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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전당대회’ 국민의힘·‘李재판’ 더불어민주당, 계파갈등 향배는…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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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이 1991년 6월 20일 밤, 1960년 이후 31년만에 부활된 지방선거 선거상황을 보고받기 위해 당사를 방문, 김윤환 의원에게 보고받고 있다. 3당 합당 이후 김윤환은 민자당 원내총무, 사무총장을 맡아 YS를 도왔다. 사진=조선DB

국민의힘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또다시 고조되고 있는 친윤, 친한(한동훈) 등 계파갈등의 향배는 어느 쪽일까. 지난 총선을 거치며 이재명 대표 일극(一極)체제로 단일대오를 형성, 수면 아래로 잠복한 더불어민주당의 계파갈등은 또 어떻게 될까. 우리 정치사를 되짚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말인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당내 주도 계파였던 민주계가 급격히 와해되거나 탈당하게 됐고 그 자리를 이회창 후보를 정점으로 한 계파가 차지했다. 당을 주도하는 계파와 수장이 바뀐 셈이다. 그리고 이 후보는 견고하게 구축됐던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2차례나 대선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5년 전 1992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자당의 대표최고위원인 YS가 당내 세력의 한축인 JP의 신민주공화계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냈고 허주(김윤환)를 앞세워 최대 계파인 민정계 의원들 설득에도 성공, 당내 지지세력을 확산시킴으로써 대선후보가 됐고 대권까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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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 10월 28일 오후 귀국, 김윤환 민자당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대표는 30일 낮 청와대를 방문,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파문 등 정국현안에 대해 보고할 예정이다. 사진=조선DB 

 

두 사람은 당내 계파들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구심력을 갖췄던 셈이다.

 

이와 달리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후보교체론에 휩쓸렸을 정도로 새천년민주당 세력 경쟁에서 동교동계(DJ 정치계파)에 밀려났으며 이같은 상황은 집권 초까지 이어졌다. 결국 탈당한 친노세력의 신당 창당과 총선 압승을 통해 집권당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교체한 후에야 주도 계파를 갖게 됐다.

 

열린우리당은 탄핵 역풍 총선 덕에 과반수 의석까지 차지하는 등 한껏 상승세를 타는 듯 했으나 이후 선거에서 잇따라 패하는 등 꺾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군소정당으로 추락한 새천년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이 갈등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참패하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과 호남 의원들의 집단탈당 결과도 비슷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을 계기로 문재인 대표를 정점으로 한 친문 측과의 갈등이 격화되자 총선을 앞두고 집단 탈당, 국민의당 창당을 통해 호남에서 압승하는 돌풍을 일으켰으나 상승세는 거기까지였다. 안 의원은 2017년 대선결과 돌풍의 진원지였던 호남에서 조차 문재인 후보에게 참패했으며, 향후 행보를 놓고 갈등을 거듭하던 안 의원 측과 호남세력은 갈라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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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2016년 1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신당 '국민의당'(가칭)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김영환 의원 등과 함께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조선DB

 

지난 대선정국에서 치러졌던 국민의힘 지도부 경선 당시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이준석 대표의 경우 친윤 측에 맞서 당내 지지세력을 확산하는 데 실패, 대표 자리에서 쫒겨났고 탈당으로 내몰리게 됨으로써 기세가 꺾였다. 지난 총선에서 당선됨으로써 차세대 리더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는 하나 양대 정당이 주도하는 정치판 구도가 흔들리지 않는 한 3석 정당의 리더로서는 한계가 적잖다.

 

2008년 대선에서 당선됐던 이명박 후보도 당내에선 세()부족 상황에 처했으나 해법은 노 후보와 달랐다. 집권 이듬해 총선에서 친이 측이 친박 측을 겨냥한 공천학살 과정을 거치면서 집권당을 주도해 나갈 세력을 갖추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탈당한 친박인사들이 대거 당선, 복당했고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집권말기 총선 공천에서는 보복학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당으로 치닫지는 않았던 것은 박 의원이 대선 유력주자로 강력한 구심점이 됐고 친이 측으로선 대안 부재상황에 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박근혜정부 말기 분당이 현실화 됐다. 당의 구심력이 약해졌던데다 대선전망까지 어두워지자 당권을 장악했던 비박 측과 친박 측간의 갈등이 첨예화 됐던 것이다. 공천파동에 휩쓸렸던 총선 패배에 이어 탄핵사태 등으로 분열을 거듭하며 비박 측이 잇따라 탈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탈당 측은 세력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자 복당해 버렸다.

 

이처럼 정치판이 세 대결의 장()이라는 측면에선 계파형성 자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계파는 세력을 확산시키는 반면 다른 쪽은 위축되면서 당내 구심점이 강화되거나 옮겨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지세력 확산에 성공한 계파가 정권 창출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계파들간 갈등이 격화되거나 분당 상황 등으로 치닫을 경우 정치판 역학구도가 요동칠 수 있다. 계파 갈등의 향배가 관건이 되는 셈이다. 이는 당내 주도 계파 측이 다른 세력과 공존할 수 있는 구심력을 가질 수 있느냐는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집단탈당 사태는 3김처럼 견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악수(惡手)로 귀결됐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지난 총선의 압승을 지렛대로 강력한 친명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만큼 이 대표의 대선가도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을 뒤흔들 뇌관인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증폭될 경우 절치부심하고 있던 비명· 친문 측이 세력화를 본격화, 양측간 갈등은 한껏 고조될 수 있고 분당 상황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역시 7월 전당대회 이후 계파갈등에 휩싸일 가능성이 적잖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어대한이라 할 정도로 대세론을 업고있다지만 친윤 측이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리 만무하다. 총선 참패후 친윤 측 기세가 약화됐다고들 하지만 임기를 3년이나 남겨둔 대통령을 뒷배로 두고있는 계파이다.

 

차기 대선의 유력주자로도 꼽히는 한 전 위원장에게는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헤쳐갈 지가 정치적 운명이 걸린 시험대이다.

 

사법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국민의힘 모두 계파갈등의 분수령으로 치닫고 있다.

입력 :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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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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