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성(松山城)의 구경을 마치고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의 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 앞에서 여고생들이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었기에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역사적 기념관에서 울려 퍼지는 현대 음악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하이쿠 포스트 |
필자 일행은 기념관 방문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도고온천(道後溫泉) 입구에서 택시운전사 마쓰모토(松本) 씨와 작별을 고했다.
필자는 택시 운전사와의 작별이 못내 아쉬웠으나,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미터기의 요금이 여행의 재미요소를 빼앗는다'는 일행들의 건의를 과감히 수용했다. 결국 택시 운전사와의 3시간 고용 계약은 두 시간으로 단축되고 말았다. 택시 운전사를 과감히 해고(?) 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수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때마침 연휴라서 음식점마다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필자 일행은 바로 음식이 나올 듯한 맥주집으로 들어섰다. 다양한 맥주와 안주가 즐비한 맥주집은 비교적 손님이 적었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도 시원한 생맥주로 목을 축였다.
"결혼 25주년을 축하합니다. 건배!"
백로(白鷺)의 전설
도고온천(道後溫泉)은 일본 최고(最古)의 온천으로 3,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온천에는 백로(白鷺)와 얽힌 전설이 온천수처럼 뜨겁게 흐르고 있다. 아득한 옛날에 다리를 다친 백로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온천물에 발을 담그자 상처가 나아 유유히 날아간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온천의 효능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래서인지 도고온천(道後溫泉) 본관 건물 지붕 끝에도 백로의 형상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도고온천 본관의 모습 |
필자는 입욕권을 사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광객들의 행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여행 가방을 사무실 입구 통로에 맡기고 작은 타월 하나씩을 빌려서(30엔)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뒤틀리고, 유리창이 뿌옇게 빛을 잃고 있었으나, 역사의 냄새는 짙게 배어 있었다. 탕(湯) 안으로 들어서자 현대식 사우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한 목욕탕이었다. 필자가 들어간 온천은 '신(神)의 탕(湯)'이었다. 탕(湯)의 벽면에는 온천이 시작된 전설과 옥석(玉石)의 신화가 도자기 판화로 그려져 있었다.
특히, 저명한 문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다는 도고온천(道後溫泉)-. 뭐니 뭐니 해도 유명세를 탄 것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소설 <도련님, 坊つちゃん>의 덕분일 것이다. 탕(湯) 속에 앉아서 눈을 감고 <도련님>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그 시절 유일한 즐거움은 온천욕이었다는 소설의 한 대목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나는 이곳에 온 후부터 날마다 온천에 갔다. 다른 곳은 다 도쿄보다 못해도 온천만은 훌륭했다. 그래서 이곳에 있을 때 실컷 온천이나 즐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저녁 식사 전에 운동 삼아 걸어가곤 했다.>
마쓰야마(松山) 중학교의 영어 교사
<햇볕이 쨍쨍 내리쬐자 바닷물이 유난히 빛났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났다. 승무원에게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물어보자, 여기 '마쓰야마(松山)'에서 가까운 '미쓰하마(三津浜)'에서 내리면 된단다. 한 눈으로 보니 오오모리(大森)만한 작은 어촌이었다.>
소세키(漱石)의 소설 <도련님>의 도입 부분이다. 마쓰야마(松山)가 소설 <도련님>의 실제 무대라는 점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개구쟁이 주인공이 이곳 마쓰야마 중학교의 수학교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소설의 본격적인 스토리(story)가 전개된다.
"시고쿠(四國) 지방의 중학교에서 수학 교사가 필요하다고 하네. 월급은 40엔인데 근무할 생각이 있는지?"
봇장 방의 내부 |
도련님(坊つちゃん)의 방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님이 이 방에서 쉬어가곤 했답니다. 그가 마쓰야마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이 땅을 밟은 시기는 메이지 28년(1896년) 4월- 그 때 도고온천은 나무 향기가 물씬 풍기는 신축 건물이었습니다."
도고온천 사무소 직원 '고모다 모토키(古茂田幹)' 씨의 설명이다. 이 온천의 내방객은 가장 많을 때가 하루에 7,000명 정도라고 했다. 필자가 방문한 날(5/3)은 약 6,000명의 손님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그 당시의 신축 온천(溫泉)의 상황을 소설 속에서 더듬어 본다.
<온천은 새로 지은 3층 건물로 고급 탕에서는 8전을 내면 유카타도 빌려주고 등도 밀어 주었다. 게다가 예쁜 아가씨가 차(茶)까지 날라 준다. 나는 항상 고급 탕을 이용했다.>
3층 방은 건물의 코너로써 유일하게 요즈음 같은 난간(베란다)이 있었다. '고모다(古茂田)‘ 씨는 "지금은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그 당시에는 낮은 건물뿐이었습니다. 저 쪽 시장 통은 옛날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신병 치료차 고향을 찾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만나 50여 일 동안 함께 지냈다. '시키(子規)'로부터 영향을 받은 문학론과 하이쿠(俳句)는 그가 일개 영어 교사에서 대문호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 소세키(漱石)는 친구를 잘 만나서 자신의 운명을 새로이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다. '도련님(坊つちゃん)의 방'은 소세키(漱石)의 딸에 의해서 훗날 명명된 것이라고 했다.
봇장방에서 대화하는 노부부 |
"도련님! 제게 소원이 하나 있어요. 제가 죽거든 도련님이 잘 다니시는 절에 묻어 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이 오시는 것만을 기다릴게요."
필자가 말을 걸려다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너무나 진지해서 그만두고 말았다. '도련님의 방'에서 나오자 입욕자의 수는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노부부의 대화를 다시금 새기면서 온천을 나섰다.
스토리(story)가 흐르는 온천-
온천 아래 골목 사이에는 맑은 개울물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개울은 깊지 않았으나 신경질적으로 빠르게 흐르며 반짝반짝 거렸다"는 <도련님>의 한 문장처럼.....멀리서 봇장 열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역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소세키(漱石)의 혼(魂)이 서려있는 마쓰야마(松山)의 하늘이 더욱 높아졌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