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5일 조국(오른쪽) 조국혁신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조국혁신당 등 4·10 총선에 뛰어든 신당들의 총선이후 행보는 어떻게 이어질까.
총선에서는 이들의 판세가 뻔해 보인다. 양대 정당체제에 무기력했던 과거 신당의 전철을 피해가기 어렵다. 돌풍을 일으켰던 자민련이나 국민의당처럼 대선주자급 정치인과 지역적 지지기반 같은것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총선후의 파란만장할 신당 행보가 더욱 궁금하다.
(위) 2024년 1월 26일 오후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개혁신당의 첫 현수막을 게첩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사진=조선DB
(아래) 2월 20일 오전 개혁신당과 통합 선언 11일 만에 이낙연 공동대표가 김종민 의원과 함께 여의도 당사에서 개혁신당과의 합당을 철회하고 새로운미래로 회귀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얼개는 이미 짜여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총선 후 정치적 연명을 위해 분열을 거듭하며 당명을 바꾸기도 하다 양대 정당, 심지어 격렬하게 맞섰던 정당 쪽으로도 합류하거나 아예 정치판을 떠나기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친정격인 신당이 소멸해 버리는 국면으로 까지 치닫게 되면 일단락된다. 이렇게 짜여져 있는 틀 속에서 어떤 정치인이 어떤 행보를 택할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2000년 총선에서는 민주국민당이 창당됐다. TK 대부로 불렸던 김윤환 고문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데 따른 배신감이 기폭제가 됐다. 그는 앞서 대선에서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이회창 대표를 후보로 만든 일등공신이었음에도 공천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낙천됐던 이기택 고문·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수성 전 총리·한승수 의원 등과 함께 탈당해 민국당을 창당했으며 동교동계 중진 김상현 의원도 새천년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 가세했다. 현역 의원들이 영남권을 주축으로 10명이나 됐다.
하지만 참패했다. 30석을 목표로 했으나 믿었던 영남에서조차 전패했고 유일하게 춘천에서 한승수만 당선됨으로써 비례대표 1석을 포함, 2석에 그쳤던 것이다.
민국당의 침몰은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에 이 지역 중진들이 다수 출마, 세를 과시한 것까지는 상승세를 타는 듯 했으나 대선주자급 인사가 부각되지 않음으로써 득표력에 한계를 보였던 데 따른 것이다.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영남 표심은 유력 대선주자인 이회창 대표가 이끌던 한나라당에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민국당은 그후 DJP 공동정부에 가세, 한 축을 맡기도 했으나 이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표출됨으로써 중진 등의 탈당이 본격화됐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주요 인사들이 양대 정당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들 정당을 오락가락하거나 정치판을 떠난 측도 있었다.
2000년 2월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희망의 한국신당' 창당대회에서 김용환 집행위의장과 허화평 집행위원, 내빈으로 참석한 김동길 전 의원 등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당시 총선을 앞두고 희망의 한국신당도 창당됐다. DJP 공동정부에서 내각제개헌이 유보된 데 반발, 자민련 2인자였던 김용환 의원이 탈당해 충청권을 중심으로 30여명의 후보를 출마시켰으나 자신만 당선됐다. 그후 한국신당은 공동정부에 참여했던 JP와 자민련에 맞서 한나라당과 합당해 버렸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개혁적 이미지의 대선주자 문국현이 창조한국당을 창당, 열린우리당 등의 전·현직 의원들이 가세한 가운데 이듬해 총선에 뛰어들었으나 지역적 지기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비례대표 2석을 포함해 3석을 얻었을 뿐이다.
세(勢) 만회를 위해 보수 측 자유선진당과 교섭단체 연대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이에 반발, 탈당이 잇따랐고 문국현조차 공천헌금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서 신당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16년 3월 19일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가 대전 동구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대전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조선DB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된 국민의당은 신당 이합집산의 결정판이었다. 한해 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문재인 대표체제가 구축된 이후 친노(노무현) 측과 비노 측 간의 갈등이 격화돼 분당사태로 치닫으면서 창당됐던 것이다.
국민의당은 안철수·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박지원·천정배·정동영·박주선 등 호남출신 전·현직 의원 등을 주축으로 총선에 뛰어들어 호남 돌풍을 일으키며 38석의 원내 3당으로 도약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텃밭인 호남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당에 이 지역 중진 다수가 포진했던 데다 비호남 출신의 대선주자 안철수까지 가세했던 게 표심에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의 호남홀대론에 따른 반(反)문재인 정서도 작용했다.
2018년 1월 28일 2시 국민의당 통합 반대파인 ‘민주평화당’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권노갑·정대철 상임고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고 조배숙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는 등 안철수 대표와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주요 참석자들이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DB
그러나 안철수는 대선 패배 후 바른정당(새누리당 탈당세력)과 합당(바른미래당)을 추진했고 이에 반발한 호남세력은 탈당해 민주평화당을 창당했으나 또다시 당내갈등을 거듭하다 비당권파들이 대안신당으로 갈라서는 등 분열을 거듭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과거 국민의당 세력들이 민생당으로 다시 합치기는 했으나 선거결과 원외정당으로 전락해 버리자 양대 정당쪽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던 안철수는 민생당에 합류하지 않고 또다른 국민의당을 창당, 활로를 모색하다가 2022년 대선직후 국민의힘과 합당해버렸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던 당시 총선에는 열린민주당이라는 비례대표신당도 생겼다. 친문(문재인) 성향이었으나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은 아니었다. 이번 총선에 뛰어든 조국혁신당이 어른거린다.
열린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떨어졌던 정치인들도 가세했으나 3석을 얻는 데 그쳤으며 2022년 대선 막바지에 더불어민주당과 합당한 뒤 친명(이재명)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하지만 합당 당시의 의원 3명은 모두 선거판을 떠나거나 밀려나는 정치적 운명에 처하게 됐다.
최강욱 전 의원은 대법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고 관련법에 따라 이번 총선에는 출마할 수 없게 됐다.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가 유죄로 확정됐던 것. 문재인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김의겸 의원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을 맡는 등 친명계로 적극 활동했으나 이번 총선 공천경쟁에서는 비명계 의원에게 밀렸다. 친명 강경파모임 대표를 맡기도 했던 강민정 의원은 정치를 퇴행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지난해 총선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새로운미래·개혁신당·조국혁신당도 이같은 틀을 깨기는 쉽지않다. 그런 점에서 신당의 대표들인 이낙연·이준석·조국의 총선후 행보도 전례를 되짚어보면 가늠할 수 있다. 정치 생명까지 걸려있는 쪽도 있겠다. 우리 정치판의 서글픈 신당사(史)이다.