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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갈매기의 꿈?'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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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보(좌) 씨와 와타나베(우) 씨

"따르릉- 따르릉-" 필자와 절친한 관계인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 전 언론인, 68세)' 씨로부터 호텔 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날씨가 좋습니다. 요트나 탑시다. 하카다(博多) 부두로 나오세요." 지난 일요일 후쿠오카(福岡)에서의 일이다. 빡빡했던 출장 일정으로 피곤해서 거절하고 싶었으나 그의 성의를 거스를 수 없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해안선을 따라 도시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사장교(斜張橋) 아래의 푸른 바다가 몸을 날려도 좋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나이 지긋한 택시운전사도 요트를 타는 여유가 부럽다고 했다. 필자는 4,000엔 정도의 택시비를 지불하고 부두에 도착했다. 필자의 또 다른 오랜 친구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 나카무라 대학 사무국장, 62세)' 씨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의 대도시와 지방 도시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 일본 사회의 특징이지만, 인구 130만의 후쿠오카에 이토록 큰 요트 하버(Yacht Haber)가 있는지 몰랐었다. 우리처럼 서울로만 몰려드는 도시집중 현상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트 위에서 오츠보(大坪) 씨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처럼의 요트 운행을 위해 이곳저곳 점검하면서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츠보(大坪) 씨와 와타나베(渡邊) 씨는 필자와 20년이 넘도록 국경을 초월해서 현해탄(玄海灘)을 넘나들며 한결같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요트에서 사케(酒)를-

돛의 줄을 당기는 와타나베 씨와 오츠보 씨필자가 요트에 오르자 통통통 발동이 걸렸다. 작은 요트는 하버(Haber)를 빠져나와 하카다 만(灣)의 넓은 품 안으로 흘러갔다. 하카다 만(灣)은 여느 항구와는 달리 보름달처럼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물결만 출렁거릴 뿐 큰 파도는 없다.
바닷길은 길고 넓었다. 부산으로 가는 배도 바로 이 하카다 만(灣)을 지난다. 그 옛날 가야인과 백제인들이 해류와 바람을 타고 자연스럽게 도착한 곳도 바로 이 뱃길이었다. 동국대 윤명철 교수는 "우리의 전 역사는 바다와 깊은 관계가 있다. 문화가 발생할 때도 그러했고, 먹고 살기 위해서 생산과 교류를 할 때에도, 다른 나라와 외교를 펼치며 전쟁을 할 때에도 바다는 늘 곁에 있었다"고 했다. 윤 교수는 또 "바다는 문화와 인간, 그리고 역사를 담고 있는 초월적이며 포괄적인 존재다"고 정리했다.(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필자를 태운 요트는 바람을 타고 점점 더 깊은 바다로 떠내려갔다. 날씨가 좋은 탓인지 요트들이 여기저기 낙엽처럼 떠 있었다. 때마침 요트 국제 경기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오츠보 씨와 와타나베 씨 모두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다루는 손놀림이 능숙했다.
"여기에서 보는 도시의 라인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와타나베 씨가 말한 대로 건너편 후쿠오카 시(市)를 바라보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래서 후쿠오카를 행복(福)의 언덕(岡)이라고 했던가. 맑은 공기와 바다내음에 취해 있을 무렵 오츠보 씨가 사케(酒) 한 병을 꺼냈다.
"자- 한 잔합시다. 바다에서 마시는 술이 더욱 맛이 있습니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쳤다.
술맛이 참으로 좋았다. 술의 이름은 2007년 세계적 식품 품평회인 '몽드 셀렉션(Monde Selection)'에서 '최고 금상'을 수상한바 있는 특별 미주(米酒) '오쿠노 마쓰(奧の松)'라는 명주였다. 북쪽 지방 후쿠시마(福島) 지역의 술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지역의 술을 좋아하지만, 전국적 이름난 좋은 술은 경우가 다르다.
평소와는 달리 오츠보 씨는 분위기만 띄울 뿐 술을 마시지 않았다. 선장은 음주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해경이 수시로 배의 선장에 대해 음주 운전 검사를 한다고 했다. 필자와 와타나베 씨만 계속해서 술잔을 비웠다. 그러던 중 필자의 18번 곡(曲) 얘기가 나왔다.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나가사키(長崎)는 오늘도 비(雨)가 왔다'라는 노래다. 이 노랫말을 빗대어 와타나베 씨가 필자에게 농담을 했다.
"후쿠오카(福岡)는 오늘도 술(酒)이었다." 새로운 유행어가 바다 한 가운데서 탄생한 셈이다.

