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재)중남미문화원을 찾았다. 이 문화원의 개관 30주년 기념식과 멕시코의 인기 작가의 특별전 개막이 있어서다.
비교적 빠른 시각에 도착했으나 주차장에는 이미 차량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한 외교관들의 차량이 많았다. (재)중남미문화원의 이복형(92) 원장이 30여 년 간 외교관을 지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가까스로 차를 대고서 문화원으로 들어갔다. 멕시코 작가의 조각품 ‘돈 끼오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악수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조태열 외교부장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박진 전 외교부장관, 한국박물관협회 조한희 회장 등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화환들이 전시장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악 4중주의 연주 음악도 가을 분위기에 맞춰서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전시의 테마는 ‘한국에서 어느 멕시코인의 이야기(CUENTOS DE UN MEXICANO EN COREA)’였다. 작가는 ‘리노 차베즈 에르난데즈(57)’. 산 카롤로스 국립 미술학교와 미술사 디플로마, 소르 후아나 수도원대학교를 졸업한 작가는 멕시코 회화 특유의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우면서 사랑과 유머가 넘치는 화풍으로 유명하다.
오후 3시가 되자 전시장 입구에서 테이프 커팅이 있었다. 테이프커팅이 끝나자 100여 명의 축하객들은 전시장 내부로 이동해서 간단한 행사를 가졌다. 사회는 이종훈 대표가 한국어와 스페인어로 진행했다. 먼저, 이복형 원장이 인사말을 했다.
인사말을 하는 중남미문화원 이복형 원장.
“중남미문화원 설립 30주년과 ‘리노 차베즈’의 전시회를 축하하기 위해서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리노 차베츠’의 새롭고 독창적인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전시하게 되어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구경 잘 하시고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으니 끝까지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복형 원장은 올해로 92세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말을 했다. 이어서 이동환 고양시장이 축사를 했다.
“오랜 세월 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시고, 은퇴 후에도 문화발전을 위해 헌신하시는 이복형 원장님과 홍갑표 이사장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오늘 참석해 주신 각국의 대사관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중남미문화원은 ‘중남미의 문화를 우리와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고양시의 자랑이자 행복입니다. 앞으로도 문화원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으로, 턱수염이 매력적인 ‘카를로스 페냐피엘 소토’ 주한 멕시코 대사가 다음과 같이 길게 축사를 했다.
‘카를로스 페냐피엘 소토’ 주한 멕시코 대사.
“먼저 (재)중남미문화원 설립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한국에서 라틴 아메리카, 특히 멕시코 문화를 알리는 데 헌신해 오신 이복형 원장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오늘 전시회를 오픈하는 ‘리노 차베즈’의 그림과 조각은 다양한 형태와 색채, 그리고 판타지적인 요소 사용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전시회를 방문하시는 한국과 외국인 관객들이 ‘리노 차베츠’의 작품에 매료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한 멕시코 대사가 작가에 대해서 자신 만만하게 소개하자 참석자들의 박수 소리도 높아졌다. 또한, 최원석 외교부 중남미국 심의관도 축사를 통해 중남미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시된 그림 17점과 조각품 4점은 멕시코 특유의 색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날 아침에 한국에 도착한 작가 ‘리노 차베즈 에르난데즈’의 말이다.
‘밤을 위한 콘서트’/ 캔버스 위에 혼합기법, 200x320cm.
"아름다운 삶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제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통해 ‘한국에서 어느 멕시코인의 이야기’를 하려는 첫걸음입니다. 이 그림들 속에서의 인물은 사랑과 기쁨이 끊임없이 샘솟는 샘터에서 축제를 벌이고, 밤은 음악의 음률을 감싸는 고요의 공범이 됩니다."
'밤은 음악의 음률을 감싸는 고요의 공범'이라는 말이 독특한 뉘앙스를 풍겼다.
"남과 여, 동물, 그리고 다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저의 그림 속에서 소리 없는 외침을 전하는 텍스쳐(Texture)와 색채의 언어를 만듭니다. 동시에 볼륨감과 텍스쳐를 가진 조각들은 유희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황홀’/ 철 위에 합성수지, 160x110x70cm.
특히 조각품에 대해서는 "네 개의 조소 작품들은 ‘사랑하는 이들’ 시리즈에 속하며, 청동과 레진을 통해 무한한 꿈을 담아내며, 저에게 커다란 기쁨을 선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재)중남미문화원은 이복형 원장이 30여년 외교관 생활을 중남미 지역 4개국 공관장으로 재직하며, 은퇴 후까지 40여년에 걸쳐 수집한 중남미 고대 유물부터 근·현대 미술,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는 아시아 유일의 중남미 테마 문화 공간이다.
이복형 원장은 꿈을 공유하고 집념과 초인간적인 열의로 헌신한 부인(홍갑표 이사장)과 함께 박물관(1994), 미술관(1997), 조각공원(2001), 종교전시관, 벽화, 연구소(2011)까지 이루어냈다. 그의 바람은 ‘학회·외교단·기업·교육기관 등에서 많이 이용하고, 문화·예술계의 모임 장소로써 복합문화공간으로 육성해 나가면서,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전시장에서의 행사가 끝난 후 조각 공원을 둘러보고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간단한 파티를 했다. 따코, 콰사디아 등 멕시코 요리가 참석자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파티는 레스토랑과 야외 테이블에서 형식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멕시코 그림과 조각품을 감상한 후 멕시코 음식이 나오자 참석자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건배사를 하는 한·중남미협회 한병길 회장. 중앙이 작가 '리노 차베즈', 오른쪽이 이복형 원장.
가을바람이 시원에서 야외 테이블로 나오자 한 외국인이 현악 4중주가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를연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필자가 눈인사를 하자 “쿠바 노래여서 반가운 마음에 동영상을 찍었다”고 말했다. ‘마리오 알주가라이(Mario Alzugaray)’라는 주한 쿠바 대사대리였다. 잠깐 사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쿠바에 가보신 적이 있으시나요?”
“아닙니다. 쿠바 수도가 아바나(Habana)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파라과이에서 브라질을 거쳐서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은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명함에 휴대폰 번호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돌아오는 길은 차량의 흐름이 무척 더디었다. 차 속에서 오래 전의 추억을 떠올렸다. 물론 (재)중남미문화원과 관련 있는 일이다. 20여 년 전 멕시코 기자들 15명이 필자의 회사에 방문했을 때 중남미문화원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이복형 원장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30여 분 동안 스피치를 하고서 작품 하나하나를 소개했었다. 유창한 스페인어였다. 멕시코 기자들이 깜짝 놀라서 본국에 즉석 중계를 하는 특종(?)보도를 하기도 했다.
(재)중남미문화원이 30년을 넘어 영원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이 전시는 2024년 12원 30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