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4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농해수위(위원장 소병철)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들이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등 5건의 안건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는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 등 5건의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이 가결됐다. 사진=조선DB
정치판에서 ‘민란’이란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유는 뭘까.
4·10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가 한 곳 줄어들 뻔했던 전북지역에서도 그랬다. 여야간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측이 중앙선관위 조정안대로 전북 선거구 한 곳을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자 전주 출마예정이었던 같은 당 정동영 의원이 민란 가능성을 거론하며 거세게 항의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과의 협상 막바지에 전북의 선거구 10곳을 그대로 존치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중앙당 차원에선 전북 선거구 한 곳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기로 했었던 셈인데 텃밭인 호남에서 반발여론이 확산될 수 있는 상황까지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셈이다. 결국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 한 석을 줄이는 쪽으로 확정됐다.
이에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양곡관리법개정안을 입법화하는 과정에서도 민란 가능성을 거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정적 부담이 엄청난 포퓰리즘 법안이란 점 등을 지적하며 거부권을 행사한 직후 신정훈 의원은 쌀값을 거론한 뒤 ”도시민 월급을 생각하면 민란이 일어날 상황“이라고 주장, 불씨를 계속 지폈고 결국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로 몰고 갔다.
2023년 4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재의안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민의힘 불참속에 이 법안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 단독 상정시킴으로써 또 다시 본회의 표결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맞설 수 있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 쌀 산지가 호남이란 점을 감안할 경우 텃밭 표심을 다지겠다는 계산을 염두에 뒀을 법하다.
이처럼 정치판에선 궁지로 몰린 쪽이 형세를 뒤집기 위한 ‘한 방’으로 민란카드를 꺼집어내곤 했다. 민란이 일어날 거라는데 움찔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정치판은 표를 먹고 사는 곳이란 측면에서도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던 셈이다.
DJ도 이런 덕을 톡톡히 봤다. 1997년 대선 막판 자신에 대한 비자금의혹 논란에 휩싸였을 때였다. 투표일을 두 달여 남겨둔 상황에서 이회창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판세가 흔들리자 DJ는 YS 측을 압박하기 위해 민란 카드를 꺼냈다. ”광주를 비롯한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김영삼정권과 전면투쟁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 YS도 회고록을 통해 ”전라도와 서울에서 민중폭동이 일어나고 대선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고 했다. 민란을 우려, 수사를 유보시켰다는 말이다. 이처럼 DJ가 당선됐던 데는 민란 발언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셈이다. 게다가 YS 역시 비자금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처지였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사법리스크가 증폭되면서 궁지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전 대표는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관여 의혹,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의혹, 검사 사칭사건 관련 위증교사 의혹 등으로 4개 재판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잇따라 출석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경우 빠르면 9∼10월 1심 판결이 나올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단일대오를 구축, 이 전 대표에 대한 철통방어에 나서고 있다. 3년후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도 이 전 대표 외의 대안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상황이다.
이 전 대표 수사와 관련된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발의해 놨다. 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만 해도 해당 검사의 직무 정지를 통해 관련 수사와 재판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재판을 가능한 지연시키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야권에서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 얘기가 들리고 있는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하지만 검사탄핵 사유가 궁색하다는 비난이 적지않다는 점에서 여론의 역풍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6월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촉구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 유상범 의원, 추 원내대표, 정점식 정책위의장, 장동혁 원내수석대변인. 사진=조선DB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채 상병 특검법안도 재상정, 최근 본회의에서 다시 통과시킴으로써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이어 재표결로 이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앞서 법안 재표결때보다 국민의힘 의석이 줄어든 만큼 여건은 나을 것이고 표결과정에서 집권당 분열도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방점은 이번 법안이 특검 후보를 야당만이 추천할 수 있도록 했고 수사범위도 더욱 넓혀놓았다는 데 찍혀있다. 궁극적인 타깃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껏 높이는데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서 윤 대통령 탄핵론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로 탄핵을 추진하기에는 아직 무리다. 의석 수만 믿고 밀어붙였다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때처럼 역풍에 휩쓸릴 수 있다. 국회 탄핵청원이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하나 문재인 전 대통령 당시에도 그랬듯이 탄핵 맞불청원이 가세, 진영싸움으로 변질되고 있어 탄핵 지렛대로 써먹기는 쉽잖다.
하지만 사법리스크는 증폭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위반 1심 판결의 경우 2-3개월만 지나면 나올 수 있다.
철통방어의 약발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 경우, 이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의 히든 카드는 뭘까. ‘유죄판결을 내리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개딸 등 지지세력까지 합세, 공세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는 ‘민란’ 카드도 꺼내들 수 있다. 탄핵소추권을 남발하는 등 요즘 행태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전 대표의 경우 이미 재판을 받고있기에 DJ 사례와는 다르다. 재판을 계속 지연시켜나갈 수만 있다면 카드는 일단 통한 셈이 될 것이나 그게 끝은 아니다.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비난여론이 들끓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무죄, 어느 쪽으로 판결난 이후에도 정국 긴장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 전 대표 사법리스크의 결말은 진영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패이게 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후텁지근한 장마철만큼이나 정치판에 대한 불쾌지수도 치솟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