노코노시마(能古島)를 향하여

노코노 시마의 부두-갈매기 식당과 섬의 일부가 보인다.

요트는 노코노시마(能古島)를 향해 머리를 틀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목적지는 부두에 있는 갈매기 식당이다. 노코노시마(能古島)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후쿠오카 시 니시(西)구에 해당된다. 이 섬은 하카타 만의 중앙에 떠있다. 노코노시마(能古島) 외에 시카노시마(鹿島)와 겐카이(玄海)섬도 인접해 있다.
후쿠오카 부두에서 페리(ferry)를 타면 불과 10분 만에 섬에 도착할 수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도시의 번잡함을 떨쳐버릴 수 있어서다. 노코노시마(能古島)는 봄 유채꽃, 가을 코스모스의 명소이기도 하다. 이 꽃들이 만개할 무렵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대 혼잡을 이룬다고 한다.
노코노시마(能古島)는 '단 가즈오(檀一雄, 1912-1976)'라는 유명 소설가가 만년(晩年)을 보냈던 곳이다. 그는 소설가이자 작사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사소설(私小說: 작가 자신의 사생활을 쓴 자전적인 작품)과 역사 소설이 그의 주특기란다. 서유기(西遊記)의 초역(抄譯)도 그의 작품이다.

이 노코노시마에는 사키모리(防人: 방위군인)가 배치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멸망하자 야마토(大和) 정권은 백제 재건을 위하여 원정군을 보냈다. 그러나 백촌강(白村江) 해전(663년)에서 대패하자 방위를 위한 국비체제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규슈북부 일대에 사키모리(防人)를 배치했었는데, 이 섬도 그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1281년에는 몽고군이 상륙했던 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가 있다. '이노우에 요우스이(井上陽水, 1948- )'가 노래한 '노코노시마(能古島)의 짝사랑'이다.

<한없는 물결 출렁거리는 소리에/ 오늘밤은 잠을 이룰 수 없으리/ 해변에 내려서 맨발이 되면/ 닿지 않는 물결의 안타까움/ 나의 목소리가 너에게 닿는다면 멋질 텐데/.....멀리 보이는 등불은 남쪽으로 가는 배의 행복인가/.......물결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네.>

갈매기 식당

갈매기 식당 내부-중앙 핑크색 셔츠를 입은 사람이 구보다 씨

요트는 하카다 만(灣)을 한 바퀴 돌아 노코노시마(能古島) 부두에 도착했다. 여러 종류의 배들이 작은 선착장을 메우고 있었다. 필자 일행을 태운 작은 요트는 용감하게 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갈매기 식당'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쯤 왔었던 식당이었다. 갈매기를 일본어로 '가모메(かもめ)'라고 한다. 그런데 잘못 발음해서 '야모메(やもめ)'라고 하면 큰일이 벌어진다. '야모메'는 과부(寡婦)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인아주머니가 필자를 알아보고 반가이 맞았다. 우리의 어촌 식당과 비슷한 갈매기 식당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이 섬에서 나오는 신선한 야채와 자연산 생선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구보다 세츠코(久保田節子, 59세)'라는 주인아줌마의 넉살도 한 몫을 한다.

"지난 번 모습과 달라 보입니다. 그 때 그분 맞습니까?"
"제가 성형 수술을 했거든요. 더 예뻐졌지요?" 그녀의 대답이 총알처럼 튀어나와 좌중을 웃겼다.
"이곳에서 몇 년이나 식당을 하셨나요?"
"이곳에서 태어난 저희 애가 서른 살이 다 되었습니다. 딱 30년째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드라마 '대장금'을 좋아하고 이영애를 좋아 합니다. 이영애 씨가 결혼을 했다면서요? 저는 한국이 너무나 좋습니다."
식당업을 30년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활력이 넘치는 주인아줌마의 밝은 표정이 값싸고 맛있는 음식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갈매기 식당이 또 다른 30년을 위해 더 높이 날기를 기원했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처럼.....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다른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해변으로부터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 이상의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Jonathan Livingston Seagull)'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는 것을 사랑했다.>

갈매기 식당을 나서자 실제로 하얀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하카다 만(灣)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저 갈매기도 높이 나는 연습을 하는 것일까?' 경기를 마친 요트들도 긴장감이 풀린 듯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바다의 물결은 더욱 부드러웠고 뱃길은 청량제를 마신듯 상쾌했다.

입력 : 200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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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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