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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서울 불바다' 발언의 날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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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전망대에서 기념촬영-좌로부터 이치무라 씨, 이토 씨, 미야자키

 지난 12일 오후. 비에 젖은 자유로는 안개가 자욱했다. 강줄기를 따라 길게 늘어선 한강변 철조망이 유난히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듯 했다. 필자는 막걸리 수입을 위한 협의차 서울에 온 '이치무라 사카에(市村栄·50)' 씨, '미야자키 게이지(宮崎敬士·45)' 씨, '이토 슌이치(伊藤俊一·57)' 씨를 태우고 자유로를 질주했다. '15년 만에 서울에 왔다'는 '이치무라(市村)' 씨의 제안으로 제3땅굴 견학을 위해 북으로 달렸던 것이다. 일산을 지나자 더욱 또렷해진 촘촘한 철조망을 보고, 일본인들은 "분단의 현실이 실감 나는 군요"라고 말했다. 불과 40분 쯤 달렸는데도 복잡한 서울 거리와 너무나 차이가 나는 한적한 농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북한이 서울과 너무나 가깝습니다. 이토록 가까울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그들이 쏟아낸 말이다.

도라산(都羅山) 전망대

도라산전망대

 하얀 두루미 몇 마리가 날개 짓을 하며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소로(小路)를 지나 임진각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여행객 행렬에 동참했다. 비가 내리는 날인데도 국내외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다.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서 가까스로 마지막 버스표(15:30)를 손에 넣었다. 이곳의 관광은 개인차량으로는 출입이 안 되며, 셔틀버스 또는 기차를 이용하거나 단체인 경우 관광버스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특별한 상식도 없던 필자는 땀을 흘리면서 이들을 안내할 채비를 했다. 필자 일행이 선택한 관광은 A코스였다. 임진각 출발하여 도라산 전망대를 거쳐 제3땅굴(DMZ 영상관), 도라산역, 통일촌직판장을 거쳐 다시 임진각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시간은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버스에 오르자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왁자지껄했다. 중국인 단체가 24명이나 탔기 때문이다.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3개 국어가 불나방처럼 혼란스럽게 날아다녔다. 중국인 1명이 차를 타지 않아서 시간이 지체되자 혼란스러움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얼굴이 파래진 가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결국 포기했다. 버스는 삼엄한 초소 앞에서 다시 인원 점검을 했다.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도 처음 방문한 필자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초소 입구에서 사진을 찍었다. 헌병 한 명이 필자에게 다가와 찍은 사진을 지우라고 했다. 동석한 일본인들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미소 속에 긴장감이 들어 있었다.
 군부대 옆 산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는 버스가 북한으로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내리자 푸른 숲과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 아래가 바로 북한 땅이었다. 도라산 전망대는 DMZ 안에 위치해 있어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남측 최북단의 관광지다. 필자의 질문을 받은 헌병 한 명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날씨가 좋은 날은 개성공단과 개성시내 그리고, 김일성 동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철조망 너머 저기가 바로 북한 땅입니다."
"총길이 248㎞이며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쪽 2㎞ 지점이 남방한계선, 북쪽 2㎞ 지점이 북방한계선입니다. 저기 보이는 철조망이 바로 남방한계선입니다"는 필자의 설명을 듣던 일본인들은 북한 땅이 목전(目前)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도쿄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의 거리에 이러한 분단의 현장이 있다니...."
천안함 사건 때문인지 외국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모두가 분단의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 허용된 선(線)에서만 사진을 찍으라는 군인의 안내를 받아 일본인들은 북한 하늘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모한 제3땅굴

