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요즘 국회는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의원회관에서는 의원들끼리 모여 고스톱을 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출입 기자들의 눈을 피하려고 밤 늦은 시간에 판을 벌이기 일쑤였으나,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관련 기사에 고스톱을 쳤던 의원들이 실명이 아닌 이니셜로 거론됨으로써 애꿏은 희생양이 생기기도 했다는 점이다.
의원실 직원을 보초(?)로 세워뒀음에도 들켰던 적이 있었다. 고스톱을 쳤던 의원들 3명은 성(姓)을 따서 A, B, C 등으로 기사화됐는데 B, C 의원이 누군지는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으나 A 의원에 대해선 국회 출입기자들과 보좌진 사이에 설왕설래했던 가운데 그 자리에 없었던 의원이 지목됐던 반면 당사자였던 의원은 거론되는 듯하다가 잊혀졌던 것이다.
두 의원 성의 영어이니셜이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대외적 이미지 영향이 컸다. 지목됐던 의원은 고스톱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평소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쳤을 것이라는 오해를 빚었던 반면, 당사자 의원은 고스톱을 쳤음에도 이미지가 그럴 것 같지않았기에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날 밤의 전말이 밝혀졌고 누명도 벗었다고는 하지만 이미지는 이미 구겨진 후였다. 이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공교롭게 다음 총선 공천심사에서도 밀려나게 됐다.
두차례 대선 모두에서 이기는 듯했던 이회창 후보의 경우 이미지 때문에 거센 역풍에 휩쓸려 판세를 망쳤다.
그는 판사와 감사원장, 총리 등을 지내면서 ‘대쪽·원칙주의자’ ‘개혁 이미지’로 국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김영삼 정부의 감사원장이었을 때 권력기관에 대해 성역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청와대와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까지 감사대상으로 삼았으며 총리때는 대통령인 YS와의 갈등 끝에 ”허수아비 총리는 하지않겠다“며 사퇴하기도 했다.
1997년 5월 19일 이회창 대표가 확대당직자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이런 기세를 등에 업고 집권당 후보로 1997년 대선에 출마해 선거초반부터 대세론을 탔으나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쟁점화되면서 여론지지율이 곤두박질, DJ에게 역전패했다. 당시 이 후보의 대쪽·원칙주의자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워낙 강하게 각인됐던 만큼이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은 더욱 치명타가 됐던 것이다. 의혹의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그런 의혹이 불거졌다는 자체만으로도 그에게서 표심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내 후보경선에서 졌던 이인제 후보가 탈당·출마하게 됐던 저변에도 이회창 후보가 자신의 이미지까지 훼손하며 자초했던 측면이 있었다. 당 대표직을 사퇴하지 않고 경선에 참여함으로써 불공정 논란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인제 후보의 출마도 여권표 분산을 통해 이회창 후보의 낙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5년 후 대선에서도 아들 병역비리의혹이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또 다시 뒤흔들었고 낙선해야 했다.
몇 년후 아들 병역비리 의혹은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지만, 그렇다고 대선 상황까지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 후보의 경우 이미지에 힘입어 정치적으로 급부상, 호랑이 등에 올라탄 듯 대권가도까지 고속질주하다가 아들병역 의혹이라는 복병을 만나 떨어졌던 셈이다.
이처럼 정치는 이미지에 살고 이미지에 죽기도 한다. 유권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쳐지느냐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갈릴 수 있다. 정치인에게 이미지 메이킹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지 자체만 놓고 정치적 유·불리를 섣불리 단정짓기도 어렵다.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이미지를 가졌다고 한들 이를 타깃으로 한 의혹 제기나 정치 공세에 내몰리면 단번에 휘청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이미지가 부각되지 않았던 쪽이 낫다. 1997년 대선 후보였던 DJ의 경우도 그랬다.
2020년 7월 27일 오후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의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월간조선 8월호에 게재된 미국 'DJ 비자금' 보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당시 대선에서는 DJ의 비자금 의혹도 불거졌으나 판세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YS 정부가 수사를 대선이후로 미뤘는데다 3김시대의 정치판 관행이기도 했다는 점이 표심에 감안됐을 것이나, 무엇보다 DJ에게는 이회창 후보처럼 원칙주의자 같은 이미지가 따라붙지 않았기에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비자금 의혹이 이화창 후보를 겨냥한 것이었다면 아들 병역비리처럼 진위여부가 밝혀지기도 전에 판세를 뒤집을 정도의 파문을 일으켰을 것이다.
2007년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이명박 후보 역시 이런 측면에선 DJ와 비슷했다.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이 후보에게는 유권자들에게 ‘경제 대통령’ 이미지가 워낙 강했기에 네거티브 꺼리들은 그다지 먹혀들지 않았다. 노무현 당시 정부의 실정(失政)과 맞물린 경제난이 부각됐던 덕도 봤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후보의 도덕성문제는 표심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BBK 주가조작 의혹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 경쟁후보 측에서 네거티브 공세들이 잇따랐으나 역대 최대 표차(19대 대선 이전까지)로 이겼던 데서도 뒷받침된다.
이회창 후보처럼 법조인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대선 당시 공정과 상식, 법치를 강조하는 이미지가 부각됐고 표심에 주효했다. 그러나 이같은 이미지는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의혹이 부각되면서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손목시계 몰카로 수수과정을 촬영했다는 점에서 기획된 ‘함정 취재’ 논란도 제기되고 있으나 비난여론을 무마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에 편승, 더불어민주당은 특검까지 몰아붙일 태세다.
결국 윤 대통령의 ‘공정’ 이미지가 명품가방 수수의혹을 더욱 키웠던 측면이 있는 것이다. 명품가방 논란보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김정숙 여사의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한 인도 관광여행 의혹이나 명품 옷 등을 정부예산으로 구입했을 것이란 의혹이 논란을 더욱 키웠을 사안이었음에도 특검요구로 까지 쟁점화되지는 않았던 점과도 비교된다.
이처럼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다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