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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메이지 무라(明治 村)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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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도쿄 지국장(1987-1991)을 지낸 패트릭 스미스(Patrik Smith)가 쓴 <일본의 재구성>이라는 책에 이러한 얘기가 있다.


<지금까지 근대 일본은 국가의 향방을 바꾼 두 가지 역사적 변화를 통해 자기의 나라를 지켜왔다. 하나는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산업국가 건설을 개시했다. 또 하나는 1945년 패전으로. 이를 계기로 일본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적어도 겉모습은 그랬다. 두 경우 모두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배출했다. 메이지 정권은 일본에 제철공장, 조선소, 면방직공장, 철로를 선사했다. 미국은 보통선거권, 여성 해방, 언론의 자유 등을 안겨주었고, 소작농은 자영농이 되었다.>


적절한 분석이다.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는 일본 근대화의 여명기(黎明期)로써 오늘의 일본을 만들어낸 '변곡점(變曲點)'이기도 하다. 또한 메이지(明治) 시대는 건축사적인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에도시대(江戶時代)로 부터 계승한 목조건축 위에 새로운 구미양식의 석조·연와조 건축이 도입되었고, 산업화의 과속화에 따라 철·시멘트·유리를 사용한 근대건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건축물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은 물론, 건축물의 예술성과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랄까? 이처럼 소중한 건축물이 전쟁에 의해 소실되거나, 무분별한 개발 사업에 의해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사실을 안타까워했던 일본의 구제(舊制)제4고등학교(현 전문대) 동창생인 '다나쿠치 요시로우'(谷口吉郞, 1904-1979/메이지무라 초대관장)박사와 '츠치카와 오토오'(土川元夫, 1903-1974/전 나고야철도회사 회장)씨가 의기를 투합해 이 메이지무라(明治村)를 만들게 되었다.

1965년 재단법인으로 발족한 박물관


나고야(名古屋) 북쪽 이누야마(犬山)시 남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메이지무라(明治村)는, 메이지 시대의 건축물을 전국에서 수집하여 이곳에 옮겨놓은 일종의 테마파크다. 1925년 미국의 유명 건축가인 프랭크 L. 라이트(Frank L. Wright/1867-1959)가 설계하여 야외 박물관 형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의 공식 명칭은 '박물관 메이지무라(明治村)'이다. 약 100만㎡(33만 평)인 메이지무라(明治村)는 1초메(丁目)에서 부터 2,3.4.5초메(丁目)에 이르는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느낄 수 있는 학교·성당·병원·호텔·우체국·감옥 등 65동의 역사적 건물이 세월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메이지무라(明治村)의 입구는 제8고등학교 정문을 그대로 옮겨서 만들었다. 정문을 통과하면 오이(大井) 정육점이 메이지 시대의 모습대로 소고기를 팔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미에겐(三重縣) 심상사범학교 구라모치(藏持) 소학교 건물이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낡은 풍금과 작은 책상, 걸상, 흑판, 졸업장, 표창장 등이 사람들의 소시적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몇 개의 건물을 지나 '졸졸졸' 도랑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언덕길을 오르면, 소설가 모리 오가이(森鷗 外)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주택 등 12개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2초메(丁目)는 주요문화재인 미에겐(三重縣) 청사와 삿포로 전화교환국, 철도기념물인 증기동차(蒸氣動車)가 있다. 그리고, 그 옛날의 전차와 기차가 짧은 구간이지만 '메이지의 추억'을 매달고 박물관의 언덕길을 달린다. 일본 최초의 전차는 메이지 28년(1895년)에 교토시전(京都市電)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한다. 교토에 이어 두 번째로 전차가 등장한 곳이 나고야(名古屋) 다. 교토보다 3년이 늦은 메이지 43년(1898년)이다. '메이지 무라'에 있는 전차는 바로 그 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이곳에는 교토의 '시치조(七條) 파출소'도 있다. 이 파출소에는 무서운(?) 일본 순사가 그 당시의 제복차림으로 경례를 하고 있다. 관광객들도 순사의 모자를 빌려쓰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는 11개의 메이지 시대 건물이 사람들에게 메이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3초메(丁目)는 중요문화재인 시나가와(品川) 등대, 나가사키 거류지 25번관, 고베 야마테니시(山手西) 서양인 주택 등 11개의 건물이 각각 자연의 향기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메이지는 일본 근대화의 초석


4초메(丁目)는 제법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17개의 건물들이 각각 다른 모습들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4초메(丁目)의 중심부에 있는 우지야마다(宇治山田) 우체국은 중요문화재이기도 하지만, 그 곳에서 실체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이벤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많은 어린아이들이 이 우체국에서 그림엽서를 쓰고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브라질 이민 주택과 하와이 이민 주택이 있어 그 당시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빨간 다리 위에는 증기 기관차가 흘러간 역사를 싣고 멈춰있으며, 철도기숙사 심바시(新橋) 공장 기계관에는 중요문화재인 방직기계가 일본산업의 흐름을 감아쥐고 정지해 있다.


<일본은 쇄국에 의해 구미의 과학기술로부터 폐쇄되어 있었으나, 개국과 함께 재빠르게 해외의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근대화를 도모했다. 이의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기계를 갖추는 것이다. 원동기계, 공작기계, 섬유기계, 인쇄기계 등이 수입됨과 동시에 이러한 기계의 국산화가 시작되었다.>


철도기숙사 심바시(新橋) 공장 기계관 입구에 쓰여 있는 글이다. 일본은 서양에서 도입한 기계를 사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국산화를 통한 산업화를 이룩했던 것이다.


북쪽 출입구로 연결되는 5초메(丁目)에는 성(聖) 자비엘 천주당을 비롯해서 빨간 벽돌집인 가나자와 감옥 정문, 미야츠(宮津) 재판소 법정, 데이코쿠(帝國) 호텔 중앙 현관 등 17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데이코쿠(帝國) 호텔 또한, 20세기 거장인 프랭크 L. 라이트(Frank L. Wright)가 설계했다. 1923년에 건설된 이 호텔은 원래 도쿄의 치요다(千代田)에 있었다. 해외의 VIP 고객을 접대하는 영빈관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각국의 왕족을 비롯하여 '마리린 먼로'가 투숙하기도 했단다. 현재도 사전에 예약을 하면 이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골프장 건설이 거론되던 곳


시대가 흐르고, 건축물이 지어지고, 그 속에 역사와 예술 그리고, 인간의 삶을 곁들인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필자와 동행한 아이치 TV의 이토(伊藤)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이곳은 한때 골프장 건설 부지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 끝에 이와 같은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렇다. 33만 평의 부지에 골프장 18홀은 거뜬히 들어설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무도 많고, 적당한 구릉지도 있으며, 아름다운 '이루카(入鹿) 호수'가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장 건설의 유혹을 뿌리치고 시민들에게 '박물관 메이지무라(明治村)'를 선사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입력 : 200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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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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