제3땅굴입구에서-이치무라 씨(좌)와 이토 씨

 셔틀 버스는 다시 제3땅굴은 향해 철조망 길을 달렸다. 땅굴은 도라산 전망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근거리에 있었다. 우리 일행은 카메라 등 소지품을 개인별 사물함에 넣고 땅굴 입구에서 긴 호흡을 했다. 안내 직원은 '지하 73m까지 11도의 경사를 따라 내려가는 비탈길'이라서 '고혈압환자나 노약자는 관람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노란 헬멧을 썼다. 입구의 안내판에는 '제3땅굴은 1978년 10월 17일 판문점 남방 4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이 땅굴은 그 위치가 서울에서 불과 52km거리에 있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제2땅굴과 비슷하나, 서울로 침투하는데 있어서는 제1.2땅굴보다 훨씬 위협적인 것이었다"는 안내직원의 설명이 있었다.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km, 통일촌 민가에서 3.5km 밖에 되지 않아 서울에서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다.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에 위치한 제3땅굴은 북한이 남한으로 침투하기 위한 것으로 폭 2m, 높이 2m이며, 총길이가 1,635m나 된다. 남방 한계선까지 거리는 435m로서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땅굴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본인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땅굴에는 2002년부터 미니 열차형의 셔틀승강기가 설치되었으나, 관람객이 많아 2004년 6월. 3m의 도보 관람로를 만들어 많은 관광객의 수용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필자 일행은 시간대가 맞지 않아 도보 관람을 하게 되었다.
 터널 비탈길을 358m 내려가자 북한이 판 땅굴과 마주쳤다. 울퉁불퉁한 바위돌이 튀어나온 동굴이었다. 노란 헬멧이 기능을 발휘했다. 땅굴의 265m 지점에 차단벽을 설치하여 그 이상은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목이 말라 북한이 판 땅굴 입구에 설치된 우물물을 마셨다. 이름 하여 DMZ샘물이라고 했다.
"철분이 무척 많군요."
술 전문가 '이치무라 사카에(市村栄)' 씨의 말이다. 그의 감각적 미각은 과히 천재적이다. 그의 혀끝에는 센서가 달려 있는 듯 신기하게 술 맛을 알아낸다. 그는 전날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마시면서 함유된 성분을 맞추었다. 이치무라(市村) 씨는 그 중에서 일본인의 입맛에 어울리는 막걸리를 몇 개 골랐다. 조만간 수출 계약이 성사 될 듯싶다.
지하 73m의 땅속 동굴은 숨이 찼다.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이 생각나는 시점이었다.
"이토록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이유가 이 땅굴을 통해 병력을 이동하여 일시에 서울을 공략한다는 것이었습니까? 같은 민족끼리 이럴 수가 있습니까?"
술 전문가들을 서울에 데려온 필자의 친구 '이토 슌이치(伊藤俊一)' 씨의 질문이었다. '북한과 동일민족의 개념을 논할 수 없다'는 필자의 말을 그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인데도.......?'
이들은 모두 개인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어서 일본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땅굴 답사를 마치고 다시 입구로 올라오는 길은 숨이 헉헉 찼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하는 이토(伊藤) 씨가 앞장을 섰다. 올라오는 길은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필자는 담당 직원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입구에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땅굴 구경 후 DMZ 영상관에서 영상물을 관람했다. 일본인들은 영상물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했다. 비무장지대의 서식동물과 식물을 소개하는 등 자연에 비중을 많이 두어 '진정한 안보의식을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관광객들에게 이러한 영상물이나 유인물을 전달한다. 그런데 내용은 물론이고, 외국어 표기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번역의 오류로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절실하다. '만드는 사람의 주관적 생각에서가 아니라,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다.
 영상물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필자의 휴대폰에 문자가 떴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북한의 '협박적인 발언'에 대한 긴급 뉴스였다. 필자의 설명을 들은 일본인들은 "한국이 월드컵 축구에 빠져있는 동안 북한이 기습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했다.

"소주 속에 독(毒)이 들어 있지 않을 까요?"

 DMZ관광은 도라산역과 통일촌에서 끝이 났다. 우리는 통일촌 특산물 매장에서 몇 가지 물품을 샀다. 일본인들은 검은 쌀을 샀고, 필자는 북한소주를 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잔씩 마셔 보기 위해서였다.
"소주 속에 독(毒)이 들어 있지 않을 까요?"
비록 농담이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필자가 웃어넘기자 일본인들은 '작금의 상황으로 보면 만의 하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만사 불여튼튼 일본인다운 발상이다.
북한소주는 반 잔 정도 맛만 보고 버렸다. 맛은 고사하고 냄새부터 한국 소주와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술맛은 그 나라의 경제적·문화적 수준과 비례합니다."
'이치무라 사카에(市村栄)' 씨의 통렬한 지적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함성만으로도 한국과 그리스 전의 스코어를 읽을 수 있던 밤이었다. '서울 불바다'의 발언이 16년 만에 다시 불거진 날. 온 국민의 눈과 귀는 온통 남아공에 날아가 있었다.
 북한에 대한 경계심과 불안감은 '우리보다 일본인들이 몇 걸음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비에 젖은 하루였다.

도라산역에서 사진촬영에 열중하는 일본인(미야자키 씨와 이치무라 씨)

입력 : 20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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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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