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작업의 모습
된장과 청국장이 우리의 고유 식품이지만, 일본에도 용어만 다를 뿐 우리와 유사한 발효 식품인 된장과 청국장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일본의 된장은 미소(味噲)라고 하고 청국장은 낫토(納豆)라고 한다. 아무래도 된장은 한국적이고 낫토는 일본적인 냄새가 난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된장군과 낫토짱의 결혼 전쟁'이라는 짧게 지나간 TV드라마(2부작)도 있었다.
대학원 선후배 연구원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 한국과 일본의 젊은 남녀가 자신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양쪽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양가 아버지들이 가진 과거의 앙금을 알게 되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 남녀의 애절하면서도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를 코믹한 터치로 그려 낸 한일 간의 로맨스다. 완고한 아버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쪽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여 결국 결혼에 골인하는 단막극이다.
금번의 칼럼은 한국이 아닌 일본 된장(味噲)- 그것도 일본의 나고야(名古屋) 지방에서 나는 전통적인 '핫초미소(八丁味噲)'를 들여다본다.
핫초미소(八丁味噲)의 유래와 특징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태어난 생가(生家) 오카자키 성(岡崎城)을 안내한 '오오모리 미키히코(大森幹彦 ․ 62)' 씨. '후나하시 미치아키(舟橋三千秋 ․ 61)' 씨. '아카키 신이치로(赤木紳一郞 ․ 50)' 씨. '이토 슌이치(伊藤俊一 ․ 56)' 씨는 오카자키(岡崎)의 또 다른 명물을 필자에게 소개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된장 공장이다. 오카자키 성(岡崎城)으로부터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핫초미소(八丁味噲)라는 곳이었다. 핫초미소는 작은 내(川)와 고가도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필자가 핫초미소(八丁味噲)가 쌀이나 보리의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대두(大豆: 콩)만 사용해서 만든 붉은색의 전통적 된장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이곳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핫초(八丁)라는 말이 재미있었다. 일본에는 옛날에 초(丁)라는 거리단위가 있었는데, 1초(丁)는 109m의 거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핫초(八丁)는 어떤 의미일까?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태어난 오카자키 성(岡崎城)으로부터 이 마을까지의 거리가 872m인 8초(八丁)인 것을 이유로 이 마을의 이름이 핫초무라(八丁村)로 명명되었고, 된장의 이름 또한 핫초미소(八丁味噲)가 되었다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모든 길은 이에야스(家康)'로 통했다.
어찌했던 핫초미소(八丁味噲)는 1645년 '하야카와 큐우에몬(早川久右衛門)'이 이 마을에서 된장을 만들어 팔았던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 후 이 핫초미소(八丁味噲)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360년 동안 19대를 이어오면서 된장을 만들고 있다. 이 회사의 마크가 '久' 인 것도 '큐우에몬(久右衛門)'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핫초미소(八丁味噲)는 콩된장으로 쌀과 보리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숙성시키는데 24개월 이상이라는 긴 기간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숙성을 시키는 과정도 조건이 까다롭다. 온도관리를 기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천연 그대로라고 한다. 오카자키(岡崎)의 기후와 풍토가 질 좋은 된장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것이다.
일본 된장은 색깔로 구분하는 방법과 사용되는 재료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색깔로는 적갈색과 황백색이 있는데, 콩을 삶아서 만드는 것이 '시로미소(白味噲)'로 불리는 황백색 된장이고, 콩을 쪄서 만드는 것이 '아카미소(赤味噲)'라는 붉은색 된장이다.
그리고 재료로 구분하는 것은 쌀된장, 보리된장, 콩된장, 혼합된장이 있다. 쌀․보리를 누룩 균으로 발효시켜 콩과 함께 숙성시키는 것이 쌀된장과 보리된장이고, 콩을 직접 발효시키는 것이 콩된장이다. 핫초미소(八丁味噲)는 절갈색 된장이자 콩된장에 해당 되는 것이다.
