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떠온다 달 떠온다/ 강강술래/동해동천 달 떠온다/ 강강술래/ 저 달이 뉘 달인가/ 강강술래/ 우리 모두 달이라네/ 강강술래>
김민환(79) 작가의 소설 <등대>는 섬 처녀들의 추석맞이 ‘강강술래’로 시작된다. 하지만, 소설은 즐거운 ‘민속놀이’가 중심 축(軸)이 아니다. 1909년에 일어난 ‘소안도의 등대 습격사건’을 중심으로 한 항일운동의 스토리가 파도처럼 거세게 일렁인다.
‘소안도의 등대 습격사건’은 소안도 출신 동학군 이준화와 해남의 이진, 성명 미상의 의병 5-6명이 1909년 2월 24일 좌지도 등대를 습격해서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을 사살한 의거였다. 1894년 동학전쟁 와중에 소안도에 들어온 동학 접주(接主) 나성대가 동학군을 길렀다. 그 일원이 바로 이준화였다.

소설 <등대>속으로 들어가 본다.
“항문도 바깥쪽에 세우는 등대는 주로 부산이나 여수, 제주 등지에서 목포나 군산으로 가는 배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항문도 등대는 여그 어민을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큰 바다를 오가는 화물선이나 군함을 위해 세우는 것 이어라우.”
“좌지도를 항문도라고 하지 말아요. 항문도라는 말은 어감이 이상한께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나누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좌지도(당사도)에 세운 등대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인들은 좌지도를 항문도(港門島)라고 명명했다. 항문이라는 말이 좋지 않아서 거부감도 있었다. 항문(港門)과 항문(肛門)이 발음이 같아서다.
소설을 통해서 본 거사 직전의 상황
<첫닭이 운다. '서진하'는 마당으로 나간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둡다. 아하. 이래서 거사 날을 초닷새로 정했구나. 진하는 어머니가 주무시는 안방과 아버지가 계시는 사랑방을 번갈아 돌아온 뒤에 선창으로 간다. 이준화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
“얼굴에 수건을 두르랑께.”
“자. 모두 배에 타소.”
<이준화는 백씨가 된 서진하와 최 씨에게 노를 젓게 한다. 된바람이 불어와 돛이 배불뚝이가 된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배를 선착장이 아니라 등대의 남쪽 절벽에 댄다. 이준화가 말한다.>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삼킬라고 혈안이 되어 있는 판국인디, 우리가 저 등대를 부수면, 우리의 행동, 우리의 거사가 소안도 청년들, 완도 청년들, 나아가 대한 청년들한테 좋은 지침이 될 것이네. 그랑께, 등대를 부수는 것이야말로 새 등대를 세우는 일이 아니고 뭣이겠는가?”
그러면서 이준화는 동학 정신을 상기시킨다.
“동학란 때 녹두장군은 백산에 집결한 농민군한테 당부하셨네.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도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네. 살짝 등대만 부수고 살그머니 돌아가세.”
하지만,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사망자가 나왔다. 등대를 파괴함은 물론 일본인 등대장을 죽인 것이다.
‘등대 파괴’가 아니라 ‘등대 세우기’
문학평론가 박수연 선생은 말한다. ‘소설은 실존인물 이준화를 바탕으로 동학이 동력을 불어넣었다’라고.
“소설의 결말은 등대를 파괴하고 죽음을 맞이한 이준화의 입을 빌려 새로운 세계를 이끌 ‘등대 세우기’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근대적 국민국가의 과제가 사람들에게 요구한 민족적 계몽이라는 상식적 주제로 이 결말이 수렴된다면 ‘등대’는 뻔한 역사의식으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수준을 넘게 한 이야기의 동력이 바로 ‘동학’이다.”
책을 덮자 소설 속 이준화의 말이 필자에게도 긴 여운(餘韻)을 남겼다.
“택도 없는 일이겠지만···왜놈들이 우리가 등대를 부순 것을 등대삼아, 우리를 집어 삼킬라고 한 사실을 반성하고, 우리와 함께 공존공영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또 을마나 좋겄는가?”
필자와의 통화에서 김민환 작가는 이 소설을 쓴 배경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늘 동학을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올해가 水雲(최제우, 1824-1864)선생 탄생 200주년이어서요. 그 생각을 바탕으로 소설 ‘등대’를썼습니다.”
김민환(金珉煥) 작가는 누구인가.
현재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장편소설 <담징>·<눈 속에 핀 꽃>이 있다. 2021년 장편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로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과 노근리평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