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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도련님’속의 일본인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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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무라(明治村)에서 바라본 이루카(入鹿) 호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름 그대로라면 ‘사슴이 들어가는(入鹿)’ 호수다. 어찌 사슴뿐이랴. 그 호수에는 사람도 자연도 풍덩 빠져 있었다. 맑은 호수에 드리운 산과 나무들의 그림자가 물결을 타고 일렁일 때는 '자연이 살아 움직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 호수 건너 산 아래 간타(神田)씨가 살고 있습니다.” 필자와 동행한 TV방송사의 이토(伊藤)씨의 귀 뜸 이었다. “수 년 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습니다. 나고야(名古屋) 가는 길에 들러 봅시다.” 필자가 말하자 이토(伊藤)씨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일본에서는 사전에 약속 없이 남의 집을 불쑥 방문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그러나, 필자와 나고야 사람들의 관계는 그러한 벽이 허물어진지가 오래되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대 환영입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간타 소헤이(神田草平, 67세)씨는 나고야 중부전략연구회 초창기 멤버 중의 한사람이다. 순박한 시골 할아버지처럼 보이지만, 그는 일본 중견 제조업체인 CKD사의 회장을 지낸 사람이다. CKD사는 “산업분야의 자동화에 기여한다"는 기업 정신을 바탕으로 에너지 절약, 자원절약 등을 도모하는 기기를 생산·조립·판매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1943년에 창립하여 올해로 6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매출금액이 연간 1조원을 상회한다. 이러한 회사의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을 지낸 그가 고문 자리를 마다하고 고향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간타(神田)씨는 2002년 8월. 한국에 수 백 억원을 투자하여 ‘CKD 한국법인’을 세우기까지 필자에게 자신의 회사에 대해 한 마디 말이 없었다. 이유인즉, ‘십 여 년의 인간관계에 폐가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필자와 이토(伊藤)씨는 호수와 산허리를 몇 차례 돌면서 헤매다가 마중 나온 간타(神田)씨를 만났다. 꽤나 크고 넓은 단독 주택 앞에 차를 세우고, 그가 필자를 맨 먼저 안내한 곳은 그의 작은 텃밭이었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멜라민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신선한 야채를 자급자족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너무 좋습니다. 나고야(名古屋) 시내를 갈 때는 마을 앞에서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립니다.”


간타(神田)씨의 부인은 당황해 했다. 갑작스레 뛰어 든 손님들 때문이다. ‘여행 가방을 챙기느라 집이 지저분하다’며 미안해하면서도 무척 반가워했다.


“고문 자리를 오래 동안 버티고 있으면 뭘 합니까. 제가 없어도 후배들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강물이 흘러가면 상류에서 더 맑은 물이 흘러내려온다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사고뭉치 도련님


메이지 무라(明治村)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필자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살던 집에 사람들이 많이 오더군요. 그의 소설은 지금도 인기가 있습니까?"


"그렇지요. 나스메 소세키(夏目漱石)는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와 함께 교과서에도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일본인 중에서 그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읽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면서, 이토(伊藤)씨와 간타(神田)씨는 나쓰메(夏目)의 소설 중 '도련님(坊ちゃん)'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도련님의 무대였던 '아름다운 공주'라는 뜻을 지닌 에히메(愛媛) 현의 도고온천(道後溫泉)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고 했다. 실제로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도고온천 본관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일본 유일의 목욕탕으로 이름이 나있는 것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필자가 평소 알지 못했던 현실적인 일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필자는 ‘도련님 풍월에 염이 있으랴?’는 한국 속담을 소개했다. ‘어리고 서투른 사람이 하는 일이 신통 할 리 없으니 심하게 나무랄 것이 못됨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두 사람은 '소설 속의 도련님(坊ちゃん)이 그러하다‘면서 '도련님'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이후 나쓰메(夏目)의 두 번째 작품인 '도련님(1906)'은 요즈음 말로 코믹한 소설입니다. 1906년 출간 당시는 물론, 100년이 지난 21C인 오늘에 와서도 이 소설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나쓰메(夏目)가 메이지시대의 상황을 잘 간파해서 풍자와 유머가 넘쳐나는 소설을 썼기 때문입니다.”

남의 신세를 안 지려는 일본인


대학 졸업 후 시골 중학교 수학 교사로 발령받은 도쿄 출신의 사회 초년병 ‘도련님’. 덤벙대는 성격의 소유자인 그가 시골 학교에서 경험한 것은 참으로 엄청나다. ‘도련님’은 선생님들 간의 갈등과 모략, 아부와 배신이 난무하는 생활 속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의 ‘도련님’ 속에는 남에게 신세를 안 지려는 일본인의 심리가 녹아 있다.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비위에 맞지 않는 녀석이 친절하게 굴고, 모처럼 잘 맞을 것 같은 친구를 만났다 했더니.....왠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바늘두더지(수학주임의 별명)는 제일 먼저 내게 빙수를 사 줬었다.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녀석에게 빙수를 얻어먹다니.....그때 한 그릇밖에 안 먹었으니까 1전 5리를 빚졌다. 1전이건 5리건 간에 사기꾼에게 얻어먹어서는 죽을 때 눈도 감지 못할 일이다. 내일 학교에 가자마자 1전 5리를 되돌려 주어야겠다.>


<빙수가 되었든, 술 한 잔이 되었든....상대방을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하고 호의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내가 받은 호의를 그만큼 똑같이 나누면 깨끗하게 끝이 난다......나의 호의를 무시하고 뒤통수나 치다니, 괘씸한 놈이다. 하루라도 빨리 1전 5리를 돌려줘야 찝찝했던 빚이 없어진다. 그리고서 따져야겠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는 <국화와 칼>에서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일본인들은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고 했다.
그리고 베네딕트(Benedict)는 "나스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도련님(坊ちゃん)'에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얼마나 화를 내기 쉬운지가 소설 속에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간타(神田)씨의 부인이 내온 일본차를 마시고, 서둘러서 나고야 시내를 향해 떠났다. 물론 간타(神田)씨도 동행했다. 비록 회사를 떠났다고는 하지만, 역시 CKD 한국법인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공(公)과 사(私)’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진들을 위해 서둘러서 보따리를 쌌다’는 그의 말이 필자의 가슴속 깊이 새겨졌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로 그들이 들어야 할 말이다.’


아이치(愛知)현 서쪽 하늘의 아름다운 노을이 산 아래 이루카(入鹿) 호수에서도 황금빛을 발하며 일렁이고 있었다.

입력 : 200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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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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