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셀러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1Q84
"덴고(天吾), 아오마메(靑豆)는 말했다. 그리고,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아오마메를 찾자. 덴고는 새삼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의 소설 1Q84 1,2권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3권을 염두에 둔 미완의 결말이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상했던 대로 1Q84 3권의 출간이 목전에 다가와 있다. 일본 나고야(名古屋) 가나야마(金山) 역 앞의 작은 서점에도 1Q84(3)에 대한 주문(예약)을 받고 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문을 하면서 제3권이 서점가에 나타내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단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그는 정녕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유명한 작가다. 지난해에 발간된 소설 '1Q84'는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베스트셀러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노벨상 후보로 오를만한 충분한 자격과 소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다. 소설 1Q84와 그에 대한 찬반이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대표 논객 35인이 파헤친 한 권의 책(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그에 대한 평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책에 들어있는 내용 중에서 '거장이냐' '거품이냐'라는 서로 상반된 다툼이 눈길을 끈다. 문학평론가 뿐 만 아니라 음악, 영화, 건축, 심리학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1Q84' 속에 담긴 코드들을 풀어내는 한편 객관적인 시각에서 판정을 내리고 있다.
'격이 다른 스케일의 세계문학'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 ․ 62)'라는 문예평론가는 하루키(春樹)의 소설이 '일본을 벗어난 형태의 소설이라는 측면'에 의미를 두면서 '작품의 기묘함, 기괴함, 난해함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매력으로 해외의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1Q84에 대한 나의 평가는 지극히 높다. 다른 작품과는 완전히 격이 다르다. 지금까지의 일본문학과 큰 차이를 낸 것이다. 이미 코너를 돌아버려 후속주자에게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는 느낌이다."
"이런 엄청난 작품이 나왔는데 평론가나 비평가가 제3편이 나오는 걸까? 아직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옴 진리교가 어떻다느니, 그러한 국지적인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사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1Q84가 다루는 이 거대한 소설의 세계가 지극히 작고 초라한, 대수롭지 않은 덴고(天吾)와 아모마메(靑豆)의 딱 한 번의 만남, 즉 '소년, 소녀가 만나다'는 것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일궈낸 가장 큰 결실이다. 역시 하루키는 대단한 작가다."
미국문학 연구가인 '니이모토 료이치(新元良一 ․ 51)'는 인간의 손에 의한 시간세계의 장악,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비애를 '1Q84'에서 강하게 느꼈다고 했다.
"스토리텔러(storyteller)로서의 하루키(春樹)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저쪽' 세계에 어느 정도 깊은 애정을 가지는지를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1Q84'의 독자는 그가 이끄는 허구의 세계가 실재(實在)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에게 읽히려 했던 것일까?'
'가와무라 미나토(川村湊 ․ 59)'라는 평론가는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주제가 산만하여 깊이가 없다'고 일갈(一喝)했다. 문제를 흐트려 놓기만 할 뿐 각각을 깊이 천착해 들어가서 문제의 깊이를 더하거나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면 집대성이지만, 테마로 놓고 보면 응축되어 있지 않기에 그 점을 정확히 문제로 의식하면서 풀어가는 모습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본다. 소설의 완성도라기보다는 문학의 문제로서 혹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본질적인 문제로서 왜, 지금 하루키(春樹)가 이런 이야기를 전개했을까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최근의 테마가 한꺼번에 밀치고 나온 양상이지만 개별적인 테마는 단순한 해결로 마무리했다'는 지적이다.
"분명 옴진리교를 상정했을 텐데 이번 작품에서 악의 분신인 존재가 너무나 깔끔하게 아오마메(靑豆)라는 여성 암살자에게 살해된다. 살해되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원했으니 일종의 자살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자살적인 행위에 의해 그 인물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와무라(川村)의 평가는 더욱 가혹하다.
"이 작품의 무대는 1984년이다. 십대나 이십대가 읽으면 옛날이야기 이거나 적어도 현대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지점에서 다시 비껴나가기가 생성되는지 모른다. 하루키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 읽히려 했던 걸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연구회에서 출판한 '1Q84 해설서'에 쓰여 있는 시인이자 교수인 '히라이 켄(平居謙)'의 글도 재미있는 분석이다. '1Q84'는 일종의 종합유희시설(綜合遊戱施設)이라는 것이다.
"종합유희시설이라는 것은 오래된 추억의 말이다. 하지만, 1984년경에는 새로운 전략적인 말로써 일세를 풍미(風靡)했다. 하루키는 바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의 순수(純粹)를 실현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공허한 지금의 사람들에게 순수하고 종합적인 놀이공간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실성 있는 표현이다. 세계의 독자들이 그 시설 속에서 잘 놀고 있으니 말이다.

'거대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1Q84' 3권에 대한 예상은 일찍이 전문가들에 의해서도 감지되었다. 일본 근대문학 연구가인 '이시하라 지아키(石原千秋 ․ 55)'는 제 3권의 출현을 기정사실로 내다보았다.
"결국 이 거대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1Q84의 book3'로 이어질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1Q84'를 상당히 변형한 속편 형식의 새로운 제목을 가진 소설로 쓰여 질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대답은 영원히 연기될 것이다"면서 본문의 문장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평가를 했다.
<"그리고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로 끝나는 아오마메(靑豆)의 '자살'은 성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아오마메를 찾자. 덴고(天吾)는 다시 마음을 굳혔다. 무슨 일이 있건, 그 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녀가 가령 누구이건"이라는 맺음 방식을 보면 덴고가 저쪽에 갈지도 모른다.>
'이시하라 지아키(石原千秋)' 씨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답이 내려지게 되었다. 4월 16일. 일본 전역에 book3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방(房)이 가진 힘
아무튼, 독자들은 '1Q84'를 통해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스스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것은 하루키(春樹)가 세계의 독자들에게 건네준 거대한 선물이다.
'우에다 마유코(上田麻由子 ․ 32)'라는 젊은 문학가는 1Q84를 비롯하여 책이 가진 힘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 했다.
"인터넷에 의해 사람과 사람이 손쉽게 이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는 타인과의 유대가 희박해지는 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야기를 여럿이 함께 들을 때와 같은 장(場)을 형성하여, 이야기에 유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야말로 책이라는 방(房)이 가진 힘이다."
필자의 일본 친구 야마다(山田 ․ 56) 씨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에 대한 문학적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하루키(春樹)의 소설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라고 했다.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입니다. 하루키(春樹)의 소설이 그토록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의 질문에 필자도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우에다 마유코(上田麻由子)' 씨의 말처럼 하루키(春樹)가 제시한 '뼈와 가죽 이야기'에 한국의 독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피와 살'을 잘 붙이기 때문일까? 독자들의 상상력이 발동하는 것은 하루키(春樹)의 '뼈와 가죽 이야기' 즉, 속도감 넘치는 그의 뛰어난 언어유희(言語遊戱)때문일 것이다. '1Q84의 book3'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