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번개, 화재, 아버지」이다. 지진만큼 무서운 일본의 아버지 —
이토록 무서운 일본의 아버지가 죄(罪)값을 치르게 되었다
아버지가 미워서, 자기 집에 불을 지른 장남(長男)
사건은 지난 6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은 장남의 학교에서 학부모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중간시험 성적이 엉망이었던 장남(16세, 고교1년생)은 불안에 떨었다.
“죽을 만큼 얻어맞겠구나!”
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사)의 폭력으로부터 도망갈 궁리뿐이었다.
6월 20일, 새벽 5시 —
부엌 바닥에 기름을 뿌리고 계단 쪽에 불을 질렀다. 2층에서 잠자고 있던 어머니(38세), 남동생(7세), 여동생 (5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음을 맞았다.
본인이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일인가?
‘광범성(廣汎性) 발달 장애증’환자
나라현(奈良県) 가정 법원은, 장남을 ‘광범성(廣汎性)발달 장애증’환자(선천적 뇌기능 장애)로 판정하고 ‘이 사건은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며, 그가 의료소년원에서 갱생(更生)의 길을 걷도록 했다. 반대로 그의 아버지에게 책임을 물었다.
“부친의 행동은 가정교육이나 학업지도의 한계를 넘는 학대(虐待)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장(石田裕一)은 “아버지의 계속된 폭력으로 성격이나 자질이 삐뚤어져, 장남이 비행(非行)의 길로 줄달음치게 되었다”고 판결했다.
검찰에서는 “확정적 살의(殺意)가 있었기 때문에 성인과 동일하게 형사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에서는 중과실 치사(致死)로 보고, 그를 의료 소년원에 보냈다. (서일본신문)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어요!」
“죽은 세 가족이 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겠느냐?” 고 담당검사가 묻자 장남은 “분노하고 있을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평온하게 지내길 기원합니다”고 답변하였다. 또 “이제는 아버지를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 장래에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고 말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줄달음친, 아버지와 아들—
이들이 다시 ‘가정이라는 둥지’ 속에서 같이 살 수 있을까?
슬픔의 편린(片鱗)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죄악의 상흔(傷痕)이 과연 메워 질수 있을까?
장남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학부모들이 ‘관대한 처분’을 위한 3,000명 서명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따뜻한 마음을 모아, 그가 평상심(平常心)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일본에는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한다.
일본에서 200만부가 넘게 팔린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의 저자인 후지와라 마사히코(藤原正彦ㆍ63세)씨는 일본 사회가 황폐(荒廢)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범죄의 증가, 가정의 몰락, 교육 붕괴’ 등의 문제점을 들추어냈다. 실제로 일본 신문의 사회면에는 여대생의 납치, 젊은 청년의 생매장, 청소년 범죄의 증가, 아동 학대의 문제가 대서특필되고 있다. 절도, 납치, 등 청소년 범죄가 인구 1,000명당 15.9명이나 된다. 이는, 성인 범죄의 2.5명에 비해 6배가 넘는다. 아동학대의 상담 건수도 1990년 대비 약 30배나 되는 38,000건(후생노동성조사, 10월 31일)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어떠한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일까?’
좋은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떠한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일까?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마지막 라운드(제임스 도드슨/ 정선이 옮김. 아침나라)’에 답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골프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잘 그려내었다.
아들을 친구로 생각하는 아버지 —
아버지를 친구처럼 대하는 아들 —
그러나 친구관계의 밑바탕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해서 기필코 유명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일방적인 애정보다는 ‘아들의 판단을 중요시 하는것이 더 큰 애정이다’는 것이 이 책속에 녹아 있다.
「내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고 이제 내 아이를 가진 중년의 남자가 되었어도 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지금 조차도 아버지 없는 세상이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나는 항상 그의 아들인 것이다」 (제임스 도드순의 마지막 라운드)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아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아버지—
그러한 아버지가 진정 좋은 아버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