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고마키(小牧) 성으로 옮긴지 한 달 만에 이누야마 성(犬山 城)을 지탱하고 있던 세 개의 작은 성들이 항복을 함으로써 '오다 노부키요(織田信淸)'의 이누야마 성(犬山 城)은 거의 적 앞에서 벌거벗은 꼴이 되었다. 그래도 이 성이 쉽게 함락되지 않았던 것은 기소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요새 같은 지형과, 동쪽 미노(美濃)로부터 지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카이 세대'로 유명해진 작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의 소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처럼 이누야마 성(犬山 城)은 기소(木曾) 강이라는 자연적인 방패 덕택으로 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누야마 '오다 노부키요(織田信淸)' 놈의 전력이 정비되기 전에 공격하여, 미노 지방 놈들이 추수를 마치고 지원하러 오기 전에 함락시킨다. 병마의 수를 맞추는 것보다 사흘 후의 출병에 늦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라."
결국,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병력 5천명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이누야마 성(犬山 城)을 손에 넣게 되었다.
후미견고형 평산성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평소 관심을 가졌던 필자는 시간을 쪼개어 이 성을 찾았다. 때마침 주말을 맞아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여름 햇볕과는 달랐지만 가을 햇살도 제법 따가웠다. 그다지 길지 않은 비탈길이었지만,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성의 언덕길에는 이끼 낀 거목(巨木)들이 침묵을 지키면서도 위엄 있게 버티고 있었다. 언덕길을 지나 성문에 들어서자 아담한 천수각(天守閣)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성은 행정 구역 상으로는 아이치(愛知) 현 이누야마(犬山)시에 있는 자그마한 평산성(平山城)이다. "해발 몇 미터나 될까요?" 성 관리인에게 물었으나 대답이 신통치 않았다. 이누야마(犬山)성은 눈대중으로 해발 50m쯤으로 보이는 낮은 언덕에 있었다.
이 이누야마(犬山)성은 1937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숙부인 '오다 요지로노부야스(織田與次郞信康)'에 의해서 축성되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이누야마 성은 일본의 현존 성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수많은 전란을 겪었으면서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시대에는 성주가 수시로 바뀌는 어지러운 상황이었으나 세키가하라(關ケ原)전투를 계기로 성곽이 재정비 되었다고 한다. 이누야마 성의 특징이라면 일본의 여느 성과는 달리 주성의 배후에 자연적인 방어선인 기소(木曾) 강이 흐르고 있어 후미견고형의 형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의 특징
천수각 입구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신발을 봉지에 넣고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한 손에 신발 봉지를 들고 가파른 내부 계단을 오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까? 나무 손잡이와 계단들이 기름종이처럼 반질거렸다.
1층 '난도의 마(納戶の間)'는 중앙부 4실로 구획되어 있었다. 창건 당시부터 성주의 거실과 무사들이 숨는 방을 만들어졌다. 2층 '부구노마(武具の間)'는 동·서·북 세 방향으로 무기선반이 구비되어 있었다. 3층은 남북으로 '가라하후노마(唐破風の間: 처마가 당나라 투구형식으로 둥글게 생겼다는 것을 의미함)', 동서로는 '치도리하후노마(千鳥破風の間: 새가 무리지어 나는 격자형)'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누야마 성은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가신인 '나루세 미나리(城瀨正城)'가 성주(1617년)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나루세(成瀨)' 성주는 1618년(元和 4년)부터 1687년(貞享 2년)에 걸쳐서 70여 년 동안 성을 증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층 '고란노마(高欄の間)'는 사방으로 다다미 반장 정도의 회랑과 난간이 있었다.
5층 망루에 올라서자 남으로는 이누야마(犬山) 시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높지 않은 망루였지만, 이누야마(犬山) 시가 참으로 낮게 보였다. 망루의 후면으로 돌아가자 '아이치 현'과 '기후 현'을 가르는 기소(木曾) 강이 역사를 쓸어내리듯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저 강물은 필시 '인생의 속절없는 흘러감을 일깨워 주고 있을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서 따라오라고/따라가자고' 흘러가는 강물은 우리에게 사랑과 시간의 흐름을, 나아가서 인생의 속절없는 흘러감을 일깨워 준다."(문학 평론가 김재홍)
이 성은 특이하게도 개인 소유 형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유권을 달리했다. 2004년부터 사단법인 '이누야마 성 하쿠테이(白帝) 문고' 소유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이누야마 성이 일명 하쿠테이 성(白帝城)이라는 것은,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임종을 맞은 성의 이름(白帝城)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그 성이 양쯔강 연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누야마 성도 기소강 연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대삼(大衫) 나무님
"수령, 약 650년"
"높이, 죽기 전 약 24미터"
<이누야마(犬山) 성 축성 무렵부터의 고목으로서, 천수각과 같은 정도의 높이였다. 벼락이 떨어질 때는 성 대신에, 태풍이 불 때는 바람막이로 성을 지키는 신목(神木)으로서 존경받았다. 그러나, 1965년 경 고사했다.>
천수각 오른 편 고사된 나무 앞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성을 지키는 신목이 죽고 말았으니 얼마나 슬픈 일이었을까?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존경으로 이어져 고목의 시신(?)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고사된 거목에는 보호대를 착용한 환자처럼 큰 틀이 씌워져 있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생을 마감한 고목나무의 몸체를 능소화(凌宵花)가 휘감고 있다는 사실이다.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라고 하는 낙엽성 덩굴식물이다. 옛날에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서 일명 양반 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능소화를 일본어로는 '노우젠카즈라(凌宵花)'라고 한다. 이 '노우젠카즈라(凌宵花)'의 개화 시기는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이다. 필자가 개화시기를 놓쳐 아름다운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신목이라 일컫는 일본 사람들의 생각이 특이했다.
이누야마(犬山) 시는 인구 7만 6천 여 명의 작은 도시다. 이누야마(犬山)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데도 사연이 있다. 먼 옛날, 이 지역 사람들이 개(犬)를 이용한 수렵을 많이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런 저런 사연들을 뒤로하고 언덕길을 따라 성을 내려왔다. 삼국지의 마지막 글귀가 떠올랐다.
"이리하여 삼국 이후 천하를 주름잡던 모든 나라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으니. 이것은 결국장강(長江)의 물줄기 위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물거품 같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