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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나비 부인」, 나가사키(長崎)에서 날다.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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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항구의 아름다운 모습>

나가사키(長崎)는 원폭(原爆)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의 어느 도시보다도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선구자적인 도시다. 1542년 풍랑으로 인하여 표류하던 포르투갈 선박이 우연히 나가사키(長崎)항에 정박하면서부터 ‘일본과 서양의 만남’이 본격화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본과 나가사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떨치게 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오페라 나비부인(Madam Butterfly)이 아닐까?

 

소설로 태어난 「나비부인」

 

나비부인은 1898년 미국의 존 루터 롱(John Luther Long)에 의해서 쓰여진 소설이다.
그는 1890년 초, 나가사키 외국인 거주지인 히가시 야마테(東山手)에 살고 있던 ‘사라 제니-코렐’(鎮西学院 교장부인)로부터 들은 나가사키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소설을 썼다.

 

실제로 해외무역의 창구역할을 했던 나가사키에는 일본 여성들이 외국인과 결혼을 많이 했다. 한때, 일본 정부의 기독교 억압정책에 의해 외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과 그 자녀들은 마카오 등으로 추방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나비부인」은 소설이 발간된 이후 연극으로 꾸며져 뉴욕과 런던의 무대에 오르게 되어 대 히트를 쳤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탄생 배경도 재미있다.
푸치니(1858.12.23~1924.11.29)가 유럽에서 이 연극을 관람하고 감동하여 오페라 「나비부인」의 대본에 착수하게 되었다. 푸치니는 정열적으로 나비부인에 빠져들었으나 병과 자동차 사고 등으로 늦어져 일 년 반 만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첫 술에 배가 부르지 않는 법 ―
1904년 2월 17일.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의 초연은 실패하였다.  푸치니는 이에 물러서지 않고 일본의 의상과 풍습, 연출 등에 손질을 가하여 3개월 만에 재공연에 돌입,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라보엠(La Boheme), 토스카(Tosca)와 함께 3대 걸작으로 불리고 있는 이 나비부인(Madam Butterfly)은 화려하면서도 애처로운 음악을 깔고 있어 푸치니 오페라의 특유한 미적요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가사키(長崎) 언덕위의 집

 

막이 열리면 미국의 해군 중위 핑거튼이 중매인 고로의 안내를 받으면서 등장한다. 핑거튼은 나비부인과 결혼하게 되어, 이 언덕위의 집에서 신방을 차린다. 이들은 주위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강행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비부인의 순수한 사랑에 반해 핑거튼 중위의 사랑은 한때의 불장난이었다.

 

핑거튼은 나비부인을 버려두고 미국으로 떠난다. 울새가 둥지를 트는 계절이 되면 돌아온다던 그가 소식조차 없다.
“미국에서는 울새가 둥지를 트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나요?”
“이곳에서는 어느새 세 번이나 둥지를 틀었는데.......”
3년 동안이나 언덕 위의 집에 갇히어 미국 영사에게 묻는 나비부인의 질문에 가시가 돋쳐있다. 미국 남편을 기다리면서 부르는 제 2막 아리아 「어떤 화창한 날」은 나비부인의 아픔과 그리움이 온 몸에 녹아 흐른다.

 

<그는 떠나기 전에 내게 말했지요.
오 ― 버터플라이, 귀여운 꼬마아가씨―
울새가 둥지를 트는 계절에 돌아올 거야.

 

그이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어떤 화창한 날. 바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
한 줄기 연기 피어오르고

 

배가 나타날 거야.
아름다운 큰 배는 항구로 와서
천둥 같은 대포를 쏘면서......

 

나는 만나러 갈 거야. 언덕에서 기다릴 거야.
얼마든지 기다릴 거야......>

 

3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던 어느 날. 천둥 같은 대포소리와 함께 멀리서 핑거튼이 탄 ‘아브라함 링컨’호가 나타난다.

 

“내가 흘린 눈물이/ 꽃잎이 되어 다가왔네/ 아름다운 4월을 심자/ 백합, 장미, 제비꽃...../ 사랑의 꽃을 뿌리자.”

 

나비부인은 하인 스즈키와 함께 온 집안에 꽃잎을 뿌리면서 핑거튼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 다음날, 그는 미국인 아내와 함께 나비부인 집에 찾아온다. 잘못을 깨달은 핑거튼은 나비부인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한다. 미국인 아내는 나비부인에게 “그녀의 아들을 양자로 삼아 잘 키우겠다.”고 한다.

