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성(城)의 국화 대회를 다녀오다
나고야의 가을이 무르익었다. 필자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면서 길을 걸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들도 꽃 송이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를 읖조렸다.
나고야 성의 역사와 부부 이야기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는 1609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의 세력들을 막기 위해서 나고야(名古屋) 성(城)을 세우기 시작했다. 다음해인 1610년 ‘이에야스(家康)’는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등 성(城) 쌓기 전문가들을 불러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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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둘러싸인 나고야 성 |
초대 번주(藩主)는 ‘이에야스’의 아홉 번째의 아들 ‘요시나오(義直)’였다. 그의 부인은 ‘하루히메(春姬)’. 두 사람의 결혼식이 나고야의 호화 웨딩의 뿌리이기도 하다. 매년 4월 ‘하루히메 길(道)’이라는 그 당시의 결혼식을 재현한 이벤트가 나고야 성 주변에서 행해지고 있다. 나고야 성은 봄철 벚꽃이 아름답지만, 저 멀리 단풍 숲 위에 우뚝 선 천수각도 멋이 있었다.
성(城) 입구에서 국화꽃으로 단장한 두 부부를 만났다. 초대 번주 ‘요시나오’와 그의 정실 ‘하루히메’였다. 그들(인형)의 옷은 생화였다. 불현 듯, 우리의 유행가 <국화꽃 당신>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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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나오와 하루히메 |
<국화꽃 향기에 취해 달콤한 사랑에 취해/ 밤이 새도록 저 별은 나의별/ 저 별은 너의 별/ 꿈을 꾸듯 사랑했는데..>
‘요시나오’와 그의 정실 ‘하루히메’는 ‘아-얄미운 국화꽃 당신은 아니었을까?’
71년 째 이어지는 국화(菊花) 대회 겸 전시회
성(城)안에 들어서자 크고 작은 국화꽃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 정도로 키우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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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작품들 |
나고야 최대급의 국화 대회는 대국(大菊)·산국(山菊)·절화(切花) 등 약 450 점이 전시돼 있었다. 10월 6일부터 개최된 전시회는 11월 23일 종료되며, 나고야 성에 입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더불어, 국화 재배에 대한 무료 상담도 한다.
안내를 하는 시청 직원 나카무라(中村·46)씨는 이 대회는 올해도 71년 째 이어지는 행사라고 자랑했다.
“이 전시회는 올해로 71년이 됐습니다. 나고야 최대 이벤트입니다. 성에 입장하는 사람은 무료 관람합니다.”
일본인에 있어서의 국화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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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출품작 |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의 저서 <국화와 칼>에 담긴 글을 빌어본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에 관한 책을 쓸 경우...동시에 이 국민이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는 사실을...>
적절한 표현이다.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일본에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자란 일본인들을 많이 접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 것’을 알아냈다. 그 후 도서관을 뒤지면서 연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저서<국화와 칼>을 완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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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조 출품작 |
일본인 스스로는 국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언론인 이토 슌이치(伊藤俊一·65)씨의 말을 들어봤다.
“일본인들은 벚꽂과 국화를 다 좋아합니다. 벚꽃개화시기에 대해서는 뉴스가 많지만 국화에 대한 뉴스는 없습니다. 국화는 일년내내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라가 법적으로 정한 국화(國花)는 없습니다"
이토(伊藤)씨는 “벚꽃을 더 좋아하는가?, 국화를 좋아하는가?의 질문에 의미가 없다”고 했다.
우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일본인들의 국화(國花)는 다른 형태로 각자의 가슴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