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라오케에 가면 샐러리맨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대중가요가 있다. 대체로 남성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일본의 유명가수 요시 이쿠조(吉幾三)가 부른 「사케(酒)요-」란 노래다.
<눈물 속에는 여러 가지의 추억이 있다 / 마음속에도 여러 가지의 상처가 있다 / 혼자 마시는 술 / 자작 술 / 연가(演歌)를 들으면서..... / 가볍게 취해 그러한 밤도 / 가끔은 좋을 것이야 / 그렇지 술이여!(사케요) / 너는 알거야 / 그렇지 술이여!(사케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눈물어린 추억이 있고, 마음의 상처가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한 잔의 술에 가볍게 취해서 노래를 들으며 아픔을 잊어보자는 내용이다. 세상사 모두가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적 문제를 술을 마시면서 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날로 어려워지는 회사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샐러리맨들의 심경(心境)을 대변해 주는 노랫말이기도 하다.
늘어나는 사케(酒) 수입
이러한 일본의 '사케(酒)'가 빠른 속도로 우리의 술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는 보도(조선일보 7/21)다. 성급한 사람들은 "와인 열풍이 일본의 '사케(酒)'로 옮겨가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사케는 75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15t보다 46%나 증가했다고 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260만 달러나 된다.
이를 년도별로 보면, 지난 2005년에는 526t에 그쳤으나 2006년 851t, 2007년 1,275t 으로 늘었으며, 올해에는 1,500t 을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 효고(兵庫)현에서 일본 술을 제조·판매하고 있는 후쿠모토 요시오(福本 芳夫) 사장이 지난주에 서울에 왔었다. 당연히 한국 시장 확대를 위해서다.
"효고(兵庫)현은 일본 제일의 술 생산지로서 경쟁력이 뛰어난 사케(酒)가 많습니다. 이번의 서울 방문은 시장 확대 차원에서 저희 회사가 제조한 술을 가지고 왔습니다"면서 여러 종류의 술을 무료로 제공했다.
이토록 급속도로 사케(酒)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코올 도수가 13-14도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특히, 순한 맛의 술을 좋아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 신촌이나 대학로 등에는 일본 사케(酒) 전문 주점까지 생겨났다.
일본의 정통 선술집 형태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순임(朴順任, 49세, 여) 사장은 "저희 가게의 손님들도 처음에는 우리의 소주를 마시다가 점차적으로 일본의 사케(酒)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속도가 대단히 빠릅니다. 제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술의 양이 지난해에 비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과히 열풍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 이유는 '사케(酒)가 화학주가 아닌 곡주라서 몸에 좋은 점도 있지만, 먹는 음식과 술이 궁합이 잘맞다'는 것이다.
요리와 궁합이 맞아야
와인을 마시다보면 음식과의 궁합을 많이 따진다. 예를 들어 생선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 육류에는 레드 와인 등이다. 일본의 사케도 음식과의 궁합을 중요시 한다. 기본적으로 계절이나 요리에 맞추어 따끈하게 데워서 마시거나, 차갑게 하여 마신다. 봄에는 죽순을 안주로 하여 차갑게 마시고, 여름에는 생선구이를 안주로 하여 차갑게 마신다. 가을에는 산나물을 안주로 하여 따끈하게 마시며, 겨울에는 전골류나 샤부샤부 등을 안주로 하여 뜨겁게 데운 술을 마신다. 차갑게 마시는 술을 레이슈(冷酒) 또는 히야자케(冷酒)라고 하고, 반대로 뜨겁게 데워서 마시는 술을 아츠칸(熱燗)이라고 한다.
일본의 사케는 전국적으로 약 2,000여종이 있다. 지역별 특산품이 있고 지역마다 술맛이 조금씩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열도가 길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호카이도(北海道)처럼 폭설지대가 있는가 하면, 오키나와(沖繩) 같은 아열대가 있어 각각 다른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술도 요리에 맞추어 매운 맛, 단맛 등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요즈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기 다다시(亞樹 直)'의 만화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들도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mariage: 궁합)를 맞추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취하기 위한 남자의 술?
"와인을 마시는 목적은 취하는 것에 있지 않다. 글라스 너머에서 일렁이는 아름답고 심오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그것이 와인을 마시는 행위의 본질이다."
'아기 다다시(亞樹 直)'는 와인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한다. 그런데, 일본의 사케는 전통적으로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남자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약점이 있다. 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없을까? 일본에서는 다양한 색깔이나 예쁜 모양의 병은 물론 술잔에 이르기 까지 디자인이 독특하다. 차갑게 마시는 레이슈(冷酒)의 경우는 시원스러운 유리병이나 투명한 유리잔에 마시고, 따뜻한 술인 아츠칸(熱燗)은 도자기 잔에 마시는 등 다양한 형태로 술을 즐긴다.
일본의 명주(銘酒)는 자연이 준 선물이기도 하다. 좋은 쌀과 청정수에 의해서 맛이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좋은 술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이 니이카타(新瀉)이다. 니이카타(新瀉)에는 '설중매(雪中梅)'와 '고시노 간바이(越乃寒梅)' 등의 명주(銘酒)가 많다. 이유는 물이 맑고 좋은 쌀이 생산되는 자연의 혜택 때문이다.
"사케는 좋은 쌀과 맑은 물을 원료로 합니다. 쌀이 누룩으로 당화(糖化)되어 포도당이 됩니다. 이 포도당이 발효되면 알코올이 됩니다. 당화와 발효에 의해서 고농도의 알코올을 생성시켜서 사케(酒)가 탄생됩니다."
일본의 유명 도우지(杜氏: 술을 빚는 기술자)인 '구노 아츠시(久野 敦史)'씨 의 말이다. 일본의 사케는 증류나 장기 숙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맛의 승부는 원료인 쌀과 물에서 결정 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연의 혜택이 있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정성이 있어야 한다. 엄격한 품질관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주도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 하지만, 사케(酒)처럼 열풍은 아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연구가 부족해서 일 것이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맛을 음미하는 것보다는 폭음이 강요되는 음주 문화도 문제다.
일본의 만요슈(萬葉集)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잘난 척하고 떠들어대기보다는 술에 취해 흐느껴 우는 편이 훨씬 나은 듯하다." 술을 조용히 마시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