관광 필수 코스
필자 일행이 도착 한 이후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일본의 각 지역에서 온 대형 버스였다. 일본인들이 그만큼 된장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입구의 건물은 서양식 디자인이었다. 1927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서양식을 모방하여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 공장 건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재였다. 현재도 이 건물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전문 안내원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각자에게 표찰을 하나씩 목에 걸어주었다. 사료관(史料館)으로 쓰이는 건물들은 메이지 시대인 1907년에 건축된 된장 창고를 고쳐서 전통적인 된장의 제조 과정을 그 당시의 형태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사람은 인형으로 만들었지만, 도구와 장비 등의 물품들은 모두 옛날 그대로였다. 콩을 쪘던 시루와 황실에 납품했다는 증명서, 6척 크기의 나무통은 물론 주판, 회계장부, 배달 수레에 이르기 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된장 창고 안에는 된장의 원료를 넣은 나무통들이 가득했다. 된장은 모두 이곳에서 장기간 숙성된다고 했다. 커다란 나무통에는 된장을 넣은 날짜를 적은 표찰이 걸려 있었으며, 그 위에 놓여 있는 돌멩이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이 돌멩이도 인접한 야하기강(失作川)에서 주워온 것이다. 돌은 이 회사의 장인(匠人)들이 하나하나 공들여 쌓은 것이다. 이 돌 탑은 어떠한 지진으로도 무너진 적이 없다고 했다. 안내원 '나루세 마유미(成瀨眞弓․40)' 씨의 말이다.
"된장을 숙성시키기 위해서 쌓은 돌멩이도 기술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동안 어떠한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정교한 장인(匠人)들의 솜씨죠."
그리고 나루세(成瀨) 씨는 한 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지금 저희 회사에서는 중요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야하기콩(失作豆)로 만드는 전통 된장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360년 전의 그 맛을 옛 그대로 복원시키고자 합니다. 앞으로 2년 후에 완성됩니다. 그 때 꼭 오십시오."
우리 모두는 입을 딱 벌렸다. 360년 전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란다. 물론,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아무리 기계화되고 과학적인 기술이 발달된다고 해도 옛사람들의 지혜를 현대인이 다시 배워야 하는 대목이다.
일본 된장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에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를 거쳐서 전해졌다고 한다. 당초의 된장은 일본에서도 된장 그대로 먹었으나, 가마쿠라(鎌倉, 1185-1333) 시대에 오늘과 같은 미소시루(味噌汁)가 탄생했던 것이다.
된장의 효과, 과학적으로 증명
장시간의 사료관 견학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인간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참으로 많았다. 평소에 알고 있던 '된장이 몸에 좋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된장이 필수적인 음식이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핫초미소(八丁味噲)를 소개하는 안내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었다.
"1981년 국립 암센터의 히라야마(平山) 박사가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매일 된장국을 한 그릇씩 먹고 있는 사람과 거의 된장국을 먹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면, 된장국을 먹지 않는 사람은 위암 발생 후 사망률이 48%나 높았습니다."
이 회사가 된장을 팔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번 옳은 조언이다. 전통적으로 된장은 항암 효과는 물론 고혈압, 뇌경색, 뇌졸중 등의 예방에도 효과가 크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견학을 위해 입장할 때 목에 걸어준 표찰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 코스에서 미소시루(味噌汁)를 한 잔 씩 맛보게 함은 물론, 비닐로 잘 포장된 된장 한 덩어리와 교환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를 오카자키(岡崎) 시에서 하기로 했다. 핫초미소(八丁味噲)로 음식을 하는 전문 식당을 찾았다. 4사람이 야구 심판처럼 머리를 맞대고 숙의(熟議)해서 정해진 미소(味噲) 덴가쿠요리(田樂料理) 전문점이었다. '미소 덴가쿠(味噲田樂)'는 두부나 곤약, 가지, 고구마 등을 꼬치에 찔러 유자나 새싹 등의 향을 넣은 된장을 발라 구운 요리다. 이 지역은 붉은 색깔의 핫초미소(八丁味噲)를 발라 구운 덴가쿠요리(田樂料理)가 명물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견학 과정에서 익숙해진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핫초미소(八丁味噲) 그대로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우선적으로 맥주를 주문했다.
"오늘의 공부는 이것으로 마칩시다. 자- 맥주 한잔합시다. 간빠이(乾杯)! 건배(乾杯)!!"
오카자키 성(岡崎城)까지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필자는 일본 친구들과 함께 이에야스의(家康) 고향과 핫초미소(八丁味噲)의 고향에서 하루를 보냈다. 머리위 나무 가지에 걸쳐 있던 태양이 어느새 서쪽하늘로 기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