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onthly.chosun.com/up_fd/expert/board/CE0027/CE0027_080903_1.jpg)
<이름에 대한 의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그것은 일련의 여러 가지 덕으로 되어 있다..........이름에 대한 의리는 비방이나 모욕을 제거하는 행위를 요구한다. 비방은 자신의 명예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벗어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명예 훼손 자에 대해 복수 할 경우도 있고, 자살해야 할 경우도 있다.........일본인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일을 그저 가볍게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로 끝내지 않는다.>
필자가 베네딕트(Benedict)의 글을 인용한 것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메달의 패장이 된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 61세) 야구 감독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헤아려 보고자 함이다.
등번호 11번을 좋아했던 소년 호시노
![](/up_fd/expert/board/CE0027/CE0027_080903_3.jpg)
아무튼, 호시노(星野) 선수는 1974년에 10세이브를 기록하여 일본의 '센트럴 리그' 최다 세이브 승을 수립했고, 1975년에는 7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했다. 1982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 까지 그는 통산 146승 121패 34세이브와 자책점 3.60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도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1983-1986년까지 NHK 야구해설위원을 거친 후1987-1991년, 1996-2001년까지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을 지냈고, 2002-2003년에 한신 타이거스의 감독을 맡아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07년부터 베이징 올림픽 일본 야구 대표 팀을 이끌면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겠다’고 호언했으나, 한국에 2패, 쿠바에 1패, 미국에 2패라는 부끄러운 성적으로 인하여 일본 야구팬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호시노(星野)의 복수(復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선수들은 일장기를 달고 악착같이 싸웠습니다. 올림픽의 어려움이랄까. 올림픽에서는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는 호시노(星野) 감독의 귀국 기자 회견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급기야 호시노(星野) 감독이 한국계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래서 한국과의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판은 당연하다' · '반성하라' · '실격자' · '사임하라' · '가라' · '죽어라'>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에 비하면, 매우 호화생활을 한 그들이었다.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국제대회에서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실제로 일본 선수들은 베이징의 5성급 호텔에서 숙식을 했고, 한국선수들은 올림픽 선수촌에서 한방에 3명씩 숙박했다. 이러한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도마 위에 올랐다. 이밖에 무사의 정, 측은의 정, 와신상담(臥薪嘗膽) 등의 여러 가지 말도 등장했다.
결국 일본 야구계는 '호시노(星野) 감독을 경질하자'는 여론과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의견으로 갈리고 있다. 일본인들의 기질로 보면 ‘호시노(星野)의 이름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 즉, 명예 훼손자(?)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는 쪽으로 기울어 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론의 향방에 관계없이 일본의 복수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올림픽 노메달 후폭풍에 시달리는 일본 야구에 거센 '리벤지(복수)'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과 미국, 쿠바에 난타당하며 구겨진 일본 야구의 자존심을 내년 3월에 열리는 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되찾자는 것이다. 일본에선 복수(復讐)라는 한자대신 영어 리벤지(revenge)란 단어를 즐겨 쓴다.>(조선일보, 8. 26)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도 마냥 승리에 도취하고 있으면 안 된다. 승리는 바람과 같아서 언제든지 날아가 버릴 수 있다. 일본의 네티즌들이 거론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부차는 잠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치욕을 잊었느냐"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호시노(星野) 감독은 부차와 같은 심정으로 명예회복을 위해 쓸개의 쓴맛을 느끼고 있을까?
'일본 야구의 1인자는 한국과 중국 선수였다'
![](http://monthly.chosun.com/up_fd/expert/board/CE0027/CE0027_080903_2.jpg)
장훈 선수가 누구인가.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재일교포 출신이다. 장훈(張勳) 선수는 다섯 살 때 오른 손에 화상을 입어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왼손잡이가 되었다. 왕정치 선수도 도쿄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는 화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외다리 타법으로 유명한 그도, 미국의 '행크 아론'보다 더 많은 홈런을 날렸다. 그러나, 그들이 아픔 없이 1인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랴. 수많은 병살타가 그들에게 채찍을 가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설가 이외수의 '감성사전'에 '병살타'의 정의가 있다. 우리가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9회 말 위기상황을 '병살타'로 잘 처리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에 더욱 실감이 난다.
<야구에서 공격자의 타구가 수비자의 손에 걸려 자기 팀의 뛰는 놈과 나는 놈을 모두 척살시켜버리는 불상사를 말한다.........그러나 겹치는 불행 뒤에는 언제나 겹치는 행운이 따른다. 만약 불행을 통해 자기를 반성하고 노력을 배가(倍加)시킬 수 있다면, 누구든 그만한 불행이 그만한 크기의 행운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예비관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몇 줄의 글 속에 야구는 물론 세상(世上)의 이치가 다 들어있다. 불행을 통한 자기반성 없이 어떻게 행운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올림픽에서는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하다”는 호시노(星野) 감독의 말 속에도 뼈가 들어 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