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타계한 어느 언론인이 젊은 시절 일본어를 번역하면서 ‘두 개의 단어 때문에 밤을 새웠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꽤나 오래된 얘기지만 필자가 배를 쥐고 웃었던 실화다. 그것은 바로 '자신(刺身)'과 '수사(壽司)'다. 그는 집에 있는 모든 사전과 옥편을 뒤지고서도 끝내 해석을 못했다고 했다.
<자신(刺身) - 찌를 자(刺), 몸 신(身)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몸을 찔러?', '자해(自害)?', '침을 주나?' ......... 의문점은 시간이 갈수록 꼬이기만 했단다. 또 다른 고민은 수사(壽司) - 목숨 수(壽), 맡을 사(司)였다. '목숨을 맡는다?' '사형장에 끌려가나?'.......>
‘한자의 의미만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었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실제로 강남에 가면 김 수사, 이 수사 등 한글 간판을 달고 있는 일식집이 제법 눈에 띤다. 간판만 보고서는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듯싶다.
사시미(刺身)와 스시(壽司)
자신(刺身)이란 '사시미'로서 생선회를 말함이고, 수사(壽司)란 '스시(초밥)'를 말한다.
알고 보면 참으로 쉬운 말이지만 뜻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은 지난하다.
필자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본말 마메(豆)에 얽힌 이야기다. '마메'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먹는 콩(豆)을 말한다.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일본 친구에게 정성스럽게 대했더니 "장상은 마메야-"라고 말했다. 필자는 분위기 상 "천만에요"하면서도, '날더러 콩(?)이라니'.....'나를 콩알만 한 사람으로 보았다는 것인가?' 호텔에 돌아와서 일본어 사전을 펼쳐보았다.
'마메'는 콩 이외에 한자 자체가 다른 여러 개의 말이 있었다. 발의 물집(肉刺)도 마메요, 충실(忠實)도 마메였다. '거짓이 없는 진실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충실(忠實)은 쉽게 이해가 되었지만, 육자(肉刺)를 '발의 물집'으로 이해하는 것은 꽤나 어려웠었다.
아무튼, 스시(壽司)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스시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태국에서 태어난 스시
일본의 스시(초밥)가 동남아의 태국에서 들어 왔다는 것은 정설(定說) 같은 얘기다. 태국의 발효식품이 스시의 원조라는 것이다. 동남아 전문가로 통하는 고베의 이와타 코하치(岩田耕八, 66세) 씨도 "태국의 전통 '프라·솜(생선을 식초에 절인 음식)'은 담수어와 밥을 발효시킨 요리였고, 이것은 비와코(琵琶湖) 주변의 붕어스시와도 비슷한 것"이라고 했다. 태국의 생선 발효식품인 '프라·솜"이 일본에 들어와 스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생선에 발효 조미료와 식초를 사용해서 맛을 낸 것이 스시의 원조인 셈이다. 시기는 에도 시대라고 했다.
"일본의 음식문화는 차용과 융합이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미국의 사샤 아이센버그(Sasha Issenberg)도 'The Sushi Economy(해냄)'에서 스시가 에도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스시는 에도 시대에 도쿄의 '길거리 음식'으로 출발했다. 햄버거, 튀김, 셰이크 같은 음식을 총칭하는 용어로 '패스트푸드'라는 말이 사용되기 전부터 1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지금도 도쿄 시민들은 에도 시대의 선조들이 했던 방식으로 스시를 먹는다. 가라오케에서 한 잔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이나 교외로 가는 통근열차를 기다리면서 스시를 사먹는다."
스시의 맛은 요리사의 '팔'에 달렸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스시-
'최고급의 마구로(참치)와 최고급 햅쌀을 사용한 스시가 냉동 마구로(참치)와 묵은 쌀의 스시에 패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여기에는 최상의 맛을 내는 요리사의 지혜와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시의 맛은 요리사에 의해서 판가름 난다. '스시 쇼쿠닌(壽司職人)'이라고 하는 '이타마에(板前=일본요리인)'가 고른 신선한 생선에서부터 쌀, 찹쌀, 식초, 간장을 여하히 조리하는 가에 의해 맛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와타 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필히 스시 집에 간다"면서 "스시의 맛은 요리사의 '팔'에 달려있다"고 했다. 요리사의 훌륭한 솜씨는 고행에 가까운 경험과 타고난 미각(味覺)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를 미미감각(美味感覺)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음식을 들면서 '오이시(美味しい: 맛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오이시(美味しい)’의 한자가 '미미(美味)'로 표기되는 것도 재미있다.
일본의 미식가들은 주로 스시 점의 카운터에서 스시를 먹는다. 요리사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세상사를 논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생선으로 스시를 주문해서 먹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물론 값은 대단히 비싸다. 스시 점의 등급에 따라 5배 내지는 10배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값보다는 스시의 질을 따지는 사람들이다. 회전스시 집에서 파는 초밥의 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참치는 고양이 사료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참치를 최고로 치지만, 일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샤 아이센 버그는 "참치는 기름기가 많아서 지방성분이 적은 수산물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으며, 기름투성이 내장은 고양이 차지였다. 그러나 기름진 생선에 입맛을 들이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참치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인의 생활양식과 입맛의 변화에 따라서 스시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일본의 스시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시장을 넓혔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부터 '생선과 쌀로 만든 스시가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스시 바'가 즐비함은 물론 숙련된 '스시 쇼쿠닌(壽司職人)' 로봇이 등장할 만큼 대중화되었다는 것이다.
태국에서 태어 난 스시가 일본의 브랜드가 되어 세계화를 이룩하기까지는 ‘바다에서 스시 바로 가는 참치의 여정’에 버금가는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