라. 색소폰 연주자가 프로는 아니었으나 진지한 모습은 수도자의 길을 걷는 듯했다. 연주자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잇쇼켄메이 수행중 |
<一生顯命 修行中>
일본 사람들은 '잇쇼켄메이(一生顯命)'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일을 할 때나 공부를 할 때, 운동을 할 때도 당연히 '잇쇼켄메이(一生顯命)'가 등장한다. 이를 우리말로 직역을 하면 '목숨을 건다'는 뜻이다. '공부나 업무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말이나, 그만큼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잇쇼켄메이(一生顯命)'의 어원을 거슬러 가면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92-1333년 일본의 봉건주의의 기초가 확립된 시기)에 영주(領主)가 기거하던 장(莊)을 바탕으로 '사무라이(侍)가 주인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했다'는 잇쇼켄메이(一莊顯命)'가 있었다. 후일 장소(所)를 의미하는 '잇쇼켄메이(一所顯命)'로 변화됐으며,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잇쇼켄메이(一生顯命)'로 자리잡았다.
"가마쿠라 시대에 영주의 땅을 목숨 걸고 지킨다는 의미의 '잇쇼켄메이(一所顯命)'가 훗날 '잇쇼켄메이(一生顯命)'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와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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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연주자의 진지한 모습 |
아무튼, 이 색소폰 연주자가 '목숨까지 걸지는 않더라도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면 될 듯싶다. 필자는 수도자의 결의(修行)를 다지고 있는 그의 모습에 감동하여 작은 금액을 쾌척(?)함과 동시에 노래 한곡을 신청했다. 곡명은 색소폰 연주에 잘 어울리는 마이웨이(My Way)였다.
“And now, the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My friend, I'll say it clear.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다리 위에서 더위를 식히던 사람들로부터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음악과 춤이 흐르는 다리
이 때 10m쯤 떨어진 곳에서 5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색소폰 연주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면서도 맵시 있는 율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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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이 |
"이 아이가 춤을 좋아해요. 커서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아직 어리지만 그런대로 '잇쇼켄메이(一生顯命)' 연습하고 있습니다."
빙긋이 웃고 있던 아이 어머니의 말이다. 필자는 '잇쇼켄메이(一生顯命)' 춤을 추는 아이가 너무나 깜찍하고 기특해서 상품(?)을 하나 주었다. 일본 친구에게 주려던 김 한 세트였다. 아이보다도 그녀의 어머니가 더 좋아했다.
"아! 감사합니다. 이토록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너무나 좋은 춤을 무료로 감상하지 않았습니까?"
"몇 년 전 한국에서 김을 사와서 맛있게 먹은 적이 있습니다. 참기름을 발라서 구운 김이 너무나 고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선물이나 '기분 좋은 마음으로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저 병원이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 Hibari, 1937-1989)' 씨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자주 입원했던 '사이세이카이(済生会)'병원 입니다."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 씨가 입원한 것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병원 |
"아! 그렇습니까?"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자신의 노래처럼, 이 나카가와(那珂川)의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봤겠군요."
<아무것도 모른 채/ 이 길을 걸어 왔네/ 길고도 좁은 이 길을.....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어느새 세월은 흘렀네/ 아∼아! 흐르는 강물처럼....>
필자는 '미소라 히바리(美空 Hibari)' 씨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그래서 하루가 또 하나의 배움이었다.
사람은 살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력이 없이는 무엇하나 똑바로 잘 할 수가 없다.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잇쇼켄메이(一生顯命)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카스를 떠나 텐진 쪽으로 다리를 건너왔는데도 색소폰 소리가 가늘게 강물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