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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일본에서 독립하자’는 오키나와(沖繩) 사람들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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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했다. 한국이 일본에 0:1로 졌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한국. 일본에 분패(憤敗)’라는 기사가 실린다.
 이와 반대로, 한국이 일본에 1:0으로 이겼다. 그때는 ‘한국. 일본에 쾌승(快勝)’이라는 기사가 뜬다. 이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일본, 일본인...... 한방교, 2004. 깊은샘)

 

 이러한 일이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자기 지역의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 대 나라의 감정으로 불거진 일이다.

 

‘오키나와(沖繩) 주민의 24%가 독립희망’

 

 ‘오키나와팀과 일본팀이 운동시합을 할 경우, 어느 팀을 응원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오키나와팀 응원 94.1%, 일본팀 응원 2.1%라는 답이 나왔다. 이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닌, 오키나와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이 박혀있는 응어리(?)가 돌출된 것으로 보여진다.

 

 오키나와 류큐대학(琉球大學)의 한 조교수(林泉忠 씨)가 실시한 현(県)주민의 의식조사에서 나온 데이터(data)다. 이 조사에서 오키나와현(県)주민의 4명중 1명이 「오키나와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독립하지 않아야 한다」는 대답이 월등(65.4%)하지만, 응답자의 23.9%가 자신의 마음속으로는 일본과의 독립을 원하고 있었다.
 이 조사는 현(県)주민의 정체성(Identity)에 관한 의식을 탐문하기 위해서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1,200명으로부터 나온 답이다.(서일본신문, 11.28)

 

 ‘그렇다면 독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더욱 놀랍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배경이 일본과 다르기 때문이다」가 48.9%나 되었다.

 또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은 즉.
① 오키나와인(人)인 동시에 일본인이다 --   40.1%
② 오키나와인(人)이다   ---------  30.3%
③ 일본인(人)이다   -----------  28.6% (기타 1.0%) 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들은 일본인이라기보다는 오키나와인 이기를 원하기 때문일까?

 

일본보다는 중국이 더 가까운 섬나라


오키나와는 일본보다는 중국이 더 가깝다. 1000km이상 징검다리처럼 흩어져있는 끝자락 섬인 요나구지마(與那國島)는 대만에서 100km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여건 때문일 것이다. 이곳 오키나와는 1372년부터 수백 년 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치기도 했다. 1609년 규슈(九州)의 사츠마국이 침공하였던 때부터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일본의 현(県)이 된 것은 메이지(明治)시대인 1807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한 역사를 뒤로하고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가을부터 미군의 공격과 일본의 저항사이에 끼여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의 중심’에 서 있었다. 82일간 폭격이 감행된 이 전투에서 미국인 12,500명, 일본인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일본인 사망자 25만 명 중 3분의 1이 오키나와의 민간인이었다고 한다.
 1945년 미국에 점령된 후 27년간 미군 통치를 받고 살아왔으며, 1972년 일본에 반환되어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 오키나와 —
 이들은 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고 있을까?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하이타니 겐지로(灰谷健次郞)의 「태양의 아이」를 보면, 그들의 분노심을 읽을 수 있다.

「자, 여기 써있지, 이 육전사연구보급회(陸戰史硏究普及會)에서 펴낸 ‘오키나와 작전’에 의하면 미군은 4월 31일에 20만 6,750명, 5월 31일에는 23만 8,699명으로 불어났어. 이 거대한 미군이 1,500여척의 함선에 나눠 타고 오키나와를 기습한 거야......  」

 

「미군과의 결전을 바로 앞두고 오키나와를 지키던 일본군이 3분의 1가량의 병력을 딴 데로 빼돌렸어」

 

「모두모두 두더지처럼 죽어갔지. 오키나와 주민 45만 명 중에서 16만 명이나 죽었어. 이런 전쟁이 세계 어디에 또 있었단 말이냐?」

 

「처음부터 오키나와를 지킬 생각은 없었던 거야. 오키나와를 눈뜨고 죽인거지. 일본인들은 멋대로 오키나와를 희생시켜 저희들만 단물을 빨아먹었지. 옛날부터 줄곧 그랬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앞으로도 그럴 거고....」

 

「실업률은 전국 최고, 고교취학률은 전국 최저인데 당신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뭘 했다는 말인가? 」

「그 애는 오키나와 사람이라는 딱지 때문에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고통당하고 있어」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넋두리가 아니라 오키나와인들의 심장 속에서 나오는 절규다. 자신들의 목숨을 방패막이로 이용하였다는 사실과 ‘오키나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차별을 받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분노는 ‘차라리 독립하자’는 염원으로 변질되고 있다.

 

 작가 하이타니(灰谷)씨는 17년간의 교사생활을 접고 아시아 각지와 오키나와 곳곳을 방랑하면서 ‘비극과 고통을 안고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억울하고 또 억울한 그들의 이야기 - ’

 

4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류큐왕국(琉球王國)이 전쟁의 상처와 지역차별의 아픔 때문에 마음의 병(病)을 앓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는 남북문제와 지역감정 —
 특히, 선거철마다 기승을 부리는 지역감정 문제가 또다시
우리 모두의 ‘가슴앓이’로 번질지도 모를 일이다.

 

「옛날,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던 시대에는 마음의 병(病)따위는 없었단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그런 병(病)이 많아졌다는 거야 」는 소설속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입력 : 200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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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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