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생! 이선생 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같이 생각해 보시지 않으실래요?"
이우환(李禹煥) 미술관은 후쿠타케(福武) 서점의 장남 '후쿠타케 소우이치로(福武總一郞, 1945- ) 씨'의 제안으로 추진됐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이우환 개인전(주제: 울림)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다. 그 곳에서 이우환 선생의 작품을 보고 감동한 '후쿠타케(福武)' 씨가 자발적으로 일본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에 이우환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을 제안했다. 거기에 이우환의 오랜 친구인 건축가 '안도다다오(安藤忠雄)' 씨가 가세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생각의 반란(?)'들이다.
이우환미술관 입구 |
아트(Art)의 낙원(樂園)
1916년 농어업의 부진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나오시마(直島)는 미쓰비시(三菱) 합자 회사와 협의해 구리(銅)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오히려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다. 구리 제련소에서 발생한 아황산가스는 산의 나무들을 고사(枯死)시키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잘살아보려는 경제적 판단이 섬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만 것이다. 미쓰비시(三菱) 社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비의 현대화 등 모든 수단을 강구했으나 허사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 구리의 국제 가격 하락으로 제련 사업 자체가 흔들려서 나오시마(直島) 제련소는 재활용 사업 등 금속 제련 이외의 신규 사업을 모색해야 했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섬을 관광 리조트의 마을로 변모시키는 것을 계획했다. 그러나, 관광 리조트 계획도 국립공원이라는 제한적 개발의 한계와 경기 침체로 확대되지 못했다. 결국, 미술관을 필두로 '예술적 섬'으로 승화시키는 운명적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 모두는 후쿠타케(福武) 씨의 발상에서 비롯됐다. 1986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고향을 찾은 후쿠타케(福武) 씨는 도쿄를 떠나 고향인 오카야마(岡山)에 돌아와 주변의 섬들을 돌아보면서 자연과 친해졌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지만, 도쿄에 있을 때의 자극 · 흥분 · 긴장 · 경쟁 · 정보 · 오락 등이 없는 세토(瀨戶) 내해의 섬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했다.('세토 내해의 아트 낙원').
현대미술과 자연과 역사-
1992년 '베넷세(Benesse) 하우스'의 박물관이 완성됐고, 2005년 '지중 미술관', 2010년 '이우환(李禹煥) 미술관'이 개관됐다
나오시마 해변, 멀리 구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보인다. |
'베넷세(Benesse) 하우스'
필자는 이우환 미술관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술관 내부보다도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유인즉, 자연환경이 너무 좋아서다. 번잡한 서울에서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자체가 행복하고 감사했다. 일행들도 나오시마(直島)의 '여기의 지금'에 대만족했다.
'섬을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구상(構想)만으로도 대견하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에 옮겼으니 얼마나 훌륭한가. '관 · 민 합동으로 일궈낸 값진 열매다'는 생각을 하면서 '베넷세(Benesse)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세토대교(瀨戶大橋)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저 바닷길이 조선통신사들이 다니던 뱃길입니다. 지난 3월 저 다리 밑을 통과해서 오사카(大阪)까지 간적이 있습니다."
필자는 일행들에게 조선통신사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면서 언덕길을 올랐다. 낮은 언덕길인데도 땀이 주르르 흘렀다. 언덕을 오를수록 다리는 고달팠으나 눈은 행복했다. 자연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고 시원했기 때문이다.
'베넷세(Benesse) 하우스'의 입구도 예사롭지 않았다. 입구 통로의 왼쪽에는 수목들과 담쟁이넝쿨들이 얽혀져 있는 사이사이에 이름 모를 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성벽 같은 담이 길게 뻗어있었다. 로비에는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입장권을 구매하는 줄이 다시 길게 이어졌다.
베넷세 하우스 |
'선(善)'의 '존재'
'베넷세(Benesse)'는 '선(善)'의 의미인 'Bene'와 '존재(存在)'의 의미인 'Esse'의 합성어이다. 자연 · 건축 · 아트(Art)의 공생(共生)이라는 콘셉으로 호텔과 미술관의 일체화를 모토로 하고 있는 '선(善)'의 '존재'인 것이다. 뮤지엄(Museum), 오벌(Oval), 파크(Park), 비치(Beach) 등 4개동으로 이루어진 '베넷세(Benesse) 하우스'는 모두 '안도다다오(安藤忠雄)' 씨의 설계에 의해서 탄생된 건축물이다.
필자 일행은 1인당 입장료 1000엔(14,500원) 씩을 내고 다시 좁은 통로를 따라 내부로 들어섰다. 미술관 내부는 모두 바람과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려 있었다. 그림을 보다가 고개를 조금만 틀면 세토(瀨戶) 내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필자는 카메라에 손이 저절로 갔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미술관의 분위기가 너무나 엄숙했기 때문이다. 지하 1층에서부터 지상 2층에 이르기까지 세계 유명작가 그림이 바닥과 벽면에 가득했다. 특히, 앤디 워홀(Andy Warhol),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리처드 롱(Richard Long) 등의 작품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오후 2시 20분에 돌아가는 배(船)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유로 필자는 그림을 보는 것보다 시계를 쳐다보는 것이 잦았다.
베넷세 하우스의 천정- |
'베넷세(Benesse) 하우스' 입구 버스 정류장에는 15분 간격으로 셔틀버스가 온다고 했다. 부두로 가려면 셔틀 버스를 타고 지정된 장소에 가서 섬에서 운영하는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셔틀버스는 그야말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다시 15분을 기다렸으나 상황은 동일했다. 과거 만원버스를 타던 실력을 총동원해서 몸을 실었다. 한국인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버스는 고갯길을 돌아 내려가자 모래알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비치(Beach)가 펼쳐졌다. 해안 끝자락에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1929- )'의 작품 '노란 호박'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또 다시 시간 타령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진정한 예술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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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에 있는 구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
나오시마(直島)에는 우리처럼 바닷가 횟집이나 영양탕 등의 식당은 하나도 없다. 지정된 장소마다 깔끔한 레스토랑과 카페뿐이다. 고픈 배를 움켜지면서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미야우라(宮浦) 부두로 내려갔다.
승선 한 시간 전 쯤 인 오후 두 시. 부두의 레스토랑에서 이 지역의 특산물인 사누키(讚崎) 우동을 주문했다. 시장이 반찬이라. 맛이 꿀맛이었다. 배에 올라서 바라보니 섬 입구에 버티고 있는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1929- )'의 '빨간 호박'이 태양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진정한 예술의 섬이구나.'
배는 어김없이 큰 몸집을 틀면서 다카마쓰(高松)로 향했다. 배가 바다를 가르면서 일으키는 하얀 파도가 유난히 격렬했다. 필자는 수박 겉핥기 식 여행이 아쉬웠다. '또다시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욕구(欲求)가 파도처럼 격렬하게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