 

나비부인은 결국 ‘수치를 안고 살 수 없다.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는 일본인 특유의 감정이 폭발한다. 어린 아들을 안고 작별을 고하는 나비부인의 애절한 모성애가 심장을 녹인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죽음을 택하는 어머니의 사랑 ―

 

< 오 ! 내 아들아 ―
바다 건너 저 멀리 미국에 가서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가 너를 버렸다고 슬퍼하지 마라.
너를 위해서 엄마가 죽는 거란다.
내 아들! 천상의 선물!
하늘이 주신 선물
안녕! 내 사랑. 내 아들아
소중한 내 아들아 ― >

 

그녀는 아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방 안에서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만다.

 

미우라 다마키(三浦環), 나가사키에서 영원히...

 

나비부인이 살았던 언덕 위의 집은 글로버가든(Glover Garden)에 있었으리라 ―

 

이곳은 나가사키 항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스코틀랜드 사람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Glover)가 1863년에 이곳에 저택을 건설하였다. 이 공원에 남아있는 그의 저택과 생활상들이 그 당시의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 공원은 그의 이름을 따서 글로버 공원(Glover Garden)으로 정해졌다. 이 공원이 일반인에게 정식으로 공개된 것은 1974년이다. 이 곳 언덕에 푸치니와 미우라 다마키(三浦環 1884~1946)의 동상이 서있다.

 

도쿄에서 출생한 ‘미우라’는 1914년 유럽으로 건너가 주목을 받은 후 1915년에 푸치니의 「나비부인」역을 맡게 됨으로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녀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20년간 2000회에 걸쳐「나비부인」을 공연했다. 맑고 감미로운 목소리는 푸치니가 “나의 꿈”이라고 격찬할 정도였다. 그녀의 동상이 이 공원에 세워진 것은 「나비부인」의 공연을 통해서 나가사키의 이름을 세계 곳곳에 알린 공로 때문이라고 한다. (공원 관리직원 秋島씨, 48세)

 

실제로 나비부인의 스토리를 원작자에게 알려준 ‘코렐’부인과 ‘미우라 다마키’가 1922년에 이곳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글로버 공원에는 또 한사람의 대표적인 오페라 가수 키와데이코(喜波貞子, 1902.11.20~1983. 5.29)의 활약상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키와데이코는 일본 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7세의 어린나이에 단신으로 이태리에 건너가 「나비부인」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유명가수다. 80세의 나이로 이국땅(프랑스)에서 눈을 감았지만, 할머니가 나가사키(長崎)출신이라는 인연으로 그녀 대신 그녀의 유품이 할머니의 고향을 찾은 것이다.


나가사키는 이래저래 슬픈 사연이 많다. 그래서 ‘나가사키는 오늘도 비가 왔다’는 대중가요가 유행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 오페라는 지금?

 

한국 오페라는 1940년 조선오페라단에 의한 「흥부와 놀부」이후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으로 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부와 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미미할 뿐 아니라 일반국민들의 호응도 한정되어 있다.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전문 연출가의 육성을 위한 투자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필자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베세토’ 오페라단의 강화자(전 연세대교수, 김자경오페라단장) 단장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강 단장은 “일본의 「나비부인」이 세계적으로 성공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시대적 정서 즉, 전쟁 후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본 여인과 서양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푸치니’라는 거장이 곡을 썼기 때문입니다.”고 말한다.

강 단장은 또한 “오페라의 세계화도 바로 국력(國力)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면서 “세계적인 작곡가의 육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베세토’ 오페라단은 베이징, 서울, 도쿄의 이니셜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활동무대를 중국,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화를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이 오페라단은 「오페라 춘향전」으로 2002년 10월 일본, 11월 중국, 2005년 독일에서 공연하여 대 성공을 하였다.


“우리 고유의 전통의상, 한(恨)이 서린 듯한 국악의 리듬, 사랑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은 ‘춘향’의 일편단심이 어우러져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다.”는 강 단장은 “내년에는 인도에 가서 ‘춘향전’을 선보일 것이다.”면서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오페라의 국제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정부, 기업 그리고 국민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입력 : 20